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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무얼 드셨는지


BY 모퉁이 2006-08-08

식성이 하 시골스러워서 나중에 시골에 안주해도 먹거리 걱정은 안해도 되지 싶다.

강원도로 여행을 하던 중에 길 섶 깻잎 밭에 넘실대고 있는 이파리 커다란 깻잎을 보면

적당히 쪄서 쌈을 싸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먼저 드니,입맛도 별종스럽다고 퉁박을 받을 만도 했지 뭔가.

 

...

어촌은 아니었지만 바다를 끼고 있는 곳에서 자란 탓인지, 생선은 비린내도 모를 정도로

잘 먹는다만, 네 발 달린 육고기는 썩 좋아라 하지 않는다.

결혼하고 이십 년이 지났지만 내 손으로 끓인 고깃국이 몇 번이나 되는지 잘 세어보면

열 손가락을 다 접지 못할 것이라고 할만큼 드물었다.

그럼에도 잔병치레 없이 여지껏 지내온 것은 타고난 체질인듯 하다.

 

내가 고기를 싫어하는 이유를 굳이 대라면 우리 엄마를 탓하고 싶다.

내 나이 열한 살 어느 봄 날에 엄마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노란 개나리가 울타리를 타넘어도 못 본 척,  마루 끝에 앉아 히멀건 침을 뱉어내며 몸을 늘어 뜨리고  쓰러질 듯한 모습의 쾡한 눈을 겨우 뜨고 있었다.

저러다가 엄마가 우리를 두고 하늘나라로 가는 게 아닌가 싶어 울상이었지만  어데가 아푸냐고 물어보지도 못하고 웩웩거리는 엄마 옆에서  거즈 손수건으로 입을 막아주고 등을 두들겨 주는 게 내가 할 일 전부였었다.

 

그러던 어느 날,그 날도 마루 끝에 앉은 엄마는 노란 물을 쏟아내고  나는 그렁그렁한 엄마 눈을 쳐다보며 같이 울먹이고 있는데, 옆집 아줌마가 쟁반에 국수 한 그룻을 담아 오셨다.

'이거라도 먹고 기운 차리라'고 했던 것 같다.

국수 그릇을 받아 든 엄마가  국수 국물을 한 모금 후룩 마시더니 참 맛나게 드셨다.

그리고 남은 얼마를 나 먹으라고 주셨는데, 나는 국물을 마시다 그만 엄마처럼  웩웩 토악질을 하고 말았다. 나도 엄마와 같은 병에 걸렸나 싶을 정도로  엄마와 비슷한 증상이 난 것이다.

 

누릿한 국물 맛이 내 입 맛을 역겹게 했고,겨우 한 모금 넘긴 국물로 창자가 뒤틀리도록 심한 구역질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내 속을 뒤집히게 했던 국수를 엄마는 맛있게 드셨지만 결국  땅바닥에 도로 내 놓고야 말았다.  정말 이러다가 엄마가 죽지나 않을까 겁이 왈칵 났다.

 

그런 날이 한참을 가더니,소슬 바람 부는 그 해 가을에 나와 열 살 차이나는 막둥이 동생이 태어났고,그 날로 엄마는 웩웩 거리지도 않았고, 히멀건 침을 흘리지도 않았고, 덕분에 내가 지금도 좋아하는 미역국을 실컷 얻어 먹었다. 그때 끓인 미역국은 주로 대합 같은 조갯살이거나 이름 모를 생선이 들어갔는데,내 입 맛에 딱 맞아 딸 둘을 낳으면서도 쇠고기 미역국은 한 번도 안 끓이고 삼칠(21일)을 지냈고, 지금도 우리집 미역국은 고기가 들어가지 않고 조개살이 들어간다. 후에 알았지만 미역국에 쇠고기 대신 조개나 생선을 넣는 것은 엄마 식성이 아니라 고향의 식문화였다.

 

동생을 낳자 엄마의 식성이 돌아왔다. 엄마는 육식을 좋아하셨다.

한동안 고기를 먹지 못하면 속이 허해서 돼지고기국이라도 끓여야 했고 ,지금은 요리 축에도 들지 않는 닭내장볶음이 밥상에 자주 올라왔던 것을 내 작은 기억 나부랭이 속에 소복히 담겨져 있다.

엄마의 식성과는 달리 나는 지금도 육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한동안 육식이라고는 쳐다보지도 못하던 내가 결혼하고 한참 지나서야 바싹 구운 삼겹살과 불고기는 몇 점 먹으나 육개장이나 설렁탕 같은 국물 있는 음식은  지금도 좋아하지 않아서 곰국 끓이는 날도 드물다.

그 날 그 국수 국물은 쇠고기 국물이었고, 고명으로 올라온 고기도 쇠고기 였단다.

없던 시절에 입덧 심한 엄마한테 고깃국물 국수를 대접한 것이 그만 나의 식성을 못나게 붙들어 매고 만 것이었다.

 

식성도 변한다더니 내가 고기를 조금씩 먹게 되자  이번엔 엄마가 고기를 마다 하신다.

사흘에 한 번은 닭을 삶아 드셔야 한다던 엄마가 언제 부턴가 고기를 밀어 내신다.

 옛날에 내가 그랬듯이 누린내가 나서 싫고 그렇게 구수하던 국물 맛이 역겹다 하신다.

아직까지 내 입맛에 싫은 맛이 없는 생선마저도 엄마는 이제 싫다신다.

갈치도 고등어도 다 제치고 오로지 된장찌개와  물컹하게 데친 나물이 최고라신다.

생선회도 싫어라,불고기도 싫어라, 사흘에 한 번은 드셔야 한다던 닭고기도 마다하시니 이렇게 더운 날  엄마는 무얼 드시고 기운을 차리실까.

고기가 싫은게 아니라 성하지 못한 치아 때문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미치자 이 무더위에 나른하게 누웠을 굽은 엄마 영상이 동그랗게 맴돈다.

'엄마~나는 오늘 삼계탕 끓이는데....엄마는 뭘 드셨수?'

만날 이렇게 말 빚만 지고 사는 무심한 딸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