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이면 중국어를 배워야 한다는 딸 아이에게 기초 정도는 가르쳐주어야 하는게 아닐까 싶어 엄마가 먼저 중국어를 배워두기로 한 지 몇 주 되어갑니다.
큰 목적의식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인지 배움 자체에 대하여는 그리 흥미를 느끼지는 못합니다. 몇 년 전 독일 VHS에서 내게도 외국어요, 자신에게도 외국어인 독일어를 함께 공부했던 중국청년 량.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가 어떤 종류의 것인지 사정을 잘 몰랐을 주변인들이 ‘유부녀와 총각’을 때로는 걱정스런 눈으로 보기도 했던 량과의 재미있는 일화들을 떠올리며, 중국어에 대해 관심을 가져 보려고 애를 씀에도 그렇습니다.
그 중국어 클래스에는 독특해 보이는 사람들이 몇 명 있습니다.
그 중에 스스로 50대라고 나이부터 먼저 이야기하는 한 여성은 교직에 있었다는 사람으로, 자신에 대한 자부심과 의지가 확고해 보이는 인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밖에서 보는 인상 뿐 아니라, 세상의 흐름이나 생각에 흔들림 없이 자신을 고수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태도를 가진 그녀는 얼핏 남성적인 힘과 고집이 느껴지는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소위 강남이라는 곳에 살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두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지 않고 스스로 공부하게 했다는 이야기라든가, 산교육을 실천하고자 때로 학교 공부를 멈추기까지 하며 아시아와 남반구의 나라들, 유럽의 몇 곳을 포함해 지금까지 십 개국을 함께 조사하고 여행한 이야기들은, 그녀의 삶의 태도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더 자세히 들어보고 싶어지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오늘 수업이 끝난 후 쏟아지는 비 속을 지나 함께 탄 마을 버스에서, 나는 다른 때처럼 조금 더딘 듯 천천히 이어지는 말투로 들려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비가 주는 분위기 때문인 것인지, 그것은 ‘그리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야기는, 요즘에도 있을까 싶은 포대기에 아기를 업고 버스에 오른 아기 엄마가 우리 앞 쪽에 자리잡고 앉는 것을 지켜 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십 오 년간 인문계 남자 고등학교에서 국어선생님이었다는 그녀는, 그 시절 제자들이 저지르는 사고들로 골머리를 앓곤 했던 모양이었습니다. 그런 ‘사고뭉치’들을 감싸 안고 덮어주며 인생을 가르치려는 교사가 되고자 애쓰며 살았던 듯 했습니다.
때로 어떤 학생들은 또래 여학생들과 문제를 일으키곤 했는데, 한 번은 학교에 오랫동안 나오지 않고 결석상태이던 한 ‘녀석’이 밤중에 그녀를 찾아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아기와 여자친구를 데리고…
남학생이고 여학생이고 자신들의 집에서 받아줄 리가 없었을 것이 뻔한 상황에서, 그녀는 역시 아기였던 자신의 둘째가 쓰던 포대기, 젖병, 보행기 등을 다 내어주어야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썽 한 번 없이 공부 잘 해 주던 학생들보다, 그렇게 새까맣게 속을 썩이던 ‘녀석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그녀의 가슴에 깊게 남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굴곡이 느껴지지 않는 그녀 특유의 말투로 그렇게 천천히 자신의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가슴에서 조용히 꺼내어 놓듯 하던 그녀가, 갑자기 가슴이 아린 듯 ‘가슴이 사무치도록’ 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를 통해 조용히 굴곡없이 들려 오던 이야기가 그렇게 두 단어로 끝을 맺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갑자기 바뀌어진 색깔로 격한 감정을 담은 채 한 음절 음절 들려 온 것이기도 했지만, 분명 다른 곳에서도 여러 번 들었을 그 마지막 두 어절의 표현이 이처럼 적절하게 적절한 곳에서 표현될 수도 있을까 싶을 만큼 내 마음 속으로 파고 들었던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을 사랑하고 그들이 잘 되기를 부모 만큼이나 간절한 마음으로 원하며 바라보았을 한 선생님으로서의 사랑이, 그리고 그 마음으로 보내었던 그 시절에 대한, 그 제자들에 대한 그리움이 그녀가 내뱉듯 한 단 두 어절로 내 가슴에 통째로 부딪혀 왔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세상 어떤 일에도 이제는 놀라지도, 마음의 동요나 감정도 없이 이미 초월해 버린 듯, 흑백사진 속의 인물 같던 한 사람이 갑자기 생생한 실물로 튀어나온 것 같은 기분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녀가 버스에서 내리고 난 후에도 그녀의 입을 통해 나온 ‘구절’이 사라지지 않은 채 버스 안에 남아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며, 차라리 엔지니어나 공학관련 업무를 담당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아 보였던 그녀가 국어선생님이었다는 것을 새삼 떠올렸습니다.
그저 이야기의 내용만을 듣고 있는 듯 했지만, 사실은 그녀의 입을 통해 나온 말들 하나하나를 통해 그리고 마지막에 그리움으로 압축된 마음을 단 두 어절로 표현하며 끝맺었던 그녀의 ‘말’이 내게 미친 위력을 생각하면-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 같지만 우리말을 사용하는 것에 관한한- 나는 그녀에 비하자면 너무나 서툴고 아는 바가 극히 제한적인 사람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녀 같은 전문가가 아니라 나 같은 사람이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이 조금 부끄러워지는 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