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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에서 행복까지


BY 김정인 2005-01-28

아파트 배란다 난간이 감옥의 창살처럼 높게만 보일 때가 있다.

현관문은 열려 있건만 등짝에 껌처럼 찰싹 들러붙은 아이들이 한 없이 무거워

땅 속으로 꺼져 버릴 때가 있다.

다 내뱅개쳐 버리고 어디론가로 떠나고 싶은 날.

그게 어제 였다.

오후내내 방바닥에 붙어 이리뒹굴 저리뒹굴.
 

그런데, 오늘은 말짱하다.
비가 오려는지 창문너머로 하늘은 회색빛이다.

그 아래 아파트 숲도 적당히 축축한 기운이 서려있어 차분해 보인다.

날씨로 치면, 오늘이 더 우울해지기 쉬운 것 같은데.

아마도 나만큼이나 늑수루한 하늘에게 위로를 받았는지도.

즐겨 먹는 비스켓의 봉지를 쭉 찢어 입맛을 다시는 아이에게 하나 주고

내 입에도 살포시 물었다.

그리고 라디오를 틀었다.

이러한 날씨에 꼭 어울리는 우아하고 감미로운 옷을 입혀 주었다.

바로 이 분위기야.

두 눈을 지긋이 감고 나는 어느새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레스토랑에 갔다.

 

아무리 더듬거려도 열쇠가 없어 땅바닥에 가방 내용물을 다 쏟고나서야 겨우 문을 잠그고, 

찬바람 속을 아이 업고 낑낑거리며 달려 갔는데 버스는 떠나 버리고, 

집에 왔는데 병원에 아이 모자를 덜렁 떨어뜨리고 오고,

비닐봉투값 아끼느라 가방에 가득 쑤셔넣었던 물건이 와르르 땅바닥에 쏟기고,

하는 일마다 헝클어져 만신창이가 되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나만 못나 보이고, 세상이 나만 밀어내는 것 같고

그래서 괜시리 내가 태어난 날마저 원망하게 된다.

 

그러나 오늘처럼

아이가 일찍 일어나 잔소리 안해도 알아서 밥 먹고 유치원 가고,

좋아하는 과자 입에 물고,

마음을 꼭 드는 음악이 흘러 나오고,

참다운 나와 만나 두런두런 얘기할 수 있는 날은 충분히 행복하다.

 

그러고 보면,

우울과 행복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바로 돌아서면 오고 가기가 순신간이다.

일단, 우울의 길로 치닫는 나를 억지라도 붙들어

행복의 길 언저리에라도 갖다 놓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