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잠시 필요한 '도피', 혹은 '전환'을 위해 씁니다.
내가 사는 곳은 지어진 지 얼마 안되는 집들이 모여 타운을 형성한 곳입니다. 라이엔하우스라고 불리는 형태의 집들로 다섯 채의 집들이 벽을 대고 일렬로 서 있습니다. 각각의 집들은 삼층으로 이루어진 집들이고, 그런 다섯 채의 집들이 다시 앞 뒤로 일렬로 줄을 지어 서 있습니다.
내가 앉은 자리에서는 현관을 서로 마주 보게 되어 있는 뒷 줄의 집도 보이고, 거실 유리문들이 서로 마주 보게 되어 있는 앞 줄의 집들도 보입니다.
거실 유리문 쪽으로 마주 보는 앞 줄의 집들은 서로가 각각의 잔디를 사이에 두고 있으므로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셈입니다. 거실 유리문 쪽으로 다가가 창 밖을 보면 앞 줄의 다섯 채의 집들의 잔디들이 한 눈에 들어 옵니다.
그렇게 거실 쪽으로 우리 집과 마주한 집의 두 딸을 둔 독일 아저씨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집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투명한 커튼 대신에 불투명한 천 커튼을 거실 유리문에 달아 놓았습니다. 커튼 조차 달지 않은 앞 집과는 다르지요.
어느 날, 피아노 연습을 마치고 아무 생각 없이 거실 커튼을 들추었다가 나는 화들짝 놀랐습니다. 바로 정면에, 즉 자신의 거실 유리문 안에 선 앞집 아저씨가 환하게 웃으며 기쁜 모습으로 손을, 아니 양 팔을 나를 향해 마구 흔드는 것이었습니다. 서로 인사도 나누어 본 적이 없는 사이인데다가 사람이 있으리라고도 생각지 못한 나는 그 모습을 보자 마자 순간적으로 커튼을 휙 닫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커튼을 닫아버리고 나서야, 그 아저씨가 손을 흔든 대상은 나임이 확실하다는 것, 그리고 손을 흔들어 주지는 못하더라도 미소라도 지었어야 이웃간에 예의가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에 아들 아이가 생각이 난 듯 내게, 어제 우리 앞 집 아저씨를 길에서 만났는데, 아저씨가 너희 엄마 피아노를 무지 잘 치시더라 하며 말을 건네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남자는 자신이 한 칭찬을 내가 이미 들었을 거라고 예상하고 아는 척을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요즈음 나는 선생님이, 쉬고 싶은 여름인 7월에 있을 연주회에 연습하여 꼭 참여하길 바라시는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타지'를 덮어놓고, 베토벤의 마지막 소나타들을 연습하고 있습니다. 가파른 고개를 쉬지 않고 계속 넘나드는 듯한 곡을 미뤄 둔 채, 레슨 때마다 다른 곡을 들고 간 지가 꽤 되었습니다. 베토벤의 소나타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요즘의 내 체력 탓도 있겠지만, 그 숨가쁜 곡 대신 내면의 깊은 곳으로 침잠하며 도도한 흐름으로 들고 나는 베토벤의 소나타가 내게는 훨씬 더 편하고 좋습니다.
며칠 전에도 베토벤의 마지막 소나타 세 곡 중 두 곡을 연습하고는, 그대로 집 밖으로 나섰습니다. 그의 음악이 아직 내 안에 남아 있는 채로 산책이 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집을 나서서 들녘으로 향하는 타운의 큰 길로 들어섰을 때에 주차장에 선 세 사람이 얼핏 보였습니다. 함께 이야기하고 서 있던 세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나를 부담스러울만큼 주목하며 바라보고 섰고, 나머지 두 사람이 그런 그 사람을 따라 나를 함께 주목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선 사람들을 지나쳐 가야 하는 짧은 순간에 뭔가 인사를 하고 지나칠 것인지, 그냥 지나쳐 버릴 것인 지를 내 옷에 걸린 안경을 만지작거리는 것으로 그들의 주목에 잠시 대응하였으나, 중간에 아무런 걸림 조차 가지고 싶지 않았던 그 때의 나는 안경을 집어 쓰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무반응으로 지나치는 즈음에 함께 섰던 사람 중 여자가 옆에 선 남자와 나를 함께 의식하며 당황스런 웃음을 내게 짓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그녀를 바라보지 않은 채, 나는 보일듯 말듯한 미소만 담은 얼굴로 스쳐 지났습니다.
서로 하던 이야기를 멈춘 채, 내게 신경을 쓰고 있던 남자는 앞집 아저씨였으며, 여자는 그 부인이었고, 또 한 남자는 아마 손님이었던 모양입니다. 앞집 아저씨는 아마 내게 인사를 하고 싶어서 이야기를 멈춘 채 내가 바라보거나 하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베토벤 소나타의 위력이겠지요.
잠시 바라보고 미소라도 지어줄 것을 나는 방해받고 싶지 않은 듯한 표정으로 도도하게 지나가 버렸던 것이지요. 마치 '음악가님' 처럼 말이지요. 앞집 독일 아저씨는 내 음악이, 그리고 어쩌면 나도 , 좋은가 봅니다. ^^
특별히 왕래하는 독일인들이 있는 것은 아닌데, 왜 나는 한국인인 분들 보다 독일인들이 훨씬 편하게 다가 오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감추지 않고 사는 이 사람들이 내게는 훨씬 자연스럽게 여겨지기 때문은 아닌가 싶을 때가 있습니다.
때로, 여기에서 만나게 되는 많은 한국인들에게서 나는 답답하고 갑작스럽게 무기가 되어 나를 찌를 것 같아 보이는 '감춤들'을 봅니다. 그들은 비밀스러운 덮개로 자신을 가리고, 또 무언가 내가 모르는 것을 자신들은 이미 알고 있는 듯한 분위기로 사람을 숨 막히게 합니다. 그들은 아주 복잡하고 정교한 세상에서 살며, 나는 아주 단순하기 그지 없는 세계에서 사는 모양입니다. 그들의 잣대로 보기에 중요한 것인, 더 강한 영역 속에 거하는 사람은 누구일 것이며, 위험에 처하기 쉬운 사람은 또 누구일까요. 또 그 위험은 얼만큼 위험한 것이라는 걸까요.
앞집 아저씨는 가끔 일요일이면 삼 층의 다락방에서 창문을 열어 놓고, 기타를 치며 귀에 익숙한 흘러간 팝송들을 부릅니다. 오늘은 내 음악 대신에, 앞집 아저씨의 노랫소리를 듣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