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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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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맞이


BY 김정인 2005-01-19


2004년도 며칠 남지 않았다. 무언가를 정리하고 새롭게 시작해야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단지 날짜가 얼마남지 않았다는 것이 그런 마음을 들게 한 걸까? 오늘 남편은 작은 아이가 칭얼거려 아들과 함께 작은 방에서 잔다. 휴가를 얻은 기분이다. 내가 보고 싶은 드라마를 8시부터 11시까지 실컷보고 설거지도 안하고 이렇게 펜을 든다.

나는 무엇을 정리해야 할까?

막연하다. 그래서, 일단은 집안의 이곳저곳을 4일동안 열심히 치우기로 했다. 평소에 청소에 대하여 그렇게 열정적이지 않은 내가 새해맞이 방법으로 이런 아이디어를 얻은 건 오늘 아침 느닷없는 남편의 배란다 청소 덕분이었다. 내가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남편이 먼저 청소를 시작한 건 실로 오랜만이다. 붙박이 창고도 정리하고, 현관의 반이상을 차지하고 있던 자전거도 치웠다. 잡동사니을 들어 내고나니 얼마나 집 전체가 넓어 보이는지 놀랬다. 나도 덩달아 신이 나 방청소에 걸레질까지 했다. 남편과 나의 부산스러움에 왠지 저만치 앞에 묵은 해가 뒤꽁부니를 감추는 소리가 스르르 들리는 듯하다.

남편이나 나나 궂이 찾아서 치우지 않는다.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로만 하고 산다. 눈에 보이는 우리의 생활공간만 치우고 안 보이는 부분은 약속이라도 한듯이 지적을 하지 않는다. 자기가 청소를 해 주지 않는 이상은 상대방에게도 요구하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구석구석 먼지가 꽤 많다. 배란다의 4쪽의 넓은 창문에는 아이들의 손자욱으로 얼룩얼룩하고, 욕실 거울도 치약과 세수물이 띄어 뿌연 자국이 이곳저곳 있다. 냉장고과 벽 사이 주먹이 하나 들어갈 만큼의 공간이 있는데 손이 닿지 않은 곳에 먼지가 뿌옇다 못해 아무도 안 밟은 눈처럼 소복히 쌓여 회색빛이다. 또 경단 밑에는 아이들의 장난감이며 책이 들어가 있고 그 위에도 어김없이 먼지가 있다. 한 번도 손을 안 대지만 버리면 왠지 나의 지식의 조각을 잃어 버리는 것 같아 꽂아 놓은 책들 사이의 먼지는 천지다. 그 곳에 먼지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떨 때는 귀찮아서 안 치우고, 다른 일 먼저 하다가 잊어버리고, 몸이 안 따라주어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드디어는 2004년의 끝자락까지 이르렀다. 항상 칩칩하면서도 못하던 일을 우연잖게 오늘에사 하게 된다.

연말에는 크리스마스다, 새해다 특별히 기념할 일은 많다. 남들은 파티를 한다 망년회를 한다 여행을 간다고 떠들썩한데, 변변한 케이크 하나 못 사는 형편이라 조금은 울적해 있었다.
그런데 덕지덕지 뭉쳐 굴러다니는 내 마음의 먼지덩이를 청소를 하다보니 이곳저곳의 피자욱이 마른 생채기들은 아물어 가고 살아온 흔적에 대하여 감사하게 되고 어려운 이웃에게까지 닿게 된다. 신기한 일이다. 편하다고 집안에 누워 여느때처럼 텔레비젼을 보기보다는, 주머니가 가벼운 사람들에겐 집안 구석구석 대청소를 하는 것도 새해를 맞는 휼륭한 방법이라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 우리 집 먼지 만큼이나 회뿌연 그늘이 하늘에 덮일쯤 어느새 우리 집 창문너머로 2005년 희망이 슬며시 다가와 미소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