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시작인데 벌써 주일을 건너 뛰어야 했다.
대신 세화 엄마가 가서 물을 주고 왔다고 했다.
상추가 삐죽대며 송송 올라와 이쁘더라고 했다.
오전에 등산을 다녀와서 오후에 세화 엄마랑 농장에 갔다.
때 이른 더위에 팔을 내놓기 무섭다.
등산복을 입은채 모자만 더 깊이 눌러쓰고 농장에 도착하니
농장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한 주 건너고 왔는데 상추가 많이 자라 있었고
열무는 촘촘하게 비집고 나와 수북하게 자라 있었다.
얼마나 이쁘고 고맙던지 연신 웃음이 나오는데
같이 온 혁이 엄마는 양산을 쓴 채 둘러보더니
맘에 드는 밭이 하나도 없다고 한다.
대부분 초보농군들이라 심은 품종도 비슷하고
심은 시기가 비슷하다 보니 밭 모양새도 비슷들 하다.
상추는 겉잎을 떼주고 큰 잎은 따도 될 정도로 자랐다.
똑똑 따내니 산뜻하게 이발을 한 아이 머리모양처럼
시원하고 깔끔하다.
한 끼 쌈은 될 정도로 땄다.
열무도 솎아 냈다.
쌈치커리와 청경채는 덜 자라서 손을 볼 수가 없었다.
다음주 쯤이면 어느정도 자랐을런지 궁금해진다.
잘 자라라고 물을 흠뻑 뿌려주었다.
솎은 열무로 된장국을 끓일까 하다 겉절이를 했다.
세화네 한 접시를 주고 무친 양재기에 더운 밥을 넣고
쓱쓱 비벼 두 딸과 사이좋게 나누어 먹었다.
남편은 이박삼일 출장 중이라 첫 농사 맛을 못봤다.
곰보 양재기에 겉절이를 넣고 밥을 비비는데
어릴적 옆집 범수네 식구들이 생각났다.
범수네 저녁밥상에 오른 정구지 겉절이에
뜨신 보리밥을 넣어 비벼 먹던 것을 열린 현관문 안의
마루 풍경을 자주 보곤 했었다.
마지막 남은 보리톨 하나까지 싹싹 긁어 먹던
범수네 막내 동생 동수의 볼에 붙은 보리 알갱이도 생각난다.
그 많은 양의 밥을 어떻게 먹을까 싶었지만
사형제 둘러 앉아 퍼 먹다 보면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는다.
제일 먼저 범수 엄마가 밥술을 놓고 나면
사형제의 숟가락 소리는 그들만의 장단이 되어 엇박자를 만들어 낸다.
범수 엄마는 설겆이 거리는 별로 없었지 싶다.
커다란 양재기와 숟가락 다섯개와 눌은밥을 불리던
솥이 전부였지 싶다.
워낙이 깔끔한 범수 엄마는 부뚜막도 마루도 항상 윤이 나서
마루에 흘린 밥풀떼기까지 다 주워 먹고 마지막으로
눌은밥을 띄운 숭늉까지 마시고 나서야
흘러 내린 바지 허리춤을 추스리며 일어나는 막둥이 동수의 배는
항상 불둑했는데 지금은 불혹 정도의 나이가 되지 않았을까.
범수는 나보다 한 살이 많았으니 어휴~잘하면 대머리 아저씨가 되었을 것 같고
명희는 나보다 한 살이 적었으니 나와 비슷한 가족수를 이루었을 것 같고
정수는 명희보다 두세살 적었으니 그도 중년 아저씨가 되었을테고
동수 역시 마흔줄을 꿰찬 어느집 가장이 되어 이 세상을 함께 하고 있을테지.
범수 어머니의 주근깨가 살짝 덮힌 그 얼굴과 함께
그 집 사형제의 얼굴이 겹쳐져 온다.
초보농군의 텃밭은 옛기억까지 가져다 주는 요술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