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딸 유진이에게
누군가 엄마에게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너무 행복 하다고 말할 것 같구나!
그 이유를 유진이에게는 말하지 않아도 알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유진이가 10년이 지나서 사춘기가 온다면 엄마의
이 큰사랑을 의심할까봐 이렇게 10년 뒤의 사춘기소녀
유진이에게 편지를 써보기로 했단다.
오늘 하루도 근심걱정이 많은데 무슨 10년 뒤를 생각한 편지냐며 유진이가 10년이 지난 후 엄마를 한심하게 생각할 수 있을지 몰라도 현재 아빠와 거실을 뛰어 다니며 노는 유진이의 모습을 보면 지나온 시간에 대한 엄마의 사랑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은 이 것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엄마에게도 과거 속 그리고 현재의 엄마는 있단다.
유진이의 할머니가 되신 분이 할머니가 되기 전 엄마에게 있어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으며 가장 무서운 분이자 존경의 대상 이였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가 어른이 되었다는 이유로 간섭이 싫었으며, 엄마와 다른 세상을 살기 전까지는 그랬지.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은 여러 세계가 존재한다는 걸 살아보니 알 수 있더구나.
엄마 역시 사춘기를 보내고 보니 3살 때는 당연히 그 자리에 있어줄 엄마가 나이가 들면서는 필요에 따라 있어주길 바라는 존재라는 걸 느꼈지.
엄마와는 사는 세계가 다르고 간섭 속에 답답함이 짜증이라는 생각만 들었던 적도 있단다.
왜 귀가 시간이 있어야하며 왜 하지 말라는 것이 그렇게 많은지, 어른은 다하면서 왜 나에게는 하지 말라고 하는지 이유를 몰랐단다.
알고 보면 아니 이렇게 어른이 되어보면 그건 다 자식을 위하는 부모의 맘이란 걸 느끼게 될 것을 내가 입장이 바뀌고 보니 느껴지는 것을 그때는 모른다는 이유로 너무 무례를 저지르고 말았단다.
지금은 후회되지만 그건 나에게 있어서 사치더구나.
부모님께 효도도 많이 하기 전 사랑을 한다며 25살 나이에 결혼을 하겠다고 속을 섞인 후 울산으로 시집을 와버렸거든.
왜 그런 말이 있지 않니? 있을 때 잘해.
이 말이 왠지 기분 나쁘게만 들렸는데 지금은 이 말처럼 정확한 답은 없는 것 같구나. 처음으로 집을 떠나서 가정을 꾸미고 살아보면 나만의 세상에 행복을 느끼며 모든 것이 나의 뜻대로 이뤄져 줄 거란 생각했지.
부모를 안 봐도 그리움 없이 살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했었고, 처음 하는 독립이 설레고 행복 할 것만 같았단다.
하지만 그 나이에 너무 멀리 왔다는 걸 느끼는 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
외로움이 먼저였어.
사랑하는 치훈씨가 옆에 있어도 채워지지 않은 외로움 그건 인천에 남겨 두고 온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과 다 하지 못한 딸의 의무에 대한 반성의 시간 이였단다.
너무 늦은 반성으로 이제는 되돌릴 수는 없지만 유진이에게는 이런 시간을 갖지 말도록 도움을 주고 싶구나.
유진이에게 고백 먼저 하나 할까한다.
유진이를 낳은 엄마의 나이 역시 결혼 후 딱 10개월이 지나서였지.
아이에 대한 간절함보다는 철없는 나이에 큰 고통으로 느껴지기도 하였단다. 아이를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울산에서 혼자 키워야 한다는 부담은 갖고 있었단다.
그래서 임신한 동안 육아일기를 쓰기는 했지만 아마도 그 육아일기를 읽는다면 많은 걱정과 조바심 그리고 불안이 가득했다는 것을 알 거야.
그건 엄마가 된다는 것에 대한 준비 과정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아마도 처음으로 나를 닮은 아이를 나 홀로 키워야 한다는 부담이 컷 던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유진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할 때가 있단다.
남들은 좋은 태교를 한다지만 그런 것을 신경 쓰지 못해 준 것부터 해서 유진이에게 엄마가 될 자격이 있었는지는 까지 의심스러울 정도의 철부지 였 던 시절 같아.
그래서일까 유진이에게 다른 부모들이 자식을 어떻게 사랑하는지 몰라도 엄마가 많이 부족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들 때가 있단다.
엄마의 사랑이 어땠니? 유진이 만족스러웠니?
참!
유진이가 10년 뒤가 아니 여도 유진이가 엄마를 이해할 나이라면 왜 아무도 없는 울산에 정착하고 살았냐고 묻는다면, 아니 서울이랑 가까운 인천을 어떻게 버리고 울산으로 왔냐며 질문을 던지면 엄마는 이런 대답밖에 하지 못할 거야.
치훈씨를 너무 사랑했기에 부모님과 살아 온 시간은 길었고 치훈씨와 살아보고 싶었기에 또한 치훈씨를 믿었기에 인생을 누구와 함께 해야 한다면 7년을 연애한 유진아빠이자 엄마의 사랑을 따라왔다고 말하고 싶단다.
그래서 유진이처럼 예쁜 딸을 만날 수 있었으니........ 만족!
이것 만에 정답일 테니깐!
그 철부지가 이렇게 엄마가 되어서 유진이의 10년 뒤 사춘기를 걱정한다는 것도 웃긴 이야기일수 있지만 엄마는 너를 낳고 철부지는 탈피했다는 생각이 들기에 이렇게 편지를 써보는 것이란다.
대한민국의 엄마는 위대하다는 것을 말로만 들었지만 유진이를 키우고 함께 생활하다보니 유진엄마로써 대한민국의 위대한 엄마로 업적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아직은 미흡하겠지만 천천히 하련다.
유진이의 미래는 가까운 미래일수도 있지만 아직은 엄마의 꿈속에 있다는 생각이 들면 유진이를 포장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단다.
아마도 이건 모든 부모님들의 바람 이였던 것 같구나.
나의 엄마도 내 모든 것이 완벽하기만 바라던 부모였을 거야. 하지만 맘처럼 따라주지 않는 것이 자식인 나였을 것이고, 지금에 와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아마도 내가 이승희란 이름이 아닌 엄마라는 이름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유진아!
사람에게 있어서 이름이 얼마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니?
엄마는 이승희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단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에게도 이 이름보다는 유진엄마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는 사람이 되었단다.
그래서일까 유진이의 인생이 곧 엄마의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단다. 엄마가 너무 인생을 포기한 사람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그건 아니야. 엄마에게 있어서 청춘은 사라져 간다 해도 꿈은 남아있을 것이란다.
지금생각해보면 나의 부모님에게 그 꿈을 이뤄주지 못하고 떠나온 생각이 들어서 조금은 미안한 맘이 있단다. 꿈을 확실히 알지는 못해도 아마도 자식에 대한 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유진이 너의 할머니 성함은 ‘서자봉자열자’ 시단다.
이름이란 불리라고 남들에게 알리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좋은 세상보다 힘든 세상을 산 할머니에게 있는 이름은 나의 이름보다 더 많이 알리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일까 같은 여자로써 ‘서자봉자열자’님의 이름을 오늘은 이렇게 적어 두고 싶은 생각이 가득하다. 이름을 어디에 남기는 것도 쉬운 건 아니잖니?
유진아!
엄마가 너무 주저리주저리 글을 적은 기분이 든다.
사춘기는 누구에게나 온단다. 아마도 이 편지를 쓰는 엄마는 지금의 나이에서는 유진이 너를 모두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10년 뒤에는 이해보다는 세대차라는 벽에 닿을 것 같구나. 그 벽이 조금은 두껍고 높아도 엄마와 딸이라는 방패로 이겨보자꾸나.
엄마에게 있어 유진이는 첫째 딸이자 엄마란 이름은 선사해준 보물과 같단다. 그런 보물에게 엄마는 조금의 흠도 원하지 않지만 힘들어하는 모습은 더욱 보고 싶지 않구나.
엄마도 너의 기억 속에는 없을지 몰라도 사랑을 하기위해 마음이 아팠던 적도 있고 공부나 친구 때문에 힘들어 한 적도 있단다.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하겠니?
유진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엄마도 괴롭단다. 하지만 엄마를 10년 뒤 유진이 세계에서 빼버린다면 더욱 괴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미래에도 유진이와 함께 하고 싶단다. 그것도 친구 같은 엄마로써 유진이 옆자리를 지키고 싶구나. 그러니깐 엄마에게 벽을 쌓지 말길바래.
아빠가 유진이가 잠이 들었다는구나.
엄마가 컴퓨터 앞에서 미래의 유진이에게 사랑의 편지를 쓰는 걸 알았는지 엄마를 찾지도 않고 잠이 들다니........
이런 유진이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겠니?
오늘 하루도 놀이터와 시장을 다녀오며 일과는 끝났지만 이것이 행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 한다 유진아.. 10년이 지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