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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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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퉁이 2008-02-12

재활용 집하장에 커다란 상 하나가 나와 있었다.

상 뒤에는 '1983년 10월 22일 동창생 일동 늘 행복하소서' 라는

매직글씨가 제 색을 잃어가고 있음이 오래된 물건임을 알게 했다.

만 이십 년 하고도 사 년을 어느집 안방에서 혹은 거실에서

백일잔치 돌잔치 집들이를 겪었을 호마이카상이 네 다리를 구부린채

한쪽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이제 주인 곁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외식산업이 발달되어 정다운 사람들  집에 불러 따뜻한 식사 한 끼 나누던 정은 점점 줄어들고

식탁문화가 정착되면서 상을 펴고 접어 옮기는 수고가 사라지고 있다.

칼국수 한 그릇을 먹어도 칼국수 전문점을 찾고

보리밥 한 그릇을 먹으러 차를 타고 먼 길을 가는 수고는 하면서

어느 집에 모여 수제비를 뜯는 수고는 하지 않으려 하는 요즘이다.

나 역시 그 시류에 쓸려 내 집에 친구들 불러 모아 상추쌈 씻어 본 지가 언젠지 모르겠다.

 

우리집에도 커다란 호마이카상이 하나 있었다.

결혼생활 25년 동안 여섯 번의 이사를 했고, 그때마다 손님 상으로 아주 요긴했던 상이었다.

흠이 잘 생기지도 않았지만 흠이 생겨도 눈에 잘 띄지 않아

색깔이나 용도가 서민용으로 안성맞춤이었다.

그릇이 고상하지 않아도, 음식이 고급스럽지 못해도 정성이 맛을 더해주었기에 고맙던 시절이었다.

근사한 뷔페대신 단칸방 아랫목에서 돌잔치랍시고 친구들을 초대하면

십 여명이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한 돈짜리 금반지 주머니 하나면 감사했고

미리 담가놓은 포도주 항아리 바닥 긁는 소리가 나도록 퍼주어도 아깝지 않던 때가 있었다.

물질보다 정이 넘치던 시절이었다.

 

호마이카상은 수시로 다리를 폈다 오므렸다를 해야했다.

날씨 좋은 주말이면 비빔국수를 올리고, 열무김치가 잘 익은 날이면 보리밥을 올리고,

조갯살 넉넉하게 놓고 지진 부추전이 올라가고, 나름대로 근사한 생일케잌이 올라가는 날도 있었고,

스케치북 펼쳐놓고 크레파스 칠하기 좋은 날도 있었다.

어떤 날은 여분의 숟가락 몇자락 딸려 이웃 집으로 출장을 갈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날 부턴가 아픈지  다리를 잘 펴지 못했다.

관절이 상했는지 다리를 펼 때마다 비명을 질렀다.

수술을 해야 될 상황 같았다.

예전에는 상 고치는 의사도 있었는데 근간엔 보기 어려워졌다.

마음 다잡고 결정을 내려야 했다.

그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게 하고 정들게 했던 호마이카상을 보내기로 했다.

휘청거리는 다리를 모질게 접어 내쫒았다.

이내 인물 좋은 교자상 두개를 들여왔다.

발그레한 옻칠을 한 교자상은 인물이 고왔다.

사람 겉만 보고 모르듯이 이넘에 상도 그랬다.

인물은 좋은데 외부 반응에 민감했다. 얼룩이 잘 생기고 충격에 약했다.

말하자면 인물값을 못하는 것이었다.

그렇잖아도 식탁에 밀려 제 구실 하지 못하던 교자상은

눈도장 몇 번 찍고는 애물단지가 되어 앉을 자리는 커녕 서 있을 자리도 찾지 못해

장농 꼭대기에서 먼지를 덮어쓰고 몇년째 오므린채 누워 있다.

주인과도 저리 대면한데 옆집으로 출장이라도 보내면 집이나 잘 찾아올지 모르겠다.

불쌍한 신세다.

 

돌잔치도 부페에서 차려준 음식으로 대접하고

결혼식도 피로연 자리에서 먹고 헤어지고

집들이는 아예 생략하는 추세이다보니

상을 펴고 오므리는 일은 어느집 제삿날에나 할 일이 되어버렸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떨어져 사는 친지들, 만나면 헤어지기 바쁜 세상,

언제 느긋하게 밥상 퍼질러 놓고 옛이야기 되씹는 날 있으려나.

하릴없이 장농 위에 누운 교자상에 눈길 한번 던져본다.

너 펼쳐본 날이 언제였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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