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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지 않는 샘


BY 모퉁이 2005-04-11

고향 마을 한 모퉁이에 사철 마르지 않는 샘이 하나 있었다.

아무리 키가 작은 아이일지라도 물 퍼기가 쉬운

바가지 샘이라고 불리는 옹달샘보다 조금 큰 샘이다.

그곳에서는 여름에는 어둠이 덮힌 시간에 가서

다 큰처자도 등목을 하고,김장때에는 절인 배추도 씻었고

세숫대야에 이름도 생소하던 샴푸라는 것을 담아 이고 가서

머리도 감고,허드레 걸레도 깨끗이 헹구어 주는 요술샘이었다.

 

고무장갑이 흔치도 않았지만 장갑이 필요없을 만큼

겨울샘물은 따뜻했고,여름은 나름대로 시원해서

우리는 그 샘에서 노는 것을 좋아했다.

어떤 날은 동네 아낙들 다 나왔는지 자리가 비좁아

한옆에서 쪼그리고 앉았다가 빈 자리가 나면

냉큼 퍼져 앉아 걸레가 행주만큼 빛날 때 까지 문지르고 또 치대어 대었다.

수건이 피가 나도록 빨아댄다고 어른들이 웃기도 했었다.

 

주인도 임자도 없는 샘 근처에 사람 그림자 하나 없는

여름 한 낮 땡볕 아래에서 혼자 철철 흘러 넘치는 샘물은

보기만 해도 아까워 손이라도 담구고 지나곤 했었다.

 

그 옆에는 봄이면 미나리가 파랗게 돋는 미나리깡이 있었다.

미나리깡에는 거머리가 있어서 냉큼 발을 담구지 못했다.

거머리란 넘은 피를 빨아 먹는 독종이라고 엄마가 겁을 주기도 했지만

 미나리 속대에서 꿈틀대던 거머리를 보고 난 후에는

삶아서 무쳐준 미나리도 제대로 먹지를 못했다.

 

늙은 미나리 잎에서는 솔내가 났고

데쳐서 무쳐 놓은 미나리 나물은 질겨서 이 사이에 끼이기도 했지만

미나리깡에 미나리 품을 파는 날이면

동네 집집마다 저녁 반찬은 미나리 나물이었다.

 

멸치가 많이 잡히는 4월 어느날.

엄마는 멸치젓을 담구기 위해 멸치를 상자째 사 오셨고

싱싱한 멸치는 미나리와 무채를 섞어 벌겋게 버무린 양재기에서

 시고 단맛을 토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멸치회를 실컷 먹고 나면 미나리 속에 거머리가

혹시 내 배에 들어가서 창자에 들러 붙어 내 피를 빨아 먹어

내일 아침에 나는 못 일어날 지도 모른다고 막연히 불안해 하기도 했었다.

미나리를 그렇게 먹고도 지금껏 아무일 없이 자란거 보면

거머리는 한 마리도 먹지 않은 모양이다.

 

세월은 어느덧 20년도 더 지났다.

결혼하고 고향을 떠났다.

어느 곳이나 개발 붐을 타고 마구 쑤셔댄  흔적들로

고향 산 허리도 휑하니 구멍 뚫린채 허허롭게 변한 곳이 많다.

요즘 누가 샘물 퍼다 사용하는 사람이 있어 그 샘물이 보존 될 것이며,

어느 누가 미니리깡을 지키고 있는지...

 

봄이 오는 소리는 차츰 가까이 들리는데

고향의 샘물 소리, 미나리 파란싹은

그져 기억 속에서나 흐르다 말라버릴려나..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이 되어

내 고향의 향기가 그리울 때

가끔씩 퍼내어 마시는 샘물로 남겨두고 싶다.

 

 

 

 

 

 

 

 

 

 

 

 

 

 

 

 

2004-03-02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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