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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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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이 따로 있나 예가 극락이지


BY 모퉁이 2006-06-05

연두의 싱그러움을 채 맛보지도 못했는데 계절은 이미 푸름을 덮고 있다.

작년 이맘때는 나날이 다른 색의 물감으로 마음속의 도화지를 색칠하던

산사의 온유함을 마음껏 누렸던 곳을,이제야 두고 온 보물찾기 하러 가는 마음으로

나선 그 곳 숲속 샘터는 얼마전 내린 비로 넉넉한 수량을 내 저으며 발길을 잡아 붙든다.

 

입 언저리에 붙은 약수 한 모금 상큼한 미소로 훔쳐 내고

터벅터벅 몇 걸음 더 걸으면 자그만 암자 하나 나타난다.

상추와 취나물과 돌나물이 동무하여 자라는 채마밭이 있고

노란 비닐장판을 덮어 씌운 나무 평상이 길다랗게 놓여져 있는

풍경은 몇 해전부터 보아온 변치 않는 모습이다.

 

그곳은 비구니 스님 두 분이 거하는 곳이다.

노스님은 목소리와 덩치가 무척 큰 여장부 같은 사람이고,

작은 스님은 덩치는 큰데 목소리도 작고 천상 여자 같으나

언제나 같이 무표정이라 친해지기 쉽지가 않았다.

내가 불교신자가  아니어서 부처님 전에 두 손 모아 기도를 한 적이 없다보니

스님과 스스럼없는 대화를 나눌 기회도 없었기에 그저 오가는 눈인사가 전부였다.

작년 봄에는 한동안 스님이 보이지 않아서 노스님의 안부가 궁금했던 적이 있었지만

며칠 후에 잠시 어딜 다녀오셨다는 안부를 전해 듣고는 좀 더 가까이 인사 나눈다.

진주 어디께가 고향이시라던 노스님의 걸걸한 사투리가 내 귀에 익숙해서

어쩌면 더 가까이 인사하게 된 이유였는지도 모른다.

 

절 입구에 가파른 돌계단이 잠시 숨통을 죄이게 한다.

휴우~한숨 돌리고 계단 중간쯤에 오르자 귀에 익은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어허~극락이 따로 있나 요가 (여기가)극락이지.”

고개 들어 위를 보니 언제나 그 자리의 좁다란 평상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노스님의 털털한 목소리가 조용한 절간에 찰랑거린다.

“좋제? 하긴 ,좋은께 오겠지.”

“네, 좋지요. 스님은 무척 건강해 보이십니다.”

“내사 맨날 그렇지. 아하~좋다. 극락이 따로 없다.”

“....”

“엉~? 저 아랫동네에 사는 보살님들 아이가. 오늘 산에 왔나 보네.”

파르라니 깍은 머리에 노란색 꽃무늬 앞치마를 두르고 바가지를 든 젊은 스님이 나오시며

언제나 처럼 무덤덤한 표정으로 우리를 내려다보고는

얼른 하던 일을 하려는 듯 몸을 돌리기에 큰 소리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던졌지만 다음 대답은 들을 수가 없었다.

노스님이 누구랑 이야기를 하시나 궁금해서 부엌 바가지를 든 손으로 나왔다가

안면식이 있는 우리를 보고서는 얼른 몸을 숨기시는 것이다.

참 그 젊은 스님도 숫기가 나처럼 모자라는 분이신가 보다.

“스님, 건강하세요. 우린 올라갑니다.”

“그래.”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지만 보살님(?)들을 아래 동생 대하듯 반말이지만

크게 마음 상하거나 듣기 싫지 않음이 왜인지 모르겠다.

 

절간 앞을 지나 다시 헐떡거려 고개에 올라서서

흐르는 땀방울 잠시 뉘이며 선 곳 발아래는

성냥갑 같은 회색 도시가 죽은 듯이 스러져 있다.

황망히 불어오는 소나무 바람이 이렇게 향기로울 수가 있을까.

애즈녁에 떨어져 저문 진달래 철쭉 꽃잎이 무에 그리 서러울까.

청솔모 까만 눈이 내 눈과 헤어질 줄 모르고 마주 서 있는 작은 풍경이 평화롭다.

마음 속의 근심덩어리를 지고 있을 까닭이 없다.

 

노스님의 극락은 어디일까.

내가 보기엔 찾아오는 불자도 많아 보이지 않고

그 작은 암자에 달랑 두 분이 계시니 재미있을 일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데

스님은 그곳이 극락이라고 말씀 하신다.

그렇다면 결국 노스님의 극락이란 마음 속에서 찾은 게 아닐까.

시름없고 평화로워  내 마음의 갈증이 해소되는 그런 곳.

그곳이 어디가 될 지는 내 몫으로 남길 숙제가 되겠지만

오늘도 바둥대며  허겁대는 나에게

노스님의 짧은 한 마디가 뱅뱅거린다.

나의 극락은 어디일까.

 

 

 

 


2006-05-29 17: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