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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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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안부


BY 모퉁이 2006-02-24

연말 카드를 보내고 싶다며 주소를 불러달라던 친구.

카드 인사를 보내 본 지가 언젠지 모르던 차에 새삼스럽게 무슨 카드냐는 나에게  철 좀 들고 싶다며 너스레를 떨던 친구다.

계모 밑에서 무척 마음고생이 많았던 친구는 현실 도피처럼 일찍이 결혼을 했지만 결혼생활이라고 그리 만만하지도 않았다. 홀시어머니와 중학생 시누이도 시누이 노릇을 단단히 했고 거기다가 시동생까지 형수를 홀대해서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쩌다 얼굴이라도 한 번 보려고 찾아가면 사람을 대문 밖에 동냥 온 사람마냥 세워놓고 한참을 기다리게 했다. 친구는 미안해 할 겨를도 없이 인사만 하고는 이내 집 안으로 들어가야 해서 허무한 걸음을 되돌려야 했던 시절이 20년 하고도 대여섯 해는 됨직하다.

그러던 친구는 어느 날 소문도 없이 남편을 따라 타지로 떠나게 되었고, 전화도 편지도 한 통 전하지 못 한 세월이 흘러 20여년이 지났다. 어떻게 전해진 소식일까.

바람이 내 그리움을 전해 주었을까. 포항 어디 메에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어느 날 남편 친구가 있는 포항에 들렀다가 혹시나 싶어 주소를 말하니 멀지 않은 곳에 그 친구가 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20여년 만에 만났다. 새댁 시절에 뽀얗던 얼굴은 어디로 가고 쪽지 듯 빗어 넘긴 머리모양이 나이보다 긴 세월을 산 사람처럼 보여 마음이 아팠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자신에게 국악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늦게 사 알았다고 했다. 우연히 시작한 풍물놀이와 판소리에 반해서 장구를 두드리고 창을 하는 멋진 여자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재미와 취미로 시작한 일로 봉사활동까지 할 수 있으니 그것 역시 행복한 일이더라는 것이었다. 양로원에 무료 공연도 다니고 간혹은 유료 봉사를 하면서 짭짤한 수입도 있다고 했다. 아들 하나가 입술에 조그만 흉을 달고 나와 그 아이 하나에 온 정성을 쏟느라 둘째는 가질 생각도 없었고 주위의 시선 아랑곳없이 밝고 곧게 자란 아들은 어느새 대학생이 되어 있었다. 섬세한 손으로 종이접기로 만든 꽃다발을 선물로 받고 그날로 간간히 만남 대신 전화로 안부를 전하며 지내왔다. 그러다 남편의 직장 관계로 다시 고향으로 내려간 친구는 홀로 계신 시어머니와 함께 지내게 되었고, 중학생이던 시누이도 남의 집 며느리가 되어서야 올케언니의 심정을 깨달았는지 친언니 못지않게 다정한 시누이 올케사이로 발전하여 늙으신 어머님을 사이에 두고 서로 토닥이고 위로하는 사이가 되었단다. 그러기까지의 세월은 누가 보상해 주랴 만은 받기 위해 희생한 것이 아니므로 지금 생활에 만족한다고 했다. 시어머니의 심술 아닌 심술만큼은 세월 따라 멀리 가 버리지도 않고 여전하시지만 친구의 표현이 ‘서로 같이 늙어가는 데 뭔 대수리’ 했다.

점심을 먹고 문득 충전기에 꽂힌 전화기에 눈이 갔다. 마음속에 늘 있는 이름이라고 매일 부르며 살지 못하지만 느닷없이 그리울 땐 배앓이를 할 때 챙기는 진통제처럼 그 이름을 찾고 싶어진다. 그랬다. 그래서 입력된 번호를 길게 눌렀다.

예의 그 털털하고 허스키한 목소리가 정답다. 쌓인 이야기가 많았는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잘 있었냐? 잘 지냈냐? 남편 안부에 자식들 소식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바로 앞에 교자상을 놓고 마주 앉은 사람처럼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그래 철은 좀 들었냐? 묻는 내게 허허 웃음으로 대답하는 냄새가 나이만 들었지 천진스러움으로 남고 싶다는 의미의 웃음으로 날아와 앉는다.

나이 이야기가 나오자 갱년기 증상을 동요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고 했다. 언제부턴가 드물게 머뭇거리는 생리 일자하며 조그만 일에도 신경이 곤두서고 가슴이 벌렁거리고 화끈 열이 나고 식은땀이 흐르면서 조바심이 생기더니 그것이 갱년기 증상이라는 소리를 듣고는 태연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요즘은 국악에 심취하다보니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더 많다고 했다. 바쁘게 살다보니 아픈지도 모르겠고 그저 하루가 행복하고 즐겁다고 했다. 그 한 마디에 만사가 편해 보였다.

다음은 하나 있는 아들이야기였다. 대학 2년을 마치고 어느 날 날린 선전포고가 바텐더가 되고 싶다. 라는 것이었단다.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니 부모는 자식에게 학업이며 직업을 강요할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부모는 공부 잘 해서 좋은 직장 가서 안정된 생활을 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의 직업관은 부모 세대와 달라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우선이고 그것이야말로 행복추구권이라고 생각들 한다. 우선 내 딸부터도 내가 원하는 직장이 아니고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 나의 서운함을 눈치 챈 딸은 그랬다. 어디라고 말하면 척 알아듣는 대기업이거나 어른들이 말하는 좋은 직장에 다니면 엄마야 좋겠지만 그러지 못하는 자기를 이해해 달라고 했었다. 어른들은 직장을, 요즘 세대들은 직업을 선택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때이다.

그리하여 친구네 아들은 바텐더 수업을 받고 대회에도 나가고 해서 좋은 성적을 얻어 자기 꿈을 키우고 있다고 했다. 수없이 반대하던 남편도 지금은 지지자가 되어 많은 도움을 주고 아들을 격려한다고 했다. 자식은 부모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장난감이 아니더라는 말을 실감한다고 했다. 그래도 자꾸 다 끝내지 못한 학업이며 내 뜻대로 되지 않은 아들의 장래에 대한 미련은 버릴 수가 없다는 솔직한 고백도 했다. 나 역시 같은 맘이라 서로 고개 끄덕이며 ‘그래그래’가 연신 나왔다.

시어머니 친구 분이 오셔서 호박죽을 끓여 드리고 과일 상을 내놓고 잠깐 쉬고 있는 중이라던 친구의 전화기 너머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차를 끓여내려던 참 이었나 보다. 얼마 전에 전자주소를 만들었다며 내 메일주소를 알려 달라고 한다. 아무렇게나 뽑아든 메모지에 검정색 볼펜으로 받아 적는 모습을 상상하며 건강 하라는 인사로 맺음을 했다. 전화기에 찍힌 통화시간이 46분 12초라고 나온다. 정말이지 커피였든 녹차였든 다 식었을 시간이다. 하지만 전화기를 놓은 지금도 마음은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