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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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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메기탕


BY 모퉁이 2006-01-10

 

살다보니 참 이상한 인연도 다 있다.

우리집 같은 통로 4층에 아저씨는 나와 고향이 같다.

나보다 다섯살 정도 작은데 누나라 하기는 그렇고 그냥 형수라고 부른다.

고향 떠나 사는 탓에 가끔 한자리에 모여 술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지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이가 들었어도

공통된 그리움은 엄마 손맛이었다.

아내가 해주는 음식맛에 길들여질만도 하건만

계절따라 향토음식 맛이 떠올라 돌아가신 엄마가 그립다고 했다.

고향은 작은 해안을 끼고 있기에 해산물 음식이 내 입맛에도 맞다.

봄철이면 싱싱한 멸치회와 배추겉잎을 삶아 끓인 생멸치국이 먹고 싶다고 했다

아..나도 그 맛을 안다.

여름이면 장어국이 보양 음식이었는데 추어탕보다 장어국이 더 먹고 싶다고 했다.

그러네..울엄마가 끓여주던 장어국 맛도 일품이었네.

산초가루와 방아잎을 넣어야 제 맛이 나지.맞어..

가을이면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전어가 또 한번 입맛 당기지.

이 놈의 머리에는 깨가 서말 닷되나 들었다 할 정도로 고소한 맛을 아는 사람은 알지. 

가을을 잘 넘기고 한겨울이 되면 뜨끈한 국물이 시원한 물메기탕 생각이 난다고 했다.

맞어 맞어.'멍텅구리'라고 불리던 흐믈한 물메기.

생선 이름에도 사투리가 있었는지 울엄마는 '미거지'라고 했었지.

어느핸가 친정에 갔다가 미거지로 물회로 먹던 오빠의 식성에

뜨악한 눈으로 쳐다보았던 물컹한 생선 물메기.

언제 내 눈에 띄면 엄마 손맛 흉내를 내보고 싶었던 물메기가

 내가 사는 이 좁은 서울바닥에서는 흔치 않았다.

그랬던 것이,,,오늘 드뎌 내 눈에 포착되었다.

처음엔 그냥 지나쳤다.

다시 돌아가 흥정을 했다.

커다란 입에 흐물거리는 몸통에 볼록한 배가 참 볼품없고 못 생겼다.

저러니 멍텅구리라는 소리를 듣나부다.ㅎㅎ

손질해 주신다는 아저씨의 손놀림을 기다리는 동안

깍쟁이같이 생긴 아줌마가 눈을 반짝이며 쳐다본다.

무슨 생선이냐고 묻는다.

아는 사람만 아는 못생긴 놈이라는 아저씨의 위트에

졸지에 아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겉만 미련스럽게 생긴줄 알았더니 속을 보니 더 미련스럽게 보였다.

닥치는대로 꾸역꾸역 얼마나 잡아 먹었는지 악 소리도 못하고

그 넘의 멍텅구리 배 속에서 오도카니 죽음을 맞이한 전어며 새우들이

왈왈 쏟아져 나왔다.아이고 저 불쌍한 치어들 때문에

미련한 멍텅구리 배가 만삭이었던가 보다.

 

잡혀 죽은 놈은 죽은 놈이고 나는 냉정을 찾고 현실로 돌아와야 했다.

알통과 살은 조심스럽게 꺼내 살살 흔들어 씻어 건져놓고

엄마가 그랬듯이 무는 연필 깍듯이 싹싹 삐져서 고축가루 넣고 달달 볶다가

무가 익을 즈음에 그 미련한 멍텅구리를 조심스럽게 넣고

한소큼 더 끓인 다음 파 마늘 기본 양념에다 소금간 슴슴하게

끓이면 그 옛날에 엄마가 끓여주던 미거지탕이 되려나 실험에 들어가야 한다.

후루룩..쩝쩝.. 간이 맞으면 돌아가신 엄마 손맛이 그립다던

4층에 한 뚝배기 갖다 올려줘야 겠다.

아무려면 맛이나 괜찮아야 할텐데...엄마 손맛이 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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