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삶을, 일상 생활의 거의 전부를 신앙생활에 바치는 것 같은 사람을 볼 때가 있습니다.
더군다나, 오늘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만, 내게는 그저 처음 참석한 모임에서 본 사람일 뿐인데, 열성적으로 신앙에 대해, 또 자신의 신앙생활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열심으로 이런 저런 모임들에 함께 참여하자고, 즉 그녀의 생활방식과 동일하게 살아보자고 강권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마, 그녀는 내가 그녀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기 때문에 자신과 이야기가 잘 통할 거라고 생각했을런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점점 더 열의를 띤 채로 자신이 매일 매일을, 그리고 일 주일을 어떤 일과로 어느 곳에서 어떤 방식으로 보내고 있는 지를 이야기하면 할 수록, 그녀의 바람과는 달리 그녀의 열성적인 신앙생활 보다는 그녀 자신의 내면 속의 신앙은 어떤지 또한 그 영혼은 어떤 상태인지를 들여다 보고 싶어지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들여다 봄은 나로서도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바로 옆에 앉은 채로 그녀는 얼굴을 마주하며 무안하리만큼 눈 한 번 떼는 법 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으니 나 자신도 그녀의 눈을, 그리고 그 눈을 통해 보여질 듯한 그녀의 영혼의 상태를 가늠해 보게 되던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헌신적으로 신앙에 매진하시는 분들의 모임 속에서는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더러, 아니 꽤 벌어지곤 하는가 봅니다.
독일의 한 교회에서 만났던 여집사님은 내게 한 목자가 쓴 두 권의 책을 빌려주어 읽게하고, 또 그 교회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를 소개하여 주고, 자신이 한국에 방문하여 그 교회에 참석했을 때 받은 은혜가 크다며, 한국에 가게 되면 꼭 가보고 등록하기를 권유하곤 했습니다.
그 집사님이 소개한 교회는 몇 주 전부터 배우게 된 중국어 강의가 열리는 건물과 건물 하나를 두고 붙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첫 주, 수업이 끝나고 난 후 그 예배처를 방문했었습니다. 카페에서 보낸 전체 메일을 통해, 그 곳에서 미국인 강사를 초정한 집회가 열리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카페에 올려진 글들에서 보았던 이상한 현상들, 즉 입신하여 천국에 들려 올라간다든가, 예배 중에 예수님이 목자의 곁에 서신 것을 본다든가, 예배 중 열린 하늘에서 무언가가 내려오는 본다든가, 또 환상 중에 주님을 뵙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사명을 받는다던가 하는 현상들에 대한 궁금증이 어쩌면 풀릴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도 했습니다.
한국인 통역을 두고 설교 말씀이 있은 후 사람들이 함께 기도하던 시간에, 미국인 강사는 몇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 사람들을 일어나게 하고 그들을 향한 예언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특정한 사람을 지목한 후에 그 사람을 향한 예언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강사는 천사가 어디에 서 있는 것이 보인다고도 하며, 또 때로는 성령의 움직임이 어느 쪽에서 강하게 느껴진다며 방향이나 위치를 지적하기도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잇달아 숨이 막히는 듯한 괴성을 지르기도 하고, 갑자기 오열을 터뜨리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갑자기 어떤 종류의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며, 또 어떤 사람들은 마치 하늘에 무슨 실체라도 있는 것처럼 두 팔을 흐느적거리며 계속하여 어떤 율동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카페의 글에서 읽은 바에 따르면, 그 모든 것은 성령에 의한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기이하게 느껴지는 것은 내가 참석한 마지막 날인 세 번 째날, 즉 금요일에 있었던 일입니다.
교회의 사역자들이라는 사람들 여러 명이 수백 명이 촘촘히 운집한 사이를 지나다니며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기 시작할 때에 많은 사람들이 그대로 쓰러지더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입신'이라고 불리는 것인 듯 했습니다.
특히 그 날은 미국인 강사가 자신이 겪은 초자연적인 일들… 그는 그것이 자신을 드러내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작은 선물 같은 것이라고 했던 듯 합니다... 을 이야기해 주고, 또 모인 사람들의 기대심리와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이 더욱 커져 있었던 때라 더욱 그런 일이 생겼던 지도 모릅니다.
미국인 강사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신을 차와 함께 통째로 공간이동을 시키신 주님에 관한 일, 세계적으로 열 몇 번의 건이 보고된 적이 있다는 구약시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날마다 내리던 양식인 '만나'가 하늘에서 내린 사건, 예배 중 사람들의 이가 금니로 변한 일, 금전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던 한 예배처에 예배시마다 금가루가 하늘에서 떨어졌던 일, 그리고 그들이 몇 달 후 양탄자를 들어내어 그곳에 쌓인 금가루로 재정적인 빚을 해결했던 일, 또 그 외에 사람들이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 있었다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이야기해주었던 것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로서는 믿기 어려운 일일 뿐 아니라, 무엇을 위해 그런 소소한 사건들이 일어나야 하는 것인 지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아무튼 그 날, 빽빽히 운집한 사람들은 공적인 말씀과 기도순서가 끝날 때가 되어도 흩어질 줄을 모른 채 모두가 서서 기도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열심의 모습은 내게 처음에는 의아함과 함께 작은 두려움이, 그리고 후에는 나 자신이 무얼 어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님에도 그들을 향한 막막함이, 그리고 그런 열심으로 모인 사람들을 공동체로 두고 책임지고 이끌어 나가야 할 목자는 또 어떻겠는가 하는 생각에 또 다른 막막함이 들었습니다.
기도의 시간인데, 나 자신은 기도할 것도 다 잊은 채 마음에서 번져 나오는 긍휼함으로 사람들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이 그런 신기한 현상 자체를 사모해서 모인 사람들이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저 만군의 주 하나님을 사모하고 뵙고 싶은 마음, 그 분을 위해 목숨을 다해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더욱 나아가고자 함일 뿐이겠지요. 그러나, 한 편 어떤 직접적인 체험을 하고 싶은 마음 또한 마음 한 켠에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나 자신, 보고 듣고 감각할 수 있는 세상만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 온 사람으로서 나 자신 조차 이해하기 어려웠던 일들을 지나왔으면서도, 앞서 말한 공동체를 통해 보고 들은 체험의 이야기들이 잘 믿어지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나 자신의 어리석은 시각으로 보기에는 무시로… 주님이 그렇게 아무 때나 쉽게 자신을 그런 특별한 방식으로 나타내시고, 터무니 없어 보일 만큼의 약속과 사명을 남발하시는 분인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나의 믿음이 너무 작을 뿐 아니라 아직도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 그나마 스스로 보고 듣고 체험한 것이 아니면 합리적으로 또 과학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것에 대해서는 마치 미신처럼, 또는 집단 무의식에 의한 동화 현상 내지 자기 암시나 강한 바람에 의한 환각현상으로 차라리 이해하고 싶어하는 부분이 있어서일지도 모릅니다.
또 한편, 그것이 정말 성령님에 의한 것이라면 왜 같은 자리에 있는 내게는 전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인가 하는 의아함도 그런 판단에 한 몫 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툭툭 쓰러지던 어느 날, 예언에 능하다는 전도사란 여성이 내 앞쪽으로 지나가면서 내게도 머리에 손을 얹었던 때에도, 서울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에 그 예배처에 처음 방문했을 때 말씀을 마치고 통로를 지나가던 목자가 갑자기 무슨 이유인지 내 앞에 멈추어 머리에 한동안 손을 얹고 있을 때에도 쓰러짐은 커녕 그 어떤 생각이나 기운 조차도… 아무 것도 느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임하심을 뜨겁게 체험하는, 주님을 향한 사모함으로 정결하고자 하는 강한 목적의식을 가진 헌신의 마음으로 모인 예배처에서 거룩한 감동을 느끼기는 커녕 전혀 맹맹함으로 앉아 있던 나를 생각하면 한 편으로는 나 자신의 영적 민감성에 대해 스스로 의문을 가져 보게도 됩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나 역사하심은 누구에게나 동일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과, 또 그렇게 얼핏 무질서해 보이는 집단적인 행동을 보이는 현상에서 떨어져 있을 수 있음에 오히려 안도하게 되기까지 합니다.
한국에 돌아와 예배를 드리러 간 몇 예배처에서 나는 눈에 뜨이는 사람이 되어 있더라는 것을 알게 되었노라고 썼던 적이 있습니다.
등록하여 출석하고 있는 교회 또한 그 중의 하나인데, 특별히 목자와의 첫 마주침에서 있었던 이상한 일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내 마음의 부담감을 덜고자 털어놓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 날, 예배처 앞에서 아이들과 나를 내려주고 주차하러 갔던 남편은 아직 예배당으로 들어오지 않고 있었습니다. 일층 왼쪽 뒷부분에 앉은 나는 남편이 우리를 제대로 찾아올까 하는 불안함 가운데에서도 앞에서 몇 사람이 인도하는 찬양 가운데에서 성령의 기운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
잠시 후, 모두가 함께 기도하는 시간에 기도를 마치고 눈을 뜨는 순간, 앞 쪽 불이 꺼진 무대 위에 선 몇 사람들 중 나를 주시하고 있던 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무대 위에 다시 불이 켜지고 그 사람이 이야기를 시작할 때에서야 주변에 서 있는 다른 청년들과는 다른 목적으로 선 사람, 즉 평상복 같은 편안한 차림을 한 목자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곧이어 남편이 우리를 찾아 자리에 앉았고 말씀이 시작되었습니다. 목자의 관심이 지나가는 것을 가끔 느꼈지만, 익숙하지 않은 예배 방식과 툭 터진 무대의 이 곳 저 곳을 바라보느라, 또 지난 날의 경험으로 인한 조심성으로 인하여 나는 귀를 통해서만 말씀을 듣거나 가끔씩 경계를 담은 눈으로 조심스럽게 앞을 스치곤 했을 뿐이었습니다.
목자는 ‘씨 뿌리는 사람’에 대한 비유를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목자의 말씀처럼 그 이야기는 각기 다른 사람을 통해 여러 번 들어왔고, 성경을 통해서도 여러 번 읽었던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그날, 그 이야기는 초입부터 이상하게 나의 마음을 잡아 끌고 있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두 번 째 마음밭에 관한 설명과 목자의 해석이 시작되자, 그것은 내가 잘 들어두어야 할 대목이라는 생각이 머리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잘 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나로 하여금 점점 견딜 수 없이 집중하고 싶어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바람은 내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을 점차 누르고 있었습니다.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은 이전에 내가 있었던 예배처와는 달리 굉장히 많다는 사실, 즉 목자의 시선이 자꾸 닿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상은 눈에 뜨이지 않을 거라는 생각으로 안심하는 순간, 나는 말씀을 잘 듣고자 경계심을 푼 채로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말씀이 나를 향해 몰려온 것이..
.주의 말씀이 우리의 골수를 쪼갠다는 표현을 성경의 어디에선가 본 듯 합니다. 그러나 그날의 나의 경험은 주의 말씀이 나를 향해 달려 들어왔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듯 합니다.
그런 상태에서 목자와 눈이 마주친 순간 벌어진 일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자와 말씀을 듣는 자인 나 사이에 놓여 있던 공간이 일순간에 양쪽에서부터 안쪽으로 빨려들 듯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인간이 속한 3차원의 공간이 줄어들었을 리는 없겠습니다. 만일 그랬다면 그 반경 안에 든 사람들도 모두 느꼈을 뿐 아니라 그 줄어든 공간이 사람들을 수용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내가 본 공간은 어쩌면… 영의 세계에도 공간이 존재한다면 아마 그런 차원으로 설명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튼, 십 오 미터는 족히 떨어진 공간은 순식간에 삼 사 미터 정도로 줄어 들어버렸으며, 너무나 놀란 나는 더 공간이 줄어들어 충돌하기라도 할 세라 마치 뜨거운 불에 닿은 손을 떼어내듯 화들짝 놀라며 눈을 떼어냈던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깊은 교제를 나누며 살아가는 분들 가운데 이런 경험을 하신 분들이 혹 많은 지는 모르겠으나, 나로서는 전혀 예기치 못하게.. 그것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라 한동안 스스로 의아하게 여겨 온 일이기도 합니다.
또… 말씀을 전했던 목자도 같은 현상을 보셨던 것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적인 힘이 각인되어진 깊이가 내게 그러했듯 목자께도 컸을 것임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구주로 확실히 받아들이는 그 순간부터 우리 안에는 이미 성령님이 내재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부족하지만 주님과 온전히 동행하고자 하는 크리스찬인 우리들 가운데 계신 성령님은 그저 세밀한 음성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실 뿐 아니라, 또 일상에서의 갖가지 일들을 통해 우리를 인도하실 뿐 아니라, 때로 우리의 눈에 확연하게 드러날 만큼 역동적으로 움직이시는 때가 있음을 나는 이 작지만 깊은 마주침 안에서도 인식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날의 나를 잡아 끌었던 말씀, 기쁨으로 감성적으로 주님을 맞아들이나 시련이든 어떤 것을 통해서든 잘 흔들리는 사람에 대하여 버티는 힘을 가지라고, 말씀을 하나하나 다지며 굳건한 믿음으로 서라는 말씀을 실천하듯, 때로 갈등하고 흔들릴 때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이 믿음의 터 위에서 예배를 드려온 것을 감사하게 여깁니다.
그 날의 목자 뿐 아니라 때때로 뵙는 여러 목자님들의 말씀 속에서도 그 온유한 성품을 보면서 새로운 열림의 마음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고 받아들여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건강하신 모습으로 또 더욱 새로운 모습으로 주님의 말씀을 전해 주실 목자를 곧 뵙게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