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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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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BY 모퉁이 2006-02-27

 

작년 가을에 찍은 사진을 이제사 전해 받았다.

사진찍기가 취미인 아는 언니가 주문하는대로

모델(?)이 되어 준 사진인데 취미의 경지를 넘어 작가 수준은 되는 듯

받아든 사진은 모델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사진정리를 하다가 주저 앉은 시간이 한나절이다.

사진첩을 펼치면 사진 곳곳에 머문 시간이 나를 붙든다.

어린시절 사진은 거의 없고 학창시절 사진도 별로 없고

이십대  주변에는 친구들이 많았고

삼십대가 되면서는 내 곁에 두 아이가 늘 같이 있다.

정리되지 못한 매무새까지 적나라한 스냅사진들이

정지된 시간으로 나를 쳐다본다.

흐흐..머리모양도 옷맵시도 다 촌스럽다.

처음으로 파마를 한 내 머리가 구불구불 한덩어리 가발같고

어깨에 한껏 뽕이 들어간 양장이 무척 부담스럽다.

나름대로 멋을 부린 실크스카프가 그나마 살포시 웃게 한다.

그러다 사십대가 되면서 다시 사진이 줄었다.

아이들과의 외출도 줄어 들었고, 무엇보다 사진 찍히기가 부담스럽다.

세월 가도 남는 것은 사진 뿐이라며 어딜 가도 한두 장의 사진을

고집하는 남편 때문에 억지로 찍은 사진이 대부분이었다.

 

필름을 끼우고 '김치이~'하거나  '하나 두울 세엣~'하면

승리의 브이 자를 펴 보이며 입을 찢어가며 웃고

잔디밭에 엎드려 턱 괴고 고개 약간 갸우뚱 거리며 귀여운척 하고

청바지 길게 입고 한쪽 옆구리에 손을 대고 약간은 거만스럽게

폼을 잡고 찍은  필름을 사진관에 맡겼다가 3~4일 후에

찾아와 이리보고 저리보며 눈을 감았네 찡그렸네 입이 샐쪽하네

머리가 떴네 엑스트라가 많네 다리가 잘렸네

아무튼 나만 제대로 나오면 잘나온 사진이고,

다 잘 되어도 나만 눈감고 머리 날리면 잘 못 나온 사진이라면서도

쉽게 버리지 않고 이사 때마다 낡고 무거워 힘들어도 버리지 않고

챙겨온 사진첩 속에  오래된 기억들이 봄나비처럼 찾아들어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앨범 낡기에 따라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고

누렇게 변한 앨범 속에는 네잎크로바도 들어있고

부서진 가을 낙엽도 들어 있고

터벅머리 청년이 뒷장으로 넘어 갈수록 머리 속이 드러나며

이마에 굵은 주름 하나 선명하게 그어져 있고

내 품에서 젖을 빨던 아이가 사각모를 쓴 모습으로 서 있기까지의

역사를 한 눈에 넣을 수 있는 사진첩에 할애한 몇시간이 아깝지가 않았다.

 

요즘은 사진찍기가 쉽고 간편해졌다.

즉석에서 찍고 보고 지우는 디지털 카메라.

그것도 모자라 1인 1 전화시대라 휴대폰에도

사진찍기 기능이 달렸으니 시도 때도 없이 눌러대는

후레쉬 세례에 익숙해져야 했다.

 

그런데 제 아무리 정보화 고속화시대에 디지털시대라 하지만

나는 그 디지털이란 것이 삭막하기만 하다.

사진도  간편히 찍고 저장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컴퓨터나 CD에 보관하다 보니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그 시절에

머물어 보는 여유와 멋이 없어지고 기계 속에 갇혀버린 정서가 아쉽다.

컴퓨터를 켜느니 먼지 앉은 앨범을 꺼내는 것이 더 설레는 것이다.

 

옛날 사진기가  서랍 구석에서 숨통을 틀어막고 있는지 오래.

사진은 디지털 카메라로 찍지만 사진을 뽑아서  앨범에 정리하고

이렇게 한번씩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에 머물다 오는 나는

시대는 디지털이지만 세대적 정서는 아직 아날로그에 머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