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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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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농군 (3)


BY 모퉁이 2005-05-15

누구말마따나 머리털 나고 농사라고는 처음 지어본다.

빈 땅을 일구어 호박심고 고구마 심던 아버지께서

호미가져와라, 호박 따라,고구마 캐라 시켜서

수확은 거들어 봤지만 직접 씨뿌리고 가꾸고 거두기는 처음이다.

 

지난번에 갔을 때에는  열무는 내 손바닥 길이만큼 자라 있어서 솎아내고

상추는 겉잎을 땄더니 두 집 한 끼가 겨우 될까 싶은 양이었다.

쌈케일도 덜 자랐고,20일무는 하나 뽑아 봤더니 조그만 구슬알만했고

또 다른 쌈채소도 잎이 너무 여려서 손 대기가 어려웠었다.

 

어제,농장 앞에 갔을 때 나는 그만 입이 벌어지고 말았다.

네 평짜리 땅뙤기에는 열무가 부풀어서 금방 터질듯이 가득했고

적당히 자란 쌈케일이며 상추가 넘칠듯이 술렁이고 있었다.

하나 뽑아본 이십일 무는 왕사탕만큼 자랐는데 발갛게 여문 색깔이 너무 곱다.

 

[어머머머..세상에나 세상에나...언제 이렇게 자랐대?]

마주친 남편도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카메라를 챙긴다는게 잊었다고 자기 머리를 쥐어 박는 시늉을 한다.

얼마전에 바꾼 휴대폰이 카메라 기능이 되건만

그것마져 집에 두고 왔으니 농장 모습을 저장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컸다.

 

적당한 길이로 자란 열무는 촘촘하게 자라서

키는 컸지만 잎도 줄기도 연해서 뽑으면서 벌써  열무 국수를 떠올렸다.

이십일무는 솎아 내지 않아서인지 알이 크고 작고 마음대로였지만

대부분 자랄만큼 자랐기에 수확을 해야 된다 했다.

쌈케일도 너무 촘촘하니 솎아 내라고들 했다.

잎이 자라지 못하고 키만 자라면서 줄기가 약했다.

청경채 역시 빽빽하게 자라면서 웃자라고 벌어지지는 못했다.

 

열무와 이십일무는 모두 뽑아냈다.

열무를 묶는다면 몇 단이나 나올까.엄청 많았다.

청경채와 쌈케일과 연한 상추는 군데군데 솎아만 냈는데도 많다.

 

건너편 농장의 어린 아들 둘과 부부가 다녀가는 걸음에

열무를 한아름 들려주었다.

옆 농장에는 심지 않는 이십일무를 나눠주었다.

답례로 우리가 심지 않은 채소를 얻었다.

청경채에 자꾸 눈독(?)을 들이면서 더 솎아내라고 하길래

필요하면 솎아서 가져가라 했다.

채소 이름들을 다 몰라서 옮기지 못함에

다음엔 채소 이름부터 알아야겠다.

 

이렇게 자랐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기에

준비해 온 비닐봉지가 턱없이 부족했다.

자동차 트렁크에 한쪽이 찢어진 돗자리를 깔고

그 위에 채곡채곡 쌓는수 밖에 없었다.

몇번 걸음을 하고서야 수확물을 실을 수 있었다.

 

열무를 뽑고 난 자리에 다시 밭고랑을 만들었다.

고추모종을 열 모 심고,뿌리고 남았던 열무를 더 뿌리고

이십일 만에 수확을 한다해서 붙은 이름이라는

이십일무를 더 심고 이번엔 시금치를 심었다.

비교적 간단하면서 접하기 쉬운 채소를 주로 심었다.

준비도 지식도 없이 무조건 남이 하는대로 따라 하기는

무모한 도전 같아서 우선 가까이 하던 채소부터 심어 보기로 하고

새로운 생명체를 잉태시켜놓은 땅 위에 단물을 흠뻑 뿌려주었다.

 

트렁크에 가득 실린 채소들은 이웃에게 골고루 나누어졌다.

무농약 채소라는 것에 모두들 좋아라 한다.

평소에 일부러 마련하지 않으면 나눌게 없던 내게는

아주 특별한 선물이 되어주었다.

 

저녁은 삼겹살에 쌈이었다.

다양한 쌈종류가 어느 쌈밥집 못지 않다.

넘쳐나던 쌈 소쿠리를 다 비웠다.

전에는 무슨 맛이냐며 쳐다보지도 않던 아이들도 맛있게 먹어주었다.

열무와 이십일무는 풀물 끓여서 물김치를 담궜다.

아삭시원하게 익으면 제일 먼저 열무 국수를 해먹을 것이다.

 

한 알의 씨앗이 떡잎 두 개 틔우기로 시작해서

이렇듯 풍성함을 안겨주는데 우리는 정녕

그 고마움을 얼마나 알고 사는지...

뿌린 것 보다 더 많이 얻음에 대한 감사함을 알고

많이 얻었음에 또 나눔의 기쁨도 배우게 되니

이번 주말농장 체험은 내게 아주 신선한 체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