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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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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크리스마스


BY 김정인 2005-01-17

아이의 선교원에서 선물을 사 보내라고 했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산타클로스를 보내어 아이들에게 그 선물을 전달한다고 것이다. 예수님이 1년동안 친구들이 착한 일을 많이 해서 선물을 준다고 아이에게는 말해두고 부모님은 아이가 좋아하는 선물 한가지와 아이의 장단점을 적은 쪽지와 함께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친구집에 놀러를 갔다가 밤 10시가 되어 허겁지겁 문방구로 향했다. 문방구 아줌마는 하루의 일과를 다 마치고 밖에 내어놓았던 아이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한 조잡스러운 장난감들을 안으로 들여놓고 있었다. 문방구안에는 나와 비슷하게 나이 어린 동생의 선물물을 고르기에 여염이 없는 중학생 남짓 되어 보이는 누나와 먼 발치에서 누나가 이게 좋을까 저게 좋을까 애살스럽게 물어보는 누나의 말에 건성으로 대답하는 엄마가 둘이 좁은 문방구 안을 이리저리 배회하고 있었다. 나는 아이에게 선물을 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선생님이 수요일까지 꼭 선물을 보내라고 하는 말에 더욱 신경이 쓰여 마음만 바쁘게 문구들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아이가 무엇을 받고 싶어하는지는 상관없이 엄마의 타고난 실용성이 어김없이 발동을 했다. 필통. 동생의다 먹은 우유병에 덩그란히 꽂아둔 연필이며 사이펜들이 방바닥에 뒹굴어 다니는 것이 평소에 지저분히 보여서 필통을 들었다. 알록달록, 번쩍번쩍 화려한 색깔로 치장을 천필통, 멋진 만화 케릭터가 그려진 사각의 자석 필통, 종이로 된 상자 필통등 눈이 현란해졌다. 그러다 그 밑에 있는 하드보드 판으로 눈길이 갔다. 위 가장자리로는 그렇게 복잡하지 않은 2마리의 작은 동물 그림, 가운데 넑직한 하얀색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 그리고 그 밑에 잡고 그릴 수 있는 싸이펜 하나와 동그랗고 작은 앙증맞은 지우개 하나가 끼움새에 끼여 고정되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그 쪽으로 손이 갔다.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어 안달이 난 5살 큰 아이는 작가가 아이디어가 생각이 나면 언제어디서나 적을 수 있도록 가지고 다니는 공책처럼 엄마가 보험설계사에게 받은 메모용 작은 쪽지을 손에 들고 다니며 그 때 그 떄 그리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렸고 그 중에서 잘된 것이 있으면 엄마에게 선물을 하곤 했다. 머리에 넘쳐나는 상상력을 그 작은 종이에 그리는 것이 안그러워 다 쓴 이면지를 모아 주었더니 좋아라 했다. 그래서 우리집은 큰 아이가 그려서 내어 놓은 메모지랑 이면지가 항상 방바닥 가득 나뒹굴고 있기가 쉽상이었다. 하루는 아이가 아빠에게 화가 난나 보다. 씩씩거리며 자기 방으로 문을 꽝닫고 들어가더니 한참을 나오지 않는 거였다. 우리는 따라 들어가 화를 풀어줄까하다가 그만두었다. 그러더니 아빠에게 종이 한장을 내밀며 이게 아빠라며 의기양양하게 보라는 것이다. 우리는 무슨 사과의 편지라도 썼을까싶어 얼른 종이를 받아 들었다. 그런데 그 종이에는 커다란 동그라미에 눈과 입, 코가 심술궂게 그려진 남자 어른이 하나 있었다. 심지어는 머리에는 뿔도 나 있었고 폭탄같은 것이 머리 위에서 펑 하며 빨간 색으로 터지고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아빠에게 화가 난 아이가 그림으로 복수를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화 한번 제대로 못 내는 아버지인 남편은 허허 웃으며 아빠를 그려 주어 고맙다고 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아이는 그 새 화가 다 풀렸는지 그 종이를 방바닥에 내팽기치고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이처럼 아이에게 그림은 친구이기도 하고 화풀이 대상이기도 하고 하지 못한 말이기도 했다.

하드보드를 포장해 나오며 그 때 일이 생각나 피식 웃음이 나왔다. 허겁지겁 샀지만 참 잘샀다는 생각이 든다. 이 하드보드처럼 아이가 그려주는 마음 그대로 내 식대로 평가하며 야단치지 않고 받아 알아주는 엄마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얀 하드보드만큼이나 나의 마음도 하애지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