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향에 살다보니 같은 사투리를 쓰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다.
더 친밀감이 들고 말문 트기도 쉽다.
그런 이웃이 몇 집 있는데 어제 저녁에 느닷없는 초대를 받게 되었다.
남해가 고향인 아저씨가 요즘 한창인 멸치회를 같이 먹자는 것이었다.
일찍 먹은 저녁탓에 그렇잖아도 약간 출출했다는 남자가 좋아라 한다.
참 오랫만에 맛보는 멸치회다.
3월에서 4월이면 멸치가 많이 잡힌다.
넓적한 대야에 미나리,무채,양파,풋고추,상추,기타 야채들 썰어넣고
새콤달콤한 고추장 양념에 설렁설렁 비벼서 입에 터져라 쑤셔넣고
우물우물 삼켜대던 멸치회는 먹어본 사람만 먹는다.
약간 비린맛이 있고,살이 흐물거려서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어촌은 아니었지만 바다를 끼고 있는 마을에서 나고 자라서
왠만한 비린내는 감수할 줄 알고 그 비린맛을 오히려 즐긴다.
지금도 육류대신 나는 생선을 즐겨 먹는다.
이맘때면 멸치젓도 담근다.
요즘에는 보기도 어려운 광경이 되어 버렸지만
예전엔 멸치를 박스채 팔러 다니는 사람이 많았다.
리어카에 생멸치 박스를 싣고 다니면서
[메르치 젓 담으이소~]
마이크도 없이 육성으로 동네 골목을 다니며 외친다.
아주머니들은 흥정을 하고 가격이 맞으면
즉석에서 소금 뿌려 멸치를 채곡채곡 쟁여 넣어 젓갈을 담아주고 간다.
엄마는 한푼이라도 싸게 담그실려고
직접 뱃머리에 가서 멸치를 머리에 이고 오셨다.
싱싱한 놈으로다 멸치회무침을 하고
나머지로 멸치젓을 담는데 곰삭은 멸치젓은 고소한 냄새가 난다.
풋고추 송송 썰어 넣고 양념한 멸치젓의 쫄깃한 살을 발라내어
보리밥에 얹어 먹거나 상추쌈에 올려 먹어도 그만이었다.
경상도 지방에서는 김치도 멸치젓을 많이 사용한다.
약간 텁텁하고 색이 짙어서 산뜻한 서울식 김치와는 사뭇 다르지만
그 짭조름한 젓갈맛에 베인 김치맛을 좋아하는 사람은 또 그 맛을 못잊는다.
지금도 서울 사는 동창들을 만나면 경상도식 김치를 담근다는 친구가 더러 있다.
젓갈을 친정에서 공수해서 먹는 친구들이 대부분 그렇다.
나는 젓갈을 얻어 올 데도 없고 사서 먹기도 하지만
아이들 입맛에는 맞지 않아 해서 토종 경상도식 김치맛을 낼 줄 모른다.
서울식도 아니고 고향식도 아니고 어정쩡한 김치맛이다.
어쩌다 티비에서 전국 소식을 보게 되면
'저게 내 고향 맛인데..저건 내 고향 명물인데..'
그런 날엔 으레히 고향의 늪으로 빠져들곤 했는데
어제 멸치회는 그 늪에서 허부적 대기 딱 좋은 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