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을 둘러봐도 웃는 사람이 없었다. 환자나 보호자 모두 웃기는 커녕 고통으로 일그러지고 힘든 표정으로 박제된 날짐승을 닮아가고 있었다. 병상 밑에 마련된 보호자석은 한 몸 눕히기에 적당한 크기였지만 천장을 쳐다보고 누운들 편하지 않았고 벽을 보고 누워도 암담하기만 했다.
벗어날 수 없는 이 답답한 공간이 질식할 것 같은 무게로 목을 조여왔다.
병실을 지키고 있다는 건 차라리 병상 위의 아픈 사람보다도 더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병실 안에서 보호자가 해야 할 일이란 그리 많지 않다. 환자에 따라서 다르지만 화장실 출입할 정도의 경증환자의 보호자는 몸살이 날 정도로 무료하고 갑갑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루를 넘기고 이튿날은 오빠에게 책을 부탁 드렸더니 가지고 온 책마저도 칙칙하고 어두운 소설이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 향수'라는, 조금은 낯선 독일의 문학가가 쓴 일종의 심리소설이다.
사생아로 태어난 주인공은 자기 냄새를 잃은 대신에 미세한 냄새 하나도 놓치지 않은 뛰어난 후각 덕분에 향수제조의 대가(大家)가 되었지만 끝내는 살인자로 단두대에 섰으나 기상천외하게 제조한 향수로 인하여 그에게 돌 던진 사람들을 모두 부정하고 부패하게 만든 뒤 유유히 사라졌다.
그러나 잃어버린 자기 냄새를 찾기 위해서 그는 매장쟁이들에게 자신을 송두리째 내 맡기고 사람냄새를 풍기는 향수를 몸에 바른 채 그들에게 사정없이 물어뜯기며 생을 마감한다는 좀 색다른 소재의 이 소설을 하루만에 독파하고 보니 뒷맛이 개운치 않다.
이 우울한 병실 안에서 이런 내용의 소설을 읽은 감정이란 누르는 가슴 위에 돌덩이 하나를 더 얹어 놓은 것 같이 무겁고 답답하다.
병실 밖으로 나왔다.
복도에서 두어 살 됨직한 여자애가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울고 있었다.
하루종일 다물고 있었던 입이 아이를 보니 자연스럽게 열렸다.
"왜 울어??.........엄마는 어디 있니?"
상관도 없는 아이에게 물을 필요도 없는 질문을 던진 건 잠시라도 답답한 속을 열고 싶어서였다.
그때 숨어서 아이의 일거일동을 지켜보던 아이엄마가 아이에게 다가오더니 나를 힐끔 쳐다본다.
아이의 손을 잡고 가면서 아이에게 던지는 말이 걸작이다.
" 너 자꾸 울면 저런 아줌마가 잡아간다고 했지??"
저런 아줌마??...............
나 같은 아줌마가 아이를 잡아간다고 아이에게 가르치고 있었다.
엄마가 뒤척이는 소리에 잠을 깬 뒤 더 이상 잠을 청할 수가 없어서 무작정 병실 복도를 돌아 다녔다. 새벽 3시가 조금 넘어 있는 그 시각에 인적도 드문 병실 복도를 아무런 볼일도 없이 배회했다.
별로 크지도 않은 시골병원이 주는 인상은 늘 칙칙함과 불결 그리고 우울한 색깔이다.
강한 크레졸 냄새가 영안실에서 풍기는 그 냄새를 닮았다는 느낌은 오버일지 모르지만 콧구멍을 틀어막고 싶을 만큼 거부감이 온다.
방금 읽었던 '향수'의 주인공보다는 그래도 낫다는 생각을 하니까 피식 웃음이 나온다.
손끝에 잡히는 기물들이 하나같이 손길을 오그라들게 한다. 왠지 정수기 물도 목구멍에 걸리는 느낌이다. 병원 밥은 아예 입안에 넣을 생각을 못하겠다. 혹자는 말하리라 . 아직 몸이 안 다니까 결벽증 증세를 드러낸다고 그리 말 할거다.
때에 절은 벽은 밝지도 않은 형광등에 반사되어서 회색 빛을 뿜으며 양쪽으로 버티고 서 있었다.
매일 아침 청소부가 부지런히 쓸고 닦고 하는 열성을 보였지만 생각 없이 버리는 사람들로 인해서 복도는 여기저기 쓰레기가 널려 있었다.
어느 병실에선가 여자의 쇳 날 같은 소리가 들려온다.
'그렇게 말 안 들을려면 차라리 죽어라...........'
모두가 잠 든 이 시간에 보호자가 질러댄 소리에선 섬뜩함에 묻어난다.
아마 환자가 보호자의 간호를 거부했거나 아니면 또 다른 마찰이 이 시간을 피해갈 수 없게끔 했나본다.
이 안에 든 사람들은 모두가 오늘만 살고 갈려고 온 사람들이 아니다. 내일도 살고 모레도 살면서
긴 세월을 행복하고 즐겁게 살려고 병마와 처절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이다.
밀리면 내일을 볼 수 없고, 내일을 맞이할 수도 없게 된다.
하루살이도 하루만 사는 게 아니라고 한다.
길게는 일주일도 살고 물에서의 잠복기는 1~2년 정도 된다고 하는데 만물의 영장 인 사람이 어찌 내일을 안 기다린 채 살고 싶겠냐 하는 맘이다.
엄마 병상 옆에는 아흔이 되신 할머니가 이빨이 하나도 없는 입으로 식사를 하는데 그 재주가 참 놀라웠다.
야물고 단단한 반찬 - 이 반찬에 대해서 간호사에게 건의를 했다. 환자의 반찬으로는 부적절 하다고 - 을 입안에 넣고 몇 번 오물거리고 나서 그냥 목으로 삼켰다.
오늘을 넘기고 내일을 맞고 싶어서 한 입 털어 넣은 음식을 억지로 삼키느라고 눈동자가 허옇토록 울대가 요동을 친다.
혹시라도 체하는 게 아닐까 염려했지만 옆에서 간호하던 일흔을 바라보는 그의 며느리는 걱정을 안 한다. 오히려 무른 음식보다는 야문 음식을 더 잘 먹는다고 은근히 비아냥거렸다.
오래 사는 것도 미운데 음식마저도 잘 먹으니 일찍 죽기는 글렀다고 궁시렁거렸다.
오늘만 살고 갔으면 하는 염원을 하고 있는 며느리가 한심했지만 딱했다.
살면서 더러는 솔직성도 감추고 살아야 하거늘 노골적인 언사에 나도 모르게 엄마를 쳐다 보았다.
내 올케도 엄마를 그리 생각하고 있을까.
아니라고 고개 저을 수 있는 현실이 그나마도 나를 위로했지만 병마로 인하여 고통스럽게 사시는 부모님을 대할 때면 서리 다발 한아름 가슴에 품고 있는 딸의 심정을 부모님은 아실려나.
엄마 옆자리에 누워있던 쉰 여섯의 여자의 아들이 면회를 왔다. 권투선수 알리를 연상케 하는 우락부락한 아들녀석이 지 에미가 밥 안 먹는다고 고래고래 욕을 퍼부었다.
"그렇게 안 쳐먹을려면 차라리 뒈지든지..에이 c....8..........ㅈ 같이......."
듣기에도 민망하고 머리끝이 돌릴 만큼 분노를 느꼈다.
다른 환자의 남자 보호자가 점잖게 나무랐다.
" c .....8......남의 일에 간섭 마슈......."
그 나쁜 넘의 어미가 거짓말 같이 이튿날 싸늘한 몸이 되어서 생의 경계선을 넘어서고 말았다.
살고 싶어서 밤새 몸부림치던, 다리가 부어서 옳게 걷지도 못하던, 음식을 먹으면 거꾸로 엎어져서 토악질을 해 대던 그 생명이 내일을 맞지 못하고 오늘로서 모든 걸 마감했다.
아들녀석이 지 에미의 싸늘한 몸을 안고 병실 문을 나섰다.
내가 주던 쥬스 한 잔 마저도 거부하던 그 사람의 회색 눈빛이 잊혀지지 않는다.
음식을 거부하던 어머님이 밥을 달라고 하셨다. 엄마도 내일을 맞고 싶어하셨다.
먹지 못하면 옆자리의 그 환자처럼 싸늘하게 식어 갈 몸이 무서우셨나 보다.
살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능,
생은 복습도 없고 예습도 없다.
생은 재연도 안되고 편집도 안 되는 생방송이다.
조물주가 쳐 놓은 덫에 걸려서 무대 위에서 춤 출 수밖에 없는 마리오네트(marionette)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