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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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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기 가득한 날


BY 김정인 2005-05-06

아침부터 하늘은 물기를 입 안 가득 머금고 있는 듯했다.

아이 병원을 다녀올 쯤엔 간신히 웃음을 참느라 애쓰다가 피식피식 새는 입술의 틈 사이로 물방울이 뚜우 뚝 뚜우 뚝 떨어졌다.

마침내 하늘은 오후 아이 마중을 나갈 쯤에는 파아아 최불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굳이 가기 싫어하는 아이를 앞세우고 2코스 남짓되는 도서관을 향해 나섰다.

키작은 곰돌이 노랑 우산이 흐느적흐느적 따라오고, 그 앞엔 등에 업힌 아이의 축 늘어진 다리달린 빨간 우산이 살살 가고 있었다.

한참을 가려니 한상자에 만원하는 사과 장사 뒤로 한줄로 늘어선 물 머금은 가로수와 그 밑에 올망졸망 모여 얼굴을 하늘을 향해 한껏 벌리고 있는 민들레가 보였다.

한참을 들여다 보았다.

열다섯 물오른 처녀를 보고 침 꿀꺽 삼키는 노총각 마음이 이럴까.

나뭇잎 하나하나에 스며있는 초롯빛은 손가락으로 쿡 찍으면 묻어나올 것 같고,

노란 민들레는 있는대로 꽃잎을 짝 펴 물을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도 모르게 초롯빛, 노란빛 물기를 흠뻑 빨아 들였다.

우리 아이가 좋아하는 만화 주인공 스폰지밥처럼 마음이 퉁퉁 부어올라 터질정도로.

온통 칙칙한 회색빛이요 구릿빛에다 약냄새까지 풀풀 풍기는 속에다 오랜만에 백반 곱게 찧어 봉숭아잎으로 손톱에 꽃물 들이듯 물기을 가득 채우고 나니,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