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마다 차를 몰고 좋아하는 숲을 찾은 지가 일 주일이 되었습니다.
독일에서 맞는 마지막 가을을 매일 매일 그 숲에서 여유롭게 보내고 싶다는 바람을 가질만큼, 숲은 날마다 아름답고 풍성한 가을 속으로 한 걸음씩 들어서고 있습니다.
콘서바토리의 학기에 맞추어야 하므로 이 달로 피아노 레슨도 마감을 하고, 남은 시간은 숲을 거닐고, 책을 읽고, 하나씩 하나씩 정리해 나가야 할 일과 돌아가 적응하는 데 필요한 일들을 챙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때인 것인데, 그 여유로운 마감을 하려는 방향을 슬쩍 흐트리는 제의가 선생님으로부터 왔습니다.
콘서트를 하나 더 해 보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짐을 싸고 하는 등등의 일로 번거로울 것을 알지만, 급박한 시간이나마 다음 달에라도 한 번 더 연주기회를 가져 보자는 것이었지요. 확실히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가지려던 여유를 저당잡힐 만한 제의였습니다. 더군다나 아내이자 엄마인 나로서는 마음에 여유를 가질만한 겨를이 없을 일이 몇 가지 남아 있기도 하니까요.
얘기를 하시는 선생님의 커다란 눈이 붉어져서 물기가 돌고 있었습니다. 독일인들 특유의 무뚝뚝함도 있지만, 감정 표현에 서툴기만 한 남자이기도 한 선생님은 이별이, 그냥 보내기가 섭섭하신 것입니다. 한 번이라도 무언가 더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어 하는 커다란 덩치인 선생님의 그런 모습은, 멀리 시집 보내는 딸에게 무엇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어하는 친정 엄마의 모습 같아도 보여 찡한 마음이 들면서도 슬쩍 웃음이 나기도 했습니다.
사실, 선생님의 그런 제안 하나에, 이제 더 이상 선생님과 작품 공부를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생각에서 맥이 빠져 있던 음들이 금세 활기를 띠고 쩡쩡 울리는 소리로 변하기도 할 만큼 연주회라는 말 자체가 긴장만큼이나 흥미를 가지게 하는 일이기는 했지만, 이 시점에서는 욕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망설여집니다. 그 여유없음만큼 제대로 준비가 되지 못할 수도 있겠지요.
쉽게 '못하겠노라'고도 '하겠노라'고도 말하기 어려운 제의를 두고, 새삼스럽게 지난 오 년 여간 콘서바토리에서 지낸 시간들의 귀중함을 느끼며 감사하게 됩니다.
언제까지고 그 맑은 공기와 녹음이 그리워질 독일의 풍성한 '숲' 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훨씬 더 그리워질 레슨실과 연주홀. 그 안에 담긴 소중한 시간들. 그 시간들 속에는 항상 내가 가장 가까이 지낸 독일인 남자인 선생님의 웃음이 남아 있겠지요. 그리고 체구와 어울려 보이지 않는 눈물이 그렁그렁하던 커다란 파란 눈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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