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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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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사무소 입니다


BY 모퉁이 2005-11-03

시집 갈 때 다리미를 사가면 뜨거운 일 겪는다고

다리미는 안 갖고 간다고들 했었지만

그때 내겐 다리미는 필수여서

싸구려 다리미를 하나 사 가서 한 십 년 요긴하게 잘 쓰다가

뭘 다리다 태웠는지 다리미 밑바닥이 까맣게 타서

치약으로 닦아도 보고 신문지에 문질러도 보다  결국 단위농협 연쇄점에서

 얼마를 주고 스팀다리미를 하나 샀었다.

 

입에 물을 품지 않아도 되었고 분무기가 없어도

쉭쉭 거리며 스팀이 나와 그것도 한 십 년 잘 써왔다.

언제부턴가 이 다리미에서 시커먼 숯검정이 나오기 시작했다.

털면 툭 털리기는 했지만 다림질 할때마다 신경이 쓰였으나

다림질이 끝나면 잊어버리는지라 그럭저럭 몇달이 지났다.

 

어제 다림질을 하고 나서 다리미를 쳐들고 '와 이렇노..'

생각해본들 내가 알리가 있나.

다리미 뒤에 붙은 설명서에 적힌 서비스 센타 연락처를 적었다.

날 밝으면 잊어버리지 말고 전화를 해볼 참이었다.

서울 전화 번호를 누질렀다.

없는 번호이니 확인하라는 모르는 아가씨의 친절한 답변이다.

번호가 두개였는데  두 번 다 같은 대답이다.

이번엔 부산 번호를 누질렀다.시외전화는 정액제라 전화요금 걱정은 없다.

이 전화는 아예 받지를 않는다.

다음은 대구 전화 번호를 눌렀다.

어떤 아지매가 받았다.울었는지 원래 그런지 목소리가 우울하게 들렸다.

혹시 다리미 회사냐고 물었더니 아주 짧게 '아니요'하고는 뚝 끊는다.

미안하다고 말할려고 했는데 기회도 안 준다.

이번엔 대전 번호를 누질렀다.

[네..면사무소입니다.]한다.

광역시인 대전시에서 구청도 아니고 동사무소도 아니고 면사무소가 왠 말이뇨?

[면사무소라고요?]

[식당인데요.]

[방금 면사무소라 하지 않았습니까?]

[아! 예..식당 이름이 면사무소예요]

[음마야..실례했습니다.]

 

다리미 회사는  이사를 갔거나 전화번호가 바뀌었거나 아님 최종적으로 절단 났나보다.

다리미 회사와 연결이 되지 않아서 시무룩 하다가

'면사무소'식당 때문에 웃어 버렸다.

요즘은 기발한 상호로 뜨는 가게가 많다는데

이 식당은 어쩌면 면 종류를 파는 분식집이 아닌가 싶다.

'치킨닭컴'이란 간판도 재밌었는데 '면사무소'도 못지 않다.

 

그나저나 다리미는 갖다 버리고 새로 장만해야 되려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