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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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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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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기도


BY 플러스 2007-03-22

아줌마닷컴에 들어올 때면 잠깐씩 들르곤 하는 토크방에서  윗집의 소음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사람이 쓴 글을 읽었습니다.   그 글을 읽으면서어제 문득  알게 된 일을 하나 적으려고 합니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여러 해 살다와서인지,  대도시 공동주택의 어수선함은 금세 적응이 되지 않는 부분이었습니다.  더우기 우리가 이사온 후 보름 쯤 후에 이사온 윗집의 심한 소음은 한동안 인내심의 한계를 느낄 만큼이기도 했습니다.

 

낮에는 물론 늦은 밤에도 쿵쿵 울려대는 소리들로 인해 견디다 못해,  한 달쯤 후에는 귀마개를 구입했을 정도였습니다.  매일 그런 일들이 반복되자  어느 순간부터는 귀에  통증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주방에서 식재료 손질을 하고 있던 보름 쯤 전의 토요일 낮,  윗층에서  소란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되풀이되는 과정인한참 동안 들리는 천장을  쿵쿵  울리는 소리,  연이어 들리는 십 여 분간의 괴성그리고  가장  참기 어려운  대목인    아이의 높은  소리의  울부짖음이 시작되는 것이었습니다그 울부짖음은 한 번 시작되면십 분이고 이 십 분이고 그치지를  않곤 하는  것입니다.

 

참기 어려운 것은 나만이 아닌 지라,  마늘 껍질을 벗기고 있는 내게 아이들이 다가와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을 향해서는 공동주택은 원래 서로 참고  살아야 할 일이  많은 것이라고 이야기하면서도,  나 자신도  점점  인내심이  줄어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십 여 분이 지나가도록 그치지  않는 울부짖음을 따라그런 아이에 대해 내 마음 한 편에 늘 자리잡고 있던 안쓰러움마저 어느새 치밀어 오르기 시작하는 화로,  그리고는 아이에 대한 비난과 냉정의 마음으로 대체되려고 하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어린 아이를 향해 든아이를 키우는 엄마답지 못한 마음에 대해 뉘우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자방금 전까지는 내 머릿속으로  파고들던  아이의  울음소리가  이제는 마음 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했습니다.   

 

위로는 똑똑하고 야무진 언니아래로는 사랑스런 아기인  남동생 사이에서 자라나고 있을언니와는  달리  자신의  감정과 의사분노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도 아직 제대로 표현할 언어수단을  갖지 못한 어린 여자 아이의  힘든 마음의 상태가,  슬픔이 그 울부짖음 속에서 들리는  듯 했습니다.

 

여전히 손은 일을 멈추지  않은 채로,  아이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저런  방법으로  참아 보려고  노력만 했던 두 달 만에야  처음으로,  이틀에  한 번은  어김없이 때로는  하루에도  두어 번씩  울부짖는  한 아이를  위해  마음으로 기도할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를 하는 동안  내 귀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피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의 조용함 속으로 깊이 들어가  아이의 울음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아이의  마음의  싸이클에  맞추어진 것처럼..  그리고 어느 순간아이의 울부짖는 소리는 아이답지 않은 조용하고 서러운  흐느낌으로 바뀌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 엄마가 그제야 돌아온 모양이었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다시 온갖 감정이 뒤섞인,  또 다른  외침 소리를  한참  들어야 했을 텐데,  아이 엄마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평상시와  다른 것에  놀란 모양이었습니다.   당황한 채로 아이에게  달려와  영문을  묻는,  놀란 목소리가 바로 머리 위에서 들려왔습니다.  ….. 왜 그러니왜 그러니?”   아이의 어른 같은 흐느낌은 좀 더 계속되었습니다.

 

이틀 전 저녁아들 아이가 내게 다가와  '요즘  위층이  조용하다'고 말했습니다.  그제서야 나 또한 위층에서 날마다  들리던,  아파트를  운동장 삼아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소리를  비롯한  소음이 훨씬 줄어들었을 뿐 아니라,  아이의 울부짖음도 들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습니다가끔씩 현관문을 통해  아이들과 위층 여자의 이야기 소리만 들었던 기억이 날 뿐이었습니다.  

 

갑자기 아이들이 달라지는 것도 아닐텐데… 그녀의 태도로 보아 이사 오기 전에도 이웃으로부터 많은  항의를 받으며 살아온 듯 한데,  어떻게 이런 변화가 생긴 것일까 하는 생각이어제 다른 일과 연관하여 들던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의 성향상 오래 지속되기 어려울 조용함이라 하더라도그 아이의 앞으로의 인성의 발달에 적지 않은 변화가 될 작은 응답이 일어난 것임을,  십 여 분 사이에 변화되어가던 울음소리를 떠올리며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즉시 이루어진 기도 응답에 대해그 날 내가 가졌던 마음의 자세를 떠올려 보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괴로워서 피하기 위함이 아닌아이에 대해 밀려오던 측은함으로 마음을 모아 드렸던 기도였기에 주님의 뜻에 합당하게 일치되는 기도가 아니었나 하는 것을 돌아보게 되는 것이지요..

 

예전에  한 목자는나 뿐만  아닌  모든  교인들이 그렇게 해 주길  바랐겠지만 특히 내게  '마음이  정결한  자의  기도는 주님이  잘 들어주신다' 말로,  기대와  절실한  바람을 담아  '부흥'  위해  기도해 주길  바라곤  했었습니다.  

 

  내게  '마음이  정결함' 이야기하시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뿐더러,  그런 바람은 내게 부담이 되곤 했습니다.   갈등과   회의를  느끼게 하곤 했습니다.  언젠가 다른 글에서 쓴 적이  있지만 공동체에  필요한  것은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부흥이 아니라,  회복되어져야 할’ 신뢰이며 사랑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몇 년이고 비가 내리지 않는 불모의 땅에  비가 내리기를  갈망하여  하늘만 바라보고 밤낮으로 온 열심을 다해 기도하며,  오직 그 부흥에만  매달린 것처럼 보이던 목자에 대해 미안함이 들면서도,  그 열심에  동참할 수  없었습니다.  나의 그런 점이 바람직하기만 한 것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마음을 낼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에 의하면 기도의 응답은 다양하다고 합니다응답의 방식도 다양할 뿐 아니라때로는 무응답도 응답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든 자신의 소망과 고민을 놓고 기도할 때 무응답이 아닌 응답을또 자신이 원하는 방향의 응답을 바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우리가 원하는 응답을 잘 받을 수 있는 기도가 있다면 그것은 또 어떤 것일까 하는 생각도 해 볼 수 있겠지요.  나로서는 그것이 바로그분의 뜻에 합당한 기도일 거라는 생각을이제는 살만해진 내 주거 공간 속에서 해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크리스찬으로서 해야 할 일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사회의 곳곳에서또 일상의 자리에서 이웃을 위해 하는 보이지 않는 기도'인 것이며,   그것은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의 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