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을 가기로 약속을 했는데 비가 온다.
우중산행을 감행할 만큼 매니아는 아니어서 취소했다.
서리태를 섞어 아침쌀을 준비해 놓았고
도시락도 챙겨놓았는데 하릴없게 되었다.
목욕물을 가득 받았다
목욕용 소금이라는데 어디에 어떻게 좋은지도 모르고
욕조에 넣어 몸을 담궜다.
고마운 친구가 지난달에 이어 이번달에도 보내온 작은책을
펼쳤지만 땀과 수증기로 눈 앞이 흐려 덮어 버렸다.
목욕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듯이 전화벨이 울렸다.
위층에 살다 이사간 사람이다.
빨간색 우산을 받쳐들고 나가 둘이서 점심을 먹고
헤어진 그 길을 혼자 걸었다.
비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티셔츠만 입고 나간 아이가 추울 것 같아 문자를 넣었더니
엄마 말 안들은 거 후회하는 답문이 왔다.
언젠가 이시형 박사의 말이 생각났다.
우리나라 엄마들 자식들한테 너무 유난스럽단다.
배 고프면 먹을 것이고 추우면 입을 것이고 더우면 벗을텐데
따라 다니며 먹어라 입어라 벗어라 한다는 것이다.
시장에 들렀다.
날씨탓인지 시간탓인지 시장은 한산했다.
이것저것 물어보고 다니기 쉬운 날은 아니었다.
구경만 하고 다니다 물 좋은 게를 만났다.
게장을 담그면 알맞겠다.
버스를 탈까 하다 꿈지락거리는 게 봉지를 들고 걸었다.
발버둥을 치는지 비닐봉지가 바스락 거린다.
서로 할퀴고 싸웠는지 다리가 몇 개 떨어지기도 했다.
평소에 하던 방식대로 게장 담글 준비를 해놓았다.
당분간 며칠은 집을 비워도 될 듯하다.
어디로 가지?큭~
오늘같은 날 라디오에서 한두 번은 나왔음직한
'최헌'의 '가을비 우산속'이란 노래가 갑자기 생각난다.
♪그리움이 눈처럼 쌓인 거리를 나혼자서 걸었네 미련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