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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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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고 있는 집


BY 蓮堂 2006-05-18

 

3년 넘게 비어 있던 집에 지금 사람이 살고 있다. 시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 일면식도 없는 젊은 내외에게 일 년 정도를 공짜로 빌려 주었었는데 집을 옳게 근사 하기는 커녕 집안 군데군데 흠집을 내었다. 그래서 약간의 세를 내라고 했더니 그게 서운했던지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보따리를 챙겨 가지고 말도 없이 나가 버렸다. 전기세와 오물세를 여러 달 미뤄 놓고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그렇게 나가 버리고 나니 집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젊은 내외가 그나마 훈기를 뿜고 있을 땐 그럭저럭 집다운 면모를 유지하고 있어서 겉으로 보기에도 어설프지 않았는데 막상 사람의 숨결이 끊어지자 폐가가 되어 버렸다. 보잘 것 없는 자그마한 시골집이지만 식용 할 채소를 가꿀 텃밭도 있고 나름대로는 손을 보며 살아온 집이라서 그리 험한 집은 아니었는데 인적이 끊기고 나니 두 번 다시 들여다보고 싶지 않을 만큼 섬뜩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비록 손바닥만한 시골 동네지만 입구에 자리하고 있어서 동네를 들락거리는 사람들의 입 살에 자주 오르내려야 했다.

"에구, 웬만하면 싸게 팔던지.......들면 나면 뵈기 싫구만........."

그러나 정부고시 가격조차 무시한 채 털도 뽑지 않고 날로 먹으려 달려드는 사람들에게 헐값으로 넘기기엔 그 집에 대한 애정이 너무 깊고도 아린 마음이 있어서 손을 내 저었다.

시어머님 생각에 항상 목줄이 울끈울끈 아파서 친정 가는 길목에 있는 집인데도 불구하고 짐짓 눈을 감고 지나치거나 아예 외면을 했었다. 안 봐도 뻔한 그림을 새삼스럽게 헤집어 보며 복잡한 생각 머릿속에 담고 싶지 않은 일종의 회피였다.

“아무래도 집을 헐고 아예 공터로 만들어 놓고 팔아야 될 것 같으이. 나 같아도 저렇게 험한 집 안사겠어,”

두어 달 전 집 안팎을 둘러보던 남편이 무슨 큰 결심이라도 한 듯 불도저로 집을 밀어 버려야겠다고 했다.

내가 봐도 미친년 머리 풀어 놓은 것 같은 어설픈 집 보다는 말끔하게 평지로 남겨 놓는 게 훨씬 매매가 빠를 것 같아서 동의를 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그 집을 탐내며 달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남편은 한마디로 거절을 했다. 할머님 거처하시던 방 지붕도 내려앉았고 벽도 군데군데 허물어지기 직전이어서 사람이 기거 하다가 혹시라도 불상사가 생기면 집 주인이 책임을 져야 하는 위험 부담이 있어서 처음부터 잘랐는데도 불구하고 매일같이 졸랐다.

고장난건 고쳐 쓸 것이고 없는 건 사다가 쓸 것이니 못사는 사람에게 적선하는 셈 치고 도와 달라고 했다. 집 세는 달라고 하는 대로 주겠다는 말을 강조하면서 매달리다시피 애원을 하는데 거절할 명분이 없어졌다.

완강하게 나가던 남편이 슬며시 마음을 돌린 건 그 집을 달라는 사람을 만나고 와서부터다. 중년의 내외가 너무 건실해 보여서가 그 이유였다. 보다 더 큰 이유는  웬만한 건 스스로 다 손 볼 수 있는 기술이 있어 보이는 중년 남자에게 믿음이 가서였다고 한다.

집은 그냥 살라고 했지만 혹시라도 전에 살던 젊은 내외에게 당했듯이 금전적인 손해를 입을 것을 염두에 두어서 약간의 돈을 보증금조로 달라고 했다. 액수는 정해주지 않고 성의껏 조금만 통장에 넣으라고 통장번호만 가르쳐 주었다.

집이 팔릴 때까지 내 집같이 편안하게 살면서 집 건사나 잘해 달라는 당부 외에는 달리 할말이 없었지만 우리로 봐서는 여간 고마운 사람들이 아니다.

이런 걸 두고 처남 좋고 매부 좋다고 하던가.

엎어지듯 넘어지듯 고맙다는 말 숱하게 들으며 며칠 뒤 그 집에 다시 갔다.

궁금했다. 과연 그 사람들이 살긴 사는지 아니면 수리하는데 엄두를 못 내고 그대로 줄행랑을 놓았는지 내심 불안한 맘 없지 않았다.

그런데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이미 집안에서 풍겨 나오는 공기의 냄새가 달랐다.

쿰쿰한 곰팡이 냄새가 등천을 하고 잡초가 산을 이루던 마당이 부지런한 중년 내외에 의해서 어느새 말끔하게 손질이 되어 있었다.

어느 틈에 손을 보았는지 수도꼭지 - 지하수 -에서는 3년 만에 물이 뿜어져 나와서 수돗가를 홍건하게 적셔 놓았다. 웬 지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사막 한 가운데 수도꼭지를 박아 놓은 것 같아 사용이 불가능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미 도배와 장판이 반지르르하게 발라져서 가제도구도 일부 들어와서 제법 살림집 같은 모양을 갖추고 있어 콧등이 시려왔다.

조금만 서둘렀다면 이 집은 형체도 없이 사라져 흙더미만 남아 있을 텐데 늑장을 부린 관계로 다시 사람의 손길과 입김이 살아나 있었다.

두 내외가 쓸고 닦고 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우리를 보더니 한마디로 구르듯이 쫓아 나왔다.

“어설픈 집에 어떻게 사시려고.........”

미안하고 고마운 맘에 사들고 간 음료수를 아낙에게 내 밀면서 진정을 표시했다.

깜짝 놀란 아낙이 음료수를 받아들며 얼굴을 붉혔다. 우선은 드릴게 이것 밖에 없노라고 하면서 산에서 뜯어온 산 두릅 한 뭉치를 내 밀면서 쑥스러워 하는 표정이 너무 진지 해 보여서 나도 모르게 덥석 손을 잡았다.

“잘 살아 주세요. 그리고 돈 많이 벌어서 이집 가지세요”

덕담과 당부가 섞인 내말이 고마웠던지 나를 한참 들여다보더니 ‘ 참 고우세요.........’라는 말로 내 인사말의 귀를 맞추었다. 웬만하면 기겁을 하고 달아나도 나무라지 못할 만큼 허술한 집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감지덕지로 엎어지듯 고마워 하니 오히려 내가 민망스럽기까지 했다.


한 사람의 온기, 한 사람의 숨결이 집 한 채 능히 버텨 줄 힘과 기(氣)를 졌다는 게 미스테리다. 빈집이 금방 허물어지는 이유를 모르겠다. 하다못해 개 한 마리라도 마당에 매어져 있으면 집은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아무리 무생물이지만 사람이 살고 있을 때만 집으로서의 기능을 발휘 할뿐 사람이 사라지면 덩달아 맥이 끊어지는 원리에 의구심만 가질 뿐 뽀족한 답을 찾지 못하고 바쁜 내외에게 민폐를 끼칠 것 같아서 서둘러 나왔다.

집주인이 오래 머물면 그만큼 세 들어 사는 사람이 불편 하리라.

집을 나와서 뒤를 돌아보았다. 어둠 속에 죽은 듯이 싸늘하게 엎드려 있던 빈집에 생기가 돋고 입김이 너울너울 지붕 위를 덥히는 게 보였다.

한쪽 귀퉁이가 내려앉아서 보기 흉하고 볼썽사납던 지붕이 보기 싫어서 발길이 더욱 뜸해졌던 집이다.

아직도 시어머님의 체취가 묻어나서 멀리했던 집이다.

곰팡이 냄새에 내장이 울컥거려서 싫었고 거미줄이 콧등에 걸려서 멈칫거렸던 집이다.

휑하니 바람소리 귓전을 훑는 게 무서워서 자꾸만 달아나고 싶었던 집이다.

그러나,

이젠 빈집이 아니다.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다.

애써 고개 돌려 외면하려던 빈집에서 불빛이 새어 나와 자꾸만 고개 돌려 한 번 더 보고 싶은 집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