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실에서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는데, 휴대폰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몇 번 울리는가 싶더니 그쳤다. 잠시 후, 더 큰 소리로 나를 불러 대어 황급히 고무장갑을 벗고 전화기를 들었다. 걸걸하고 시원스러운 남자 목소리였다.
"누부야, 뭐 하고 있는교, 자고 있는데 깨운 거 아이가" 자동차보험 영업사원으로 일하는 먼 친척뻘되는 동식이였다.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장유에서 적극적으로 나를 찾아 준 사람들은 보험회사 사람들이었다. 새로 태어난 우리 둘째 아이 보험들라고 대구에서 내려와 계약을 하고간 베태랑 보험 아줌마, 그리고 남편 자동차 보험을 소개시켜준다고 찾아와 준 동식이. 나는 그 때서야 비로소 인간이란 철저히 자기가 필요로 할 때에야 만남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달았고, 어쨌든 아이 낳고 혼자 힘들어하고 있는 나를 찾아와 준 사람들이라도 반가왔다.
"누나, 별 일은 없제? 아는 잘 크나? 아, 돌은 언제고? 다 됐제?"
아이의 안부를 묻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들을 하늘나라로 보내버린 아버지의 목소리치고는 너무나 힘찼기 때문이다.
"3월이니까 좀 남았지? 살기가 어려워서 돌잔치나 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왠지 모를 미안함으로 목소리가 자꾸만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그래도 돌잔치는 해야제. 또 준만큼 받잖아. 어렵다어렵다하면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힘을 내야제. 좋다좋다하고 살면 모든 일이 잘되어질끼라. 힘내라."
"너 말을 들으니까 힘이 난다야. 너 사는 모습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어설픈 칭찬이라도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전화를 끊었다.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한참이나 가슴이 뻐근하였다. 그러나 위로를 어떻게 해야 될지 막막해서 전화를 하지 않은터라 오늘의 전화통화는 미안함으로 어색하고 당황스러웠다. 즐거운 일은 아무 말이나 툭 던져도 기분좋게 상대방이 받지만, 이처럼 지독히 안스러운 일은 아무리 꽃같은 말을 해도 가시로 박히는 법이라 차일피일 전화를 미루다 보니 도리어 내가 위로를 받은 셈이다. 우리 아이가 3개월쯤 되었을 때, 배가 남산만은 아내를 데리고 와서는 호탕하게 웃던 모습이 선하기에 더더욱 몸둘 바를 모르겠다.
내가 동식이를 처음 만난 건 10년전이다. 아버지가 대구에서 하던 일을 정년퇴임하시고 고향인 마산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셨다. 동식이의 어머니가 우리와 먼 이모뻘이 되어 아버지와 왕래가 잦은 터라 우리도 자연스럽게 친하게 되었다. 동생과 내가 명절이라고 내려가면 동식이는 우리를 태우고 마산 시내와 여러 곳을 구경시켜 주었고, 밤새 술을 마시며 속내를 다 드러내 보였다. 동식이는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지만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랑은 헤어져 남의 집 살이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어머니와 세상에 대한 분노를 자기를 향해 비수를 꽂으며 삶을 마구 살았다고 했다. 우리랑 알 때쯤에는 어머니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엄마의 잔소리에 낯설어 하고 있었다. 1년에 1-2번씩 만날 때마다 직업은 바뀌어 있었고 말하는 애인도 다른 사람이었다. 동식이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아버지의 장례식 때였다. 그 때도 친구에 대한 배신감으로 울컥해 오토바이로 과속하다가 크게 사고가 나 다리에 기부스를 하고 병원에 누워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마저 대구에 올라온 이후에는 마산에 내려갈 일이 없어 소식이 끊겼다가 이번에 연락이 된 것이다. 남편이 동식이가 많이 변했다고 하기에 영 믿겨지지 않았는데, 저번에 우리 아이를 보러 올 적에 보니 정말로 사람이 완전히 변해 있었다. 단정한 옷차림에 화통하고 시원스런 말소리, 자신감 있는 태도, 넘치지 않으면서도 남을 배려하는 마음 등 딴 사람을 보는 듯했다. 그 모습을 보고 얼마나 기분이 좋았던지. 항상 마음 한 곁이 걱정스럽더니만 말갛게 걷히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몇 달 후 아이를 잃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등학교 때 보았던 책제목이 생각난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였는데, 그 때는 나도 같은 학생입장이라 내 설움에 복받쳐 그 속에 깔린 깊은 뜻을 헤아려 보지 못했는데, 오늘에사 그 의미를 알 듯 하다. 동식이를 보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듯, 또한 행복은 재물순도 학력순도 명예순도 아닌 듯하다. 세상에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웃지 않은 사람이 있다. 또, 슬픔이 마음 한가득인데도 깊숙이서 끓여 너털 웃음으로 고아내는 사람도 있다. 진작부터 별별 사람 다 모여 사는 세상인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진한 사람의 아름다운 내음을 맡을 때면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한겨울 아랫목처럼 가슴 한 켵이 뜨끈뜨끈해 오는 듯 하다.
우아한 꽃의 자태는 우리 눈으로 들어와 콧끝을 간지르고 이내 사라져 버리지만, 아름다운 사람의 내음은 단박에 가슴으로 들어와 선명하게 자국을 남겨 오래도록 우리네 마음을 들뜨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