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는 실패였다.
풋고추 한 번 따먹고 붉은고추는 구경도 못했다.
개인사로 게으름을 피운 죄가 크다.
지지대까지 세워주며 요란을 피웠는데 끝까지 보살피지 못하여 미안타.
마르고 시들고 병든 고춧대를 뽑아내고 배추모종을 심었다.
고추를 심을 때도 그랬지만 배추 역시 남의 밭을 훔쳐보고 흉내를 내었다.
도톰한 둔덕을 만들어 심어들 놨길래 우리도 둑을 만들어 배추를 심었다.
구멍을 파고 물을 넣고 모종을 심고 흙을 덮어 다독거려 주었었다.
오늘 알았는데 굳이 둔덕을 높게 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리고 벌써 4주가 지났다.
농장 곳곳에 푸르름이 넘치고 있었다.
일찍 심은 배추는 제법 속을 오무리고 있었고,씨를 뿌린 밭에는
어린 싹이 소담하게 올라와 있었다.
애기 손바닥만하던 배추가 크게 자라 서로의 잎을 부비며 웃고 있었다.
경험들이 없어서 어느 정도 간격으로 심어야 되는지 가늠을 못하여
적당히 심는다고 심었는데도 배추끼리 서로 부딪친다.
군데군데 몇 포기는 성장이 더디거나 빈 자리로 남아 있었다.
어떤 생명이든 길고 짧음이 있나보다.
옆 농장 부부가 열심히 채소밭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배추를 심은지 3~4주가 되면 추가비료를 해줘야 된다고 해서
요소비료를 배추 중간중간에 가볍게 묻어주었다.
곳곳에 빈 자리에는 쪽파를 심었다.
쪽파 알은 보기엔 시들어 보이는데 그것이 땅속에서 기운을 얻어
머리위에 덮어쓴 흙을 헤치고 나와 가느다란 파로 태어난단다.
흙무게에 눌러 쓰러질 것같은 가느다란 실파가 그렇게 큰 기운을
안고 태어난단다.대단한 힘이다.
이번 배추가 성공하여 올 겨울 김장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