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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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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잎김치


BY 모퉁이 2006-08-01

 

친정 엄마가 해주시던 음식 맛에 길들여지고

육식을 좋아라 하지 않는 나는

시어머님 음식이 내 입맛에 맞지 않아서

시댁에서 밥 먹는 일에 곤욕을 치뤘다.

 

아들네가 온다고 하면 어머님은 고기국을 끓이시고 

고기를 구우면 성찬인 줄 아시지만

나는 먹을 찬이 마땅찮아서

찬물에 밥 말아 김치만 꾸역꾸역 씹어 먹기가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날, 어머님과 시장을 가게 되었는데

반찬가게에 진열된 반찬중에 콩잎김치가  눈에 띄었다.

"엄니~!저거 좀 사요."

엄니의 대답도 듣기 전에, 음식솜씨 있어 뵈는 넓적한 앞치마를 두른

여사장님의 손에 들려있던 비닐봉지는 내 손으로 인도 되었다.

 

연한 콩잎순이 한참인 이즘에, 세잎 달린 콩잎을 따서,

한 잎 한 잎 정갈하게 정리하여 묶은 다음

연한 풀물에 삼삼한 물김치를 담았다가, 한 이틀  먹기 좋게 익으면

따뜻한 밥에 빡빡하게 지진  강된장을 올려 싸 먹으면 밥 도둑이 따로 없다.

콩잎 특유의  까실한 느낌이 싫다는 사람도 있지만

워낙이 시골스런 식성이라 까실한 정도야 아랑곳 없이 맛만 좋으니 어쩌랴.

다른 반찬 없이 희멀건 콩잎김치 하나로 밥 한 그릇 훌딱 비우는 내가 안스러운지

 아버님은 연신 " 반찬이 없어서 그거만 먹냐,고기도 좀 먹지 그러냐" 하시지만

시댁에서 먹은 밥 중에 그날처럼 맛나게 포식한 날이 더 없었지 싶다.

나보다 더 오래 사신 어머님도 콩잎김치를 모르셨는지 ,

'뭐 저런거 먹을라 하노' 하시며,이렇게 쉬운 내 식성을

오히려 까다롭다고 퉁박을 주셨다.

 

그리고 몇 해 뒤, 혼자 시댁에 갔던 날,

저녁 상에는 콩잎김치가 올라와 있었다.

며느리를 위한 밥상을 준비해 본 적이 없으시던 어머님이

나를 위해 콩잎김치를 사러 시장에 다녀오셨다고 했다.

"니가 좋아해서 담글까 하다가 좀 샀다'."하시는데

 담근게 아니고 샀으면 어떠리.

며느리의 식성을 기억하고 챙겨 주신 것만으로 눈물겹던 날이었다.

여태 그런 적 없던 어머님이어서 더 특별한 맛이었다.

 

이날 이때까지 어머님은 며느리들에게 엄한 시엄니였다.

감히 시엄니가 며느리 밥상 차려 준다는 것은 상상도 못한 일이었는데

며느리 반찬을 따로 준비해 놓으신 것에 얼마나 감동을 받았던가.

그날 저녁은 내 평생에 두고두고 어머님을 기억하는 날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기 뭐가 맛있노?'하시던 어머님이

콩잎김치 쌈을 나보다 더 열심히 드셨다.

내가 먹고 남겨둔 콩잎김치를 버릴까 하다 몇 잎 먹어보니 삼삼한 그 맛이 꽤 좋더란다.

그리하여 내가 오면 같이 먹어야지.. 하셨다나?

며느리 입맛을 챙긴게 아니고 당신이 드시고 싶어 준비한 반찬이었다 할지라도

 중요한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기억하신 거 그것 뿐이었다.

 

지금 한참 콩잎이 푸를 때인가.

정해진 고랑이 아니더라도 논두렁 가에 제멋대로 자라는 콩이

알콩달콩 여물고 있을까.

연한 잎은 뽀얀 분칠한 물김치로 변신하여 여름 입맛을 돋우고

가을에 누렇게 뜬 얼굴로 초라하게 변했을 땐

무거운 돌을 등에 지고 맹물에 잠겨 있다가

적당한 양념 옷을 입고 다시 태어나

내 어린 시절 도시락 반찬 0 순위에 들던 콩잎김치.

 

이곳 내가 가는 시장 어느 곳에서도 아직까지 보지 못했던 여름 콩잎김치.

고향의 5일장에 가면,그곳에 가면 만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여름이 다 가기 전에 그 입맛도 한 번 다시고 싶어진다.

가을이면 또 한 번 누렇게 단풍진 콩잎김치가 생각날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