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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


BY 모퉁이 2006-05-01

 

언제고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생기면

붓을 잡고 싶다는 열망을 갖고는 있었다.

깊은 목표가 있는 것은 아니고

나이 들어 할 수 있는 취미생활로도 좋겠고

잠깐이나마 붓과 접해본 시간의 기억이 늘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기회는 우연히 찾아 들었다.

동사무소 게시판에서 주부 서예교실이 있음을 읽고는

20년도 더 된 붓과 벼루와 먹을 챙겨 들고

서예교실의 문을 두드렸던 그때는

회원도 많고 교실이 비좁은 지라

나 같은 초보는 환영의 대상이 아니었다.

 

때마침 회원들의 작품 전시회 준비로 바쁘던 터라

나는 한 달을 넘게 가로 세로 줄 긋기만 했다.

붓 잡는 시늉은 할 수 있었지만 초보라고 인사를 하였고

-사실 초보나 다름없지만- 아주 기초부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글씨 쓰기가 올해로 3년차가 된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라 게을리 하지도 않았지만

서력에 비해 글씨가 깔끔하고 힘있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러던 중 전주 모처에서 실시하는

서예대전에 참가해보라는 권유를 받게 되었다.

바로 고개를 흔들었다.

첫째 둘째 세째 모든 이유가 '자신이 없다.'였다.

아직 내 글씨에 대한 평을 듣기엔 시기상조라 여겨졌다.

동네 잔치도 아니고 전국 대회에다

고작 3년, 그것도 일주일에 한 번 수업에다 짧은 연습량,

어떤 심사에 목적을 둔 것이 아니고

그저 좋아서 하는 일일 뿐인데 부담스러웠다.

 

사양이란 말이 가당치도 않겠지만

좀 더 성숙한 후에 기회되면 참가하겠다고 했다.

선생님은 무슨 마음이신지 나름대로의 고집을 꺽지 않으시길래

두어달 같은 글씨를 여러번 반복 쓰는 시간을 거쳐

예선심사에 출품을 하게 되었는데,

 예상대로 다음에 도전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선생님은 서운해 하셨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당연한 결과라고 여겼다.

만에 하나 혹시라도 예선 통과가 된다해도 걱정이었다.

첫경험이 시작이라고는 하지만

창작 지원금으로 대상에게 지급되는 시상금 1000만 원이

대회의 규모나 실력을 가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휘호대회는 한시름 놓고

일주일에 한번 편한 마음으로 묵향에 취하다 온다.

그렇다고 글씨 쓰기를 게을리 하지는 않고

도전 정신보다 즐기는 쪽에서 계속 하려고 한다.

 

아침 신문을 훑다가 한 장의 사진 기사가 눈에 띄었다.

한석봉을 꿈꾸며..라는 글에 실린 사진이었다.

시름을 너무 깊게 놓았더랬나..

서예대전의 날짜도 잊고 있었는데 신문에 실린 사진은

참가하고저 했던 서예대전의 치열한 경합의 모습이었다.

전국 신문에까지 나올 그림이라면 꽤 알려진 잔치인 모양이다.

나 같은 존재는 감히 얼굴 내밀 자리가 아닌듯 하였다.

아휴~저 자리에 내가 서고자 했더란 말이지?

그림으로 보아도 진지한 모습들이다.

저마다의 자세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모습이 당당들 하다.

만약에 내가 저 속에 끼였다면 주눅 들어 먹물도 묻혀 보지

못하고 돌아왔을 것 같다.

 

그래.심사위원들의 눈은 매서운 게야.

공정한 심사를 하신 게야.

그렇게 녹록한 대전이 아닌 게야.

 

예선 통과를 위하여 그동안 같은 글씨를 반복하면서

그나마 많이 도움 된 것은 사실이다.

소규모라도 전시회를 하는 이유가

안목을 키우고 자신감을 주기 위해서라는 말을 알아 듣게 되었다.

 

예순이 넘고 칠순이 다 된 어른들과 함께 글을 쓰면서

그 분들의 긍정적인 사고와 게으르지 않는 노력을 보면서

나이 들어 더없이 좋은 취미이고 자기 개발이란 것을 배운다.

화가 나다가도 붓을 잡고 있으면 마음이 가라앉고

상념이 없어진다는 어느 선배의 말씀을 아직 체험하지는 못했다.

상념이 많으면 오히려 글이 써지지 않으니

그 경지에 이르려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테다.

무슨 일이든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며 하다가 중단하지 않음도

현실이 받쳐주기 때문이라는 말도 새겨 듣게 되는 말이다.

가정사에 우환이 생기거나 내 몸이 따라 주지 않으면

내 아무리 좋아도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좋아서 시작들 했을텐데

오래 버티지 못하고 일이 년 사이에

많은 회원들이 중도 포기를 해버려서

요즘은 교실이 많이 썰렁해서 아쉽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붓글씨도 한두 달, 일이 년에

수련될 공부가 아니다.

그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포기를 하거나

신변의 변화로 인하여 계속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시작할 때 그랬듯이 지금도 변함없는 것은,

그저 내 안에 잠재된 의미 하나 가질 수 있는 자신감과

내 정신이 허락하는한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은 충분하다고 본다.

더 큰 욕심은 없다.

내 나이 환갑 지나 칠순이 넘어 할머니가 되어서도

붓을 잡고 싶은 욕심만은 남아주면 좋겠다.

앞으로 그 노력은 계속 되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말이다.

그런 의미로 오늘은 붓 끝을 적셔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