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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의 창


BY 플러스 2006-02-15

오랫만에  텅 빈 집 안에  홀로 있습니다.   하루 종일  혼자서  지내면서  낮부터  마음에  떠오르기 시작한  교회가  둘이 있었습니다.   아마,  잠시  가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이겠지요.    

 

그  교회들은   여기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정도  달려가면  다다르는  도시,   마인츠에  있는  교회들로,   하나는  마인츠 대성당이고,   또 하나는  성 슈테판 교회입니다.   마인츠 돔의  오래된  석조건물 안에서  천년이 넘는  세월의 냄새 속에서  올려다 보던   독일의  구름낀  하늘같은  옅은  보랏빛 회색톤을   덧입혀 놓은 듯한   부드러운  색감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보고  싶었고,    그리고  슈테판 교회의  샤갈이  그린  스테인드글라스가  보고  싶었습니다.   오래 전에  보았던  그  영상들을  기억 안에서  끄집어  내려고  머릿 속에서  뒤적거리는  동안에  문득   성 슈테판 교회에서  샤갈의  그림들이  그려진  소책자를  샀던  것이  기억이 났습니다.  

 

컴퓨터 앞에  앉은 채로  그 책자들을  앞에 놓고  들여다 봅니다.

 

책자안에는  샤갈이  그린  길쭉한  창들이  열  두 개 놓여져 있습니다.   그 교회 안에  들어 섰던  때의  기억이  그  창들을  통해  떠오릅니다.   우리가  그  교회에  도착한  것은  교회의  문을  닫으려는 찰나였습니다.    잠시만  볼 수 있게 해주겠다며   열어  준  문 안으로  들어 섰을 때에  교회는  사방에  열려진  긴 창들로  인해   바다색을  띠고  있었습니다.   모든  창들이  짙은  파란색으로  늘어 선 채,  사방의  벽을  통하여  예배당을  감싸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파란바다 같은  창 안에  낯익은  화법의  그림들이  조각 조각  그러나  연결되어진 채로  늘어 서 있었습니다.   거기에  샤갈의  손길들이  들어  있었지요.

 

마인츠에  살던  한 지인은  그  교회를  자주 찾는다고  했었습니다.   그  예배처소에  앉아  조용히  그  창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에  깊은  평화가  찾아들며,  때로  빛이  그  창들을  통해  예배처로  쏟아들여져  올 때면   마치  천국에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드노라고  말했었습니다.  

 

그  예배처 안에  오래 앉아 있을 만한  시간이  내게는  없었으므로,  그런  기분을  느껴 볼 만한  여유도  없었으나,   예상치  못한,   현대적인  그림과   파란 바다색 일색인  창들 아래에서  어떤  조용한  그러나  스스로  압도되는 듯한   신비감을  느꼈던  것이   사실입니다.    

 

전체적인  창의  모습이  아니라  부분 부분의  그림을  보여주는  사진들에로  눈을  옮겨 봅니다.   그 곳에는  소돔과 고모라를  향해 가는  천사들이  아브라함과  만나  이야기하는  모습,  모세가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을  들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로  다가가는  모습,  낙원이라  할 만한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 나무 아래  아담과  하와가  서 있는  모습,   또 천지창조를  주제로  한  그림들,   주인의  아들의  배필을  찾으러  가기 위해  약대를  탄  아브라함의  종과  우물가 곁에 선  리브가의  그림,  리브가와  이삭이 만나는  그림,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그림,   창조를  찬양하는  천사의  그림,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불입니다'라는  성경 구절을  묘사한  그림들이  보였습니다.

 

문득  언젠가  한 라트하우스(동사무소)에서  연  샤갈 그림 전시회에  갔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그  전시회에는  두 개의  방에  빼곡히  샤갈의  그림들이  걸려  있었는데,   그  그림들은  모두가  마치  습작처럼  느껴질 만큼  빠르고   섬세하지는  않은  필치로  그려진,   그러나  샤갈의  화풍을  고스란히  담은  소박하고  아름다운,   그리고  그  모두가  '성경'을  주제로  한  그림들이었습니다.    판매도  겸하고  있었던  그  전시회에서  그의  그림을  한 점  사고  싶었지만,   완성도가  높다고  보여지지는  않음에도  꽤  비싼  가격 때문에  소장할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이  지금은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샤갈을  옆에  둘 수 있는  기회였는데  말이지요.

 

다시  샤갈의  그림들을  바라봅니다.    유태인이었던  그가  제도권의  종교  안에  있었다는  흔적은  보여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  성서는  또  하나님에  관한  생각은  자신의  몸 안에  깊이 배여진  흔적이자  근원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자신 뿐 아니라  같은  유태인들이  국외로  추방당하고,   또  학살되어지는  시대적인  비극  안에서  그가  느껴야  했을  암울함과  불안은   그의  그림  안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나겠지요.  

 

" 밤낮으로 나는 십자가를 진다. 나는 이리저리 떠밀리고 부대낀다. 벌써 밤이 나를 둘러싼다. 당신은 나를 버리시나이까, 주여, 왜인가요?"

 

그 말 안에는  샤갈의  어둡고  암울한  고백과  회의가  짙게  배여있는 듯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들에서는  러시아  민화나  우화를  눈으로  보는 듯한  소박함과  따스함이  늘  느껴지곤 합니다.

 

1973년  클라우스 마이어 목사가  샤갈에게  의뢰하기   시작한  성 슈테판 교회의  창들은   1978년 무렵  본격적으로  착수되어   1980년에서부터  1984년 사이에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20세기의  현대 미술사에서  그만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해 낸  샤갈,  그  완성무렵에는    이미  구십이  훨씬  넘었을  화가  샤갈이   성 슈테판 교회에 마련한  창들을  통해  정작  화가 자신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보았을까요.  

 

 

 

                

 

 

                        샤갈의 만년 작품:  대 서커스

 

                        그림을  더 보고 싶으신 분을 위한 주소:  http://youth.co.kr/im/rs2235.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