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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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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


BY 모퉁이 2005-10-14

초등학교 4학년.

같은 반에 키가 겅충하니 크고 선한 눈의 아이가 있었다.

집이 부유해서 차림새도 좋았고 학용품도 좋았다.

제일 뒷자리에 앉은 그 아이는 수업시간에도 자유로웠다.

마음대로 복도에 나가고 마음대로 화장실에도 가고

어떤 날은 남의 반 체육 시간에 끼어 있을 때도 있었다.

수업이 끝나면 남아서 선생님의 특별 지도를 받았다.

어머니,아버지,바둑이,그리고 이름도 썼다.

그 아이는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였다.

 

침을 잘 흘렸고 울기도 잘 했고 웃기도 잘 했다.

반장이 그 아이를 잘 보살펴 주어 학교에서는 반장이

그 아이의 든든한 울타리 역할을 했다.

아무도 그 아이를 건드리지 못했고 함부로 하지도 않았다.

 

그 아이는 유난히 급식빵을 좋아했다.

수업이 끝나면 당번은 노란 바구니에 배당된 급식빵을 받아온다.

고소한 빵 냄새는 우리 모두의 입맛을 자극했지만

급식빵은 육성회비를 내었거나,폐품을 가져왔거나,

혹은 과제물을 잘 챙겨왔거나, 숙제를 잘 했거나

 그날그날 선생님이 정한 법칙대로 이루어져서 누가 받게 될 지 모른다.

그런 중에도 그 아이는 특이 사실이 없는 한 매일 급식을 배급받았다.

어쩌다 급식빵이 모자라 돌아갈 몫이 없는 날이면

달구똥같은 눈물을 책상 위에 뚝뚝 흘리며 울어서

누군가가 받은 빵을 나눠주어야만 했을 정도였다.

어린 마음에 다들 그 빵이 먹고 싶었을텐데 순진한 어린이들은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곤 했다.

 

어떤 날은 아버지 선글라스를 가져와서 반장에게 주고

어떤 날은 라면을 가져와서 아이들에게 자랑을 하고

평소 우리가 쉽게 접하지 못했던 물건들을 가져와서는

챙기지를 않아 한 학년 아래인 여동생이 와서 챙겨가곤 했었다.

 

어느날 그 아이가 오전 수업이 끝나가도록 학교에 오지 않았다.

한참 국어책을 읽고 있는데 창가에 아이가

[선생님 00이 와요~]한다.

 아이는 양은세숫대야를 들고 왔다.

가끔 오후수업시간에 운동장에 돌맹이 주워 나르는 작업을 하는 날이면

대야를 갖고 오는 날이 있었지만 그 날은 아니었는데 왠 세숫대야?

폐품으로 가져온 것이었다.

그 다음부터 그 아이는 이유불문하고 급식빵이 배당되었다.

 

5학년이 되자 그 아이와 같은 반이 안되었다.

같은 반이 아니기도 했지만 그 아이를 본지가 한참 되었다.

그 해 이맘때 쯤일까.

가을소풍을 가는 행렬이 길게 이어졌다.

학년 별로 반 별로 줄을 서서 교문을 나서 목적지로 떠나는 아이들은

저마다  메고온 가방 무게에 싱글거리며 즐거운 날이었다.

학교 정문 앞에는 문방구가 나란히 있었는데 마지막 문방구 앞에

그 아이가 서 있었다.

'아니..저 애가 왜 소풍을 안 가고 저기 서 있지?'

어떤 아이는 계란을 하나 꺼내주고 어떤 아이는 사탕도 주고

그러자 그 아이는 받아서 주머니에 넣고 입에도 넣고 그냥 서 있었다.

 

대열에서 이탈될까봐 옆짝의 손을 잡고 하얀 모자를 쓰신

선생님의 뒷모습을 놓칠세라 그 아이 앞을 지나쳐왔다.

겅충한 키로 누군가를 찾는 듯이 까치발을 하고 목을 늘리고 있었다.

소매짧은 얇은 셔츠가 추워 보였고 구겨 신은 운동화가 깨끗하지

못했던 기억으로 멈추어 있다.

 

육성회비를 못내서 집으로 쫒겨간 일도 없던 아이였다.

좋은 옷에 좋은 학용품이 부럽던 아이였다.

코를 찡그리며 웃는 모습이 인상적인 아이였다.

남에게 헤코지라곤 하지 않던 아이였다.

그 아이가 그렇게 추운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를 볼 수 없었다.

부모님의 도산으로 남매를 남겨놓고 떠났다는 후문이 있었다.

 

30년도 더 지난 그림이다.

그런 아이가 있었다는 기억은 다들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아이에 대한 세세한 기억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한 친구가 그 아이에 대하여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은 모처의 중학교 교사로 있는 친구인데

아이들을 많이 접하다 보니 그런 아이에 대한 교육 관심이 있어선지

이 시대의 교육관에 대하여 많이 회의적이라 했다.

좀 더 철저한 프로그램이 만들어져서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교육현실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편견의 세상에서 장애우의 부모님이 겪는 상실감을 더러 보아왔다.

말아톤의 주인공을 보고 속이 아렸고, 진호야 사랑해를 보며 가슴이 뜨거워졌고

부모님 전상서를 보면서 그 아이가 생각나 주말이면 코끝이 시큰해지곤 했다.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는 내 짧은 식견으로는 쏟아낼 지식도 자신도 없고,

창 밖에 커다란 목련 이파리의 그림자가 우산만큼 크게 비추이는

여유로운 시간에 좋은 사람들과 소풍을 떠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건내다 문득 그 날의 소풍길에 본 그 아이의 커다란 눈빛이 각인되어 적어본

지난날의 이야기였음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