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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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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요


BY 모퉁이 2006-06-05

참으로 무심하게도 결혼한지 스무해가 더 넘도록

남편한테 보약이라고 명한 약 한번 안해주었어요.

들은대로 밥이 보약이다 해서 그런줄 알았거든요.

우리집 식구 넷은 여태 보약이 어떻게 생긴지 몰라서

까스명수나 쌍화탕을 줘도 보약인줄 알겝니다.

 

얼마전 친구와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를 보고 무심하다 나무랍디다.

나 같은 사람 드문가 봐요.

친구가 하는 방법을 얻어 듣고 와서는 따라 해보기로 했지요.

소개 해 준 그 약초를 삶아 먹으면

부작용 전혀 없어 수시로 음용하면 좋다길래 그걸 마련했는데

아...이런 변고가 있나요.

보리차 끓이듯이 끓여 먹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은근한 불에서 10시간 정도 고아서 처음 물량이

반으로 줄때꺼정 봐줘야 된다네요.

약탕기가 있나.

슬로우쿠커라고 하는 느림뱅이 그릇이 하나 있긴 한데

용량이 겨우 1.8리터 하나 정도 되니 그걸 언제 달여 먹는단 말입니까.

효능이 어찌되건간에 곰솥에 10리터의 물을 붓고 반이 되길 기다리는데

아~10시간 너무 길어욧~

엊저녁에 그걸 올려놓고 밤을 샐 뻔 했습니다.

 

검붉은 색으로 우러나온 물을 아침부터 들이키라고 내미니

원..안하던 짓을 하는 내가 이상시럽다는듯 쳐다보는데

우째 내 눈엔 음한(?) 눈빛이던지,절대 그런 효능은 안들었으니

걱정말고 수시로 마시라며 음료수 병 하나를 출근길에 건냈더니

헌날만날 괜찮다던 사람이 좋아라 거리며 받아 들고 가는 모습이

어째 그동안 나의 무심한 내조에 일격을 가하는 듯 콕콕 찌릅디다.

피부색 약간 검은 어느 가수-김건모라 카던가-가 부른 노래 중에

'미안해요`하던 거 있지요.

마누라 생일에 그 흔한 옷도 한 벌 못해주고 어짜고 하던 것 같던디

개사를 해서 부르면 나도 참 할 말이 많은 사람이 되겠더라구요.

 

나무 가지와 껍데기 말린거 좀 삶아 먹인 것으로

동안의 내 무심함을 갚을 마음은 아니지만

나이 오십이 그냥 저절로 먹은 것은 아닐진데

차츰 줄어드는  머리숱을 보고 장난 섞인 소리만 할 줄 알았지

머리숱 덜 빠지는 방법 하나 알아올 생각은 않고,

어느 날 오른 뒷산 길에 나보다 더 숨가쁜 소리를 내어도

아직 그럴 때 아니라며 놀리기만 했지

흘려 버릴 소리라도 '보약 한 재 지을까' 소리 한번 건내지 못한

마누라가 서운하지 않았을지,

오늘은 자뭇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을 밀어낼 길이 없네요.

 

딸내미 둘과 마누라가 머리에 기십만원 퍼붓고 온 줄도 모르고

처음 보는 딸내미 웨이브 섞인 머리를 보더니

예쁘다며 얼굴 가득 웃음을 담는 남자가 오늘 참 괜찮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