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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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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병


BY 모퉁이 2006-02-07

친정에 다녀오면 난 며칠간 열병을 앓는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

엄마는 딸 다섯을 두고도 혼자 사신다.

나부터 엄마를 모실 형편이 안된다는 이유로

여든이 가까운 엄마를 홀로 계시게 하고 있다.

마음만 있다면 어느 집에서건 모실 수 있을텐데

첫째는 엄마 마음이 움직이지 않음이지만

딸 다섯이 모두 성의가 없기 때문이겠지.

둘째언니네서 떠들고 먹고 자고 엄마를 혼자

엄마 집에 남겨두고 왔다.

 

막내 동생이 살고 있는 집이 제법 너르다.

이제 초등학생인 두 조카와 동생 내외가 살기에는

결코 좁은 집이 아니다.

진작부터 오간 말이 있었지만 이번에 살며시 나온 제의가

 엄마를 동생네에 모시는 것이었다.

막내지만 엄마와 가장 오랫동안 함께 있었고

막둥이라 엄마의 정이 각별하기도 해서 지내기 가장 편할 것 같다는

엄마 소견보다 다수인 우리들의 생각일 뿐이지만

고민없이 막내 내외가 그 뜻을 수용했고 엄마 마음만 움직이면

되는데 정작 엄마는 고집을 꺽지 않으신다.

딸네집이라기 보다 사위집이며 사돈 보기 면목이 없다는 것이

엄마가 내세우는 이유이지만 그보다 엄마는 아파트라는 곳이

갑갑하고 불편하고 1층 입구부터 닫혀 있는 문을 열려면

이상한 암호같은 번호를 눌러야 하고 오르락내리락 하는

엘리베이터라는 것을 타는 것도 공중부양하는 듯 멀미를 하고

현관 앞에서도 일일이 벨을 누르거나 문 앞에 달려있는

이상한 기계에서 번호를 꾹꾹 눌러야 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듯 하시다.

맘대로 먹고 자고 눕고 마실 다니고 마실 오는 어른들과 환담하고

동네 골목이라도 쓸고 오가는 이웃들과 인사 나누는 재미가 있는 동네를

떠난다는 것에 어쩌면 막연한 두려움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옛동네에 오려면 번번히 버스를 타야하고 왔다가 허탕치기도 할테고

하루 이틀 지나다 보면 내 스스로 찾아가는 걸음 더디게 될테고

눈에서 멀다보면 마음도 멀어지는 격 겪게 되면 노년에

이보다 더 쓸쓸함이 어딨겠냐는 것이다.

 

엄마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딸 입장에서는

독거노인들이 홀로 지내다 맞는 비극의 뉴스를 보면

정녕 남의 일이 아닌듯 전화기를 들게 된다.

초저녁인데도 엄마는 잠결인듯 전화를 받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코끝이 시려서 애꿎은 천정만 쏘아본다.

전화기 앞에 커다란 글씨로 큰딸부터 순서대로 전화번호를

적어 놓아야 하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아침부터 전화통을 잡았다.

엄마를 설득하는 작업을 해대는 딸들의 성화에

마지못한 반승낙을 하셨다.

"그래..느그들한테 내가 이기 무슨 짐인지 모르겠다.

당장은 그렇고 내 생각이 잡히는대로 말할꾸마."

 

동생네에 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긴 하다.

혹시라도 딸 내외가 언짢으면 그것도 불편할테고

늘어놓고 사는 것을 못 보는 엄마는 흘리고 다니는

막둥이의 살림솜씨가 맘에 들지 않아 잔소리를 하거나

치우면서도 싫은 소리를 해댈테고 그러다 지나는 소리

하나에도 서운해서 사네 못사네 하게 되면 서로 불편할 것이다.

모든 것을 감수한다고는 하나 감정 조절이 약한 어른과

부딪치지 않기란 어렵기는 동생도 마찬가지일테다.

 

내가 하지 못하는 일을 맡기면서 이렇게 저렇게

주문을 하지도 못하겠고 잘 알아서 하리란 막연한

기대로만 엄마를 동생네에 맡겨야 하는 마음이

친정 다녀온 후 열병 끝에 짜릿한 현기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