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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당연필과 필통


BY 모퉁이 2005-04-11

초등학교 입학식을 앞두고

가방은 아버지가 사오셨고

공책과 필통을 사기 위해

큰언니랑 문방구에 들렀다.

 

말랑말랑한 연두색 프라스틱 필통이 예뻤다.

연필 세 자루 넣고 지우개 넣고

칼을 넣으니 필통이 꽉 찼다.

조그만 그 필통값은 10원이었다.

20원짜리 필통도 있었는데

나는 10원짜리로 샀다.

 

그 필통은 오랫동안 썼다.

나는 연필을 예쁘게 잘 깍았다.

예쁘게 깍은 연필을

크기대로 나란히 필통에 담아놓으면

정리 잘 된 부엌 찬장처럼 기분이 좋았다.

 

길다란 연필이 몽당연필이 되었고

몽당연필도 버리지 않았다.

모나미 볼펜대에 끼워서 끝까지 마지막까지 썼다.

 

연필심이 부드럽지 못해서

공책이 찢어지기도 했고

옅은심의 연필은 침을 묻혀가며 숙제를 했다.

 

노란색 연필은 재수가 없다고들 했었다.

시험치는 날에는 노란색 연필을 쓰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터무니 없는 짓들이었다.

 

큰아이 입학할 때에

형님이 연필깍기를 선물로 주셨다.

그래도 나는 칼로 깍는게 좋았다.

아이들은 기계에 익숙해지면서

칼질을 못하게 되었고

연필도 하나 제대로 못 깍았다.

혹여 손이라도 다칠까봐

아예 못하게 하는 엄마들도 많았다.

 

지금은 그 기계도 퇴물이 되었다.

샤프라는게 나오면서

연필 깍을 일도 없어지고 심만 바꾸어 끼우면 된다.

날로 발전하는 것이 어디 이 뿐이랴만은

이러다가 이 손은 어디에 써먹을까 싶은

괜한 걱정을 다 한다.

 

눈썹대와 입술라인을 그리는 펜이 있다.

전에는 그것도 칼로 깍아 쓰는 제품이더만

요즘은 돌려쓰는 제품들이라 이제는

연필 깍는 재미를 어디에서도 찾기 어렵게 되었다.

 

연두색 필통 속의 몽당연필 모두 쏟아놓고

지우개똥 연필심 훅훅 불어 털어내고

마루 닦고 던져놓은 걸레로 쓱쓱 닦아

필통정리를 하던 그런 시절이 내게 있었다.

 

 

 

 

 

 

2005-01-29 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