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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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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BY 모퉁이 2006-05-16

 

서예교실은 우리집과  동네 시장 중간 쯤에 있다.

서예시간이 끝나면 으레히 시장을 들렀다 가는

나에게 회장님은 인사처럼 묻는다.

'오늘은 시장 안 들러요?"

 

수업 시간에도 틈만나면 바깥을 흘겨본다.

바람은 춤을 추고 햇볕은 손뼉을 치는 듯함을  느끼는지

 이런날 고궁 산책이 좋겠다,

누구는 등산을 갔으면 좋겠다,

대부분이 나들이 생각을 하는데

나는 갑자기

'아~빨래 삶아 널면 참 좋겠다' 하는 바람에 한번 웃고..

 

시장은 내일도 서지만 이런 날씨는 내일 또 안 올 지 모르지.

따뜻하다는 말보다 덥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그런 날씨다.

버스 종점에 모인 기사님들 식후연초를 즐기는 사람과

커피 한 잔을 들고 있는 여유로 섞여 있고

그 옆에 조그만 구두 수선 가게에 할아버지는

아주 편한 자세로 오수에 젖어

약간 벌린 입으로 일정한 화음을 들썩이고 있었다.

앞코가 약간 벌어진 단화에 본드칠을 좀 할까 싶었는데

단잠 깨우기 미안해져서 그냥 나와 버렸다.

 

오후 두 시의 동네는 조용하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은 학원으로 다시 내몰리고

유치원 간 아이는 돌아올 시간이 아닌지

몇몇 젊은 엄마들이 감나무 밑에 앉아서

나름대로의 정보 교환이 한창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사람 모인 곳 앞을 지날 땐 뒤통수가 근지럽다.

괜히 뒷머리를 쓸어 담으며 가방을 다른 손으로 바꿔 들었다.

 

아침에 닫아 놓고 나간 베란다 문을 성질난 사람처럼 화르르 소리 내어 열었다.

중간 쯤 가다 뭐에 걸렸는지 삐익~하며 삑사리를 내어

조용하던 동네에 메아리 울렸다. 앗~

 

빨래통에 들어 있던 수건이랑 속옷들을 비누칠 해서 빨래 솥에 넣었다.

빨래를 삶을 때마다  끓어 넘치지 않는다는 삼순이 생각이 간절하다만 

아무래도 빨래 솥이 구멍이 나야 삼순이가 우리집에 시집 올 것 같다.

 

어제 냉장고를 뒤집어서 요리한 무쌈으로 배를 다독거리고

따끈따끈한 햇볕 아래 이불도 내다 널고(낮에 이불 털어도 괜찮은 동네임)

하~넉넉한 하늘 한 번 올려다 보려니

며칠 전만 해도 분홍색 모과꽃망울이 동글동글 달렸던 자리에

빈틈 없이 자리잡은 연두 잎이 방글방글 간지러이 웃는다.

모과 잎을 살짝 제치고  던진 눈길 끝에 파란 하늘이 한가롭다.

모두가 평화로움에 메인 시간인 듯 하다.

그러는 사이, 빨래 삶는 냄새가 구수하게 날아온다.

내 시선 안에 들어온 조그마한 여유가 오후 세 시를 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