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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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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벌과의 사랑


BY 플러스 2008-11-11

지난 주일 이후 내내 생각 중에 있던 일들 중 하나로 인해 떠오른 영화를 검색해 보았습니다.
 
한 남자와, 자신의 세계 속에 틀어박힌 채 세상으로 나오고 싶어하지 않는 농아 소녀와의 사랑이야기를 그린, '작은 신의 아이들'이라는 영화였습니다.
 
클릭과  함께 열린 창에서는 바하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d단조의 2악장을 배경으로 몇 개의 흑백 영상이 담겨있었습니다.
 
배경으로  깔린 이 아름다운 음악은,  대학 3학년 무렵 함께 이 영화를 보았던 남학생을 더욱 잘 떠오르게 했습니다.   그는 내게 클래식 음악이라는, 청각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깊은 아름다움의 세계로 안내한 사람입니다.
 
남녀간의 진실한 사랑을 담은 수준 높은 예술성을 보여주는 영화였다고 지금은 기억하게 되지만,  그 때만해도 단지 이성과 둘이 함께 보기에는 난처한 장면들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영화에 대한 안목이 별로 없던  여학생으로부터 그 친구가 호된 야단을 듣게 되었던 영화이기도 합니다.
 
그 무식한  여학생을  앞에 두고  빙그레 웃으며  가만히 듣고만 있었던  그 친구의 얼굴이 잔잔한 바이올린의 선율을 타고 솟아오르는듯 합니다.  
 
미안한 줄도 잘 몰랐던 마지막 만남도 생각이 납니다.
 
여자 친구의 마음을 돌이킬 수 없음을 안 그가 돌아서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말을, 나는 지난 세월 속에서 아주 가끔씩  부끄러움을 담은 채 떠올려보곤 했었습니다.  
 
이십 년쯤 지난 지금, 혹 어딘가에서 다시 부딪치게라도 된다면 서로 알아볼 수는 있을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서로 적잖이 달라진 모습을 보고 놀라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추억은 추억만으로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다가도, 가끔씩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또 한 편, 혹시라도 그 친구가 사이버상에 올려진 나의 글들을 보게 될까 두렵기도 합니다.
 
착하고 온순하지만  무서울 정도로  나와 나의 성향을 비롯하여 마음과 생각까지 꿰뚫어 보았던 사람임을 기억하게 되는 그가, 내가 겪어온 일들과 글들을 본다면  그 시절의 나와는 딴판인  나를 보고  '니가 어쩌다가..'하는 놀람으로 쳐다볼 것 같기 때문입니다.
 
혹 아직까지 내게 화가 나 있지 않다면,  아마 걱정을 담은 눈으로 바라보아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조금 듭니다.  내게는 늘 착한  친구로만 남아있으니까요. 지금도 그 심성 그대로 멋진 아빠이고 멋진 남편인  중년 남자였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마주치기가 두려워지기도 한다는 말 앞에 또 다른 의미로 떠오르는 남학생도 있습니다.  
 
이성에게는 특히 거의 친밀감을 표현하는 법이 없던 사람이었던지라  써클의 다른 동기 남학생들이 어려워하던 축에 속했던 내게 늘 스스럼없이 구박을 해대던 친구입니다.
 
그  타박에 늘 무반응으로  일관하는 사람에게 지치지도 않는지, 늘  얼굴만 마주치면  '멋 좀 부려봐라'. '화장 좀 해 봐라', '다른 여학생들처럼 입고 다녀봐라', '나이들어 보이게 좀 입고 다니지 마라' 하며 구박하곤 했던 것입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외모 가꾸기에는 소질도 없고  관심도 별로 두지 않고 살아왔을 뿐 아니라 이 십 년은 더 나이 든 나를 본다면, 그 친구가 더 심한 타박을 주지 않을 리가 없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일 예배에서,  giving back이라는 타이틀로 Y대학이 그간 사회로부터 입은 사랑과 은혜를 환원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으며 지금 다니는 교회에서 힘을 더하고 서로 협력을 도모하게 되었음을 알리는 대학 총장님과 그 외 몇 분의 인사말을 들었습니다.  영상을 통해 선교사 언더우드의 이야기와 오늘날 그 대학의 모습들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며칠간, 학창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몇 분의 교수님들, 바하의 칸타타를 올겐으로 듣던 채플시간, 그리고 갖가지 기억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듯 스쳐가는 가운데 앞서의 이야기들도 떠올랐던 것입니다.
 
예배 시간에 깜짝쇼라도 보듯 대학시절의 학교를 떠올리게 되는 순서를 접했던 그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남편의 한 쪽 팔에 매달린 채 모교에 대한 자랑을 늘어 놓았었습니다.
 
상아탑의 울타리를 넘어 함께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현실적인 문제들을 놓고 보답하고 공헌하는 일들을 통해 의미를 찾아가고, 또 그런 시스템을 형성해 나가려 한다는 것은 확실히 자랑스러운 일이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에게 그렇게 은근히 약을 올리듯 자랑을 늘어 놓은 것은, 사실상 오랜 전통처럼 자리잡고 있는 남편의 대학과 나의 대학 간의 경쟁의식을 그대로 드러내 놓은, 애교 섞인 ‘허세’같은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 허세와 장난이 섞인 경쟁의식은, 결혼 초 남편 친구 결혼식 피로연에서 남편의 친구들 중 하나가  우리 부부를 두고  희한하게 여기며 '적과의 동침'이라고 표현한 것이라던가,  독일에서  남편의 후배부부이며  그들끼리  서로 동문간이기도 한  부인 쪽이, Y대와 K대의  운동경기에서 내가 어느 편에 서서 뛸 것인지에 신경을 곤두세우다가 K대의 열에 서는 것을  지켜보고서야  안심하던 것이라든가,  그 곳 독일에서 어느 해엔가 처음으로 따라가 본 망년회에서  'Y대 걔네들은  호텔에서 한다는데, 우리도 다음엔 말야...'하는 말로 은근히 자신들의 동지의식을 또 경쟁의식을 드러내던 한 높은 K대 출신 어른의 말 속에도 들어 있던 바로 그런 것일 거였습니다.
 
 남편 친구가 말한 바 '적과의 동침'이라는 우리의 결혼생활을 돌아보면,  때로 내 안에, 적까지는 아니지만 사소한 일을 두고 지고 싶어하지 않았던 라이벌 의식같은 면이 많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슬며시 해 봅니다.  각 대학이 가진 색깔이랄까 특성 때문만은 아니었겠지만,  남편과의 많은 '다름'에서 나 자신 많은 갈등을 겪으며 살아오기도 했으니까요.  
 
마음에 드는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아내가 정의하는 바 'K대생의 특성'을 모두 감췄던 것이 사실임을 인정하는 남편은,  스스로 몇 가지  말이 아닌 실제로 고쳐나가는 데에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남편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쉽지 않은 시간들일 때가 종종 있었지만, 남편의 그러한 고집에는 자신이 아내의 모든 것을 그저 받아들여주고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하려는 자세를 가지고 있었기에 아내 또한 자신에게 그래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직도 여전히 때로는 투닥거리지만,  나도 남편도 서로를 많이 사랑하기에 이만큼 서로의 고집을 꺾어가며, 또 서로를  위해 스스로 변화되어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때로 자신의 세계 밖에는 이해할 줄도, 사랑할 줄도  모르는 사람이 자신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어 사랑하는 것과,  원래 자신안에 가진 사랑이 더 많은 사람이  보통으로 주는 사랑 중  실제로는 어느 쪽이 더 크겠느냐고,  남편이 내게 주는 사랑이 부족하게 여겨짐을  섭섭해하며  이야기했던 때도 있었지만 말입니다.
 
사실 나 자신이 비교를 통해 섭섭함을 드러내었던 그 말은 뒤바뀐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누가 가진 사랑이 원래 더 많은지, 또 자신이 가진 사랑의 분량 안에서 상대방을 향한 사랑이 어느 쪽이 더 많은 지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가능하지 않은 일일 수도 있을 일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를 잘 헤아려주고 내게는 편하기만 하던, 비슷한 색깔을 가졌다고 여겼던 남성들보다,  몇 가지 아내가 싫어하는 부분이 변화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다른 색깔처럼 보이는 남편이, 이제 내게는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결혼할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실상 남편이 주님 안에서 더욱 자라날수록, 그 신앙이 깊어져 갈수록 남편이 나를 향해 가진 사랑을 내 입장에서는 더욱 풍성하게 느끼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아마 남편이  아내인 나를 놓고 생각해보아도 마찬가지가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문득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