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나절에 쏟아지던 비가 멈춘 오후, 은행에 잠시 들렀습니다.
차례를 기다려야 하는 잠시의 시간,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길게 늘어선 잎이 무성한 플라타너스들이 주는 푸르름 속에 눈을 두고 있으려 유리벽 쪽의 의자로 다가갔습니다.
그 때, 커다란 유리창의 밑부분에 아기 손바닥 반 만한 크기의 갈색 물체가 보였습니다. 매미였습니다. 앞다리를 약하게나마 조금씩 움직이는 것으로 보아 아직은 살아 있는 매미였습니다.
옆으로 조금 비껴선 의자에 앉으면서 건물 안에 갇힌 매미가 염려스러워졌습니다. 저렇게 죽어갈 것만 같았습니다.
창문을 열어줄까 생각하며 유리창을 바라보았지만, 세 쪽으로 이루어진 유리창은 열리게 되어 있지 않은 듯 했습니다. 그렇다고 옆 쪽으로 난 출구인 유리문을 매미가 알아차릴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넌 어떡하다가 이런 곳엘 들어왔니…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습니다.
매미가 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사는 아파트 주변의 큰 나무들에 보금자리를 틀고 아침마다 합창을 하는 매미들의 우렁찬 울음이 아닌, 금방이라도 꺼질 듯 가늘고 희미한 울음소리였습니다.
그렇게 가느다란 매미의 울음소리가 계속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습니다.
벽 쪽으로 붙어 있는 공과금 자동 납부기 앞으로 비틀거리듯 흔들리며 걸어가던 한 남자가 매미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육십이 좀 넘어 보이는 남자는 가벼운 중풍 후 회복기에 있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납부기에서 일을 마친 남자가 돌아서더니 창가 쪽으로 다가갔습니다. 긴장한 채로 남자의 다음 행동을 주시하고 있는 나의 눈에, 매미를 향해 내미는 남자의 손이 보였습니다.
남자가 매미를 잡자, 매미는 가느다랗던 울음 소리 마저 멈추었습니다. 죽은 것은 아닐까 염려스러워졌습니다.
한 손에 매미를 잡은 남자가 비틀거리며 걷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떨어진 쓰레기통을 그냥 지나치는 것을 보자 안도감이 밀려 들었습니다.
내 앞을 지나고 유리문을 지나 밖으로 나간 남자는, 푸른 이파리를 잔뜩 머리에 인 한 그루의 플라타너스 위에 매미를 올려 놓았습니다. 바라보는 내게 기쁨이 번져왔습니다.
다시 은행으로 들어 선 남자를 의식하는 사람도 없었고, 남자 또한 자신의 행동을 누군가 보고 있을 거라는 것 조차 의식하지 않는 듯 했지만, 내 얼굴 위에 떠오른 행복한 미소는 좀처럼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무더운 여름날 시원한 얼음물을 마신 여운이 내내 남아있는 것처럼 마음이 시원해져 왔습니다.
조금 후 남자는 매미를 데리고 나갔던 문을 다시 나섰습니다. 매미를 놓아준 나무 앞 쪽으로 한 번 다가섰다가 이내 길 옆 쪽으로 사라져가는 남자의 발걸음이 아까와는 달리 젊은이처럼 힘차 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