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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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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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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우리 엄마가 맞네요


BY 蓮堂 2005-01-10


 내 아이들이 생각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은 그리 다양하지 않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클 때까지는 바깥일 안하고 주욱 집에서 만 생활해온 나의 모습이 아이들에게 비춰진 건 단순하고 평범한 주부의 모습이었다.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조금 더 영역을 넓혀나가서 보여준 건 뜨게질과 재봉일, 그리고 책과 음악을 자주 접하는 그런 모습이 아이들이 생각한 엄마에 대한 전부였던 것 같다.
 그런데 내 일을 시작한 후로 아이들은 달라진 엄마의 모습을 보고 많이 놀라는 것 같았다.
 화살 줄 같이 팽팽하던 일상이 어느 날부터 인가 느슨하게 풀어진 게 두드러지게 눈에 띄었다고 한다. 집안이 흐트러져 있어도 그냥 덤덤하게 지나쳐 보았고 밀려있는 빨래와 물에 잠긴 채 개수통에 담겨있는 설거지 감, 그리고 구석구석 굴러다니는 먼지 뭉치가 그 대표적인 예였다.
 예전엔 상상도 못할 생활을 난 아무렇지도 않게 꾸려 나가고 있었다고 한다
 아들녀석의 교복에 단추가 떨어져도 몰랐다. 남편의 출퇴근용 정장은 세탁소에 미처 가지도 못한 상태에서 옷을 찾는다고 난리를 쳤다. 자모회 모임이 있어도 가지 못했고 여고동창 모임은 2년 이상을 가지 못해서 자진 탈퇴를 해야 했다.
 사람구실, 인간구실에 소원해질 수밖에 없는 생활이 때로는 안타까웠다.
 모든 걸 '일'에다가 핑게를 대는 비겁을 떨어야 했다.
 좋은 점은 있었단다. 필요이상의 깔끔을 떠는 나의 결벽증에 질려있었던 가족들에게 숨구멍을 틔워 주었단다. 책 한 권 신문지 한 장이라도 가지런히 제자리에 정돈되어 있어야 할 정도로 엄격했던 엄마였지만 막상 그 틀을 벗어난 채로 과거를 잊고 사는 엄마가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나 보다.
 '엄마가 남의 엄마 같아서 좀 낯설어요...'
 남편은 이렇게 달라진 나를 보고 '다른 여자를 데리고 사는 것 같다'고 우스개를 한 적이 있었다. 그동안 나로 인해서 받았을 사소한 스트레스를 생각하니 참으로 미안한 생각이 들었었다.
 사고의 틀이 눈에 띄게 달라진 나를 나 자신도 느낄 만큼 변화의 폭이 컸다는 거 스스로 인정했다. 지난 5 년 간 내가 얻은 게 있다면 달라진 나의 틀이었다.
 조임 나사가 어느 정도 풀어진 채로 고정 되어버린 게 크나큰 수확이었다.
 하던 일 접어버린 요즘의 내 생활은 참으로 건조하다.
 남편 출근시키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조금 더 여유 부리자면 ??이 책보고, 차 마시고  음악 듣고 .....처음부터 하던 일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5년 동안의 그 공백 아닌 공백기간에는 항상 쫓기듯이 대강 대충으로 일관하던 내 생활이었지만 이젠 아귀 맞추어서 제자리로 돌려놓은 예전의 그 모습이었다.  
 몇년동안 구석에 버려 두었던 재봉틀을 다시 끄집어내었다.
 수 년 전에 내 생일 선물로 남편이 거금 들여서 사준 이 재봉틀을 난 참으로 아꼈다.
 쉬지 않고 발을 까딱거려야만 바늘이 前.後進을 하는 예전의 그 불편했던 발틀이 아니고 전기를 꽂고 패달에 가볍게 발만 얹어 놓으면 경쾌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이 재봉틀을 오래 전부터 탐을 내었었다. 市에서 운영하는 여성회관에서 4개월의 홈 팻션 교육을 받고 나서 난 거의 이 재봉틀을 끼고 살았다. 재단에서 박음질까지 꼼꼼하게 내 손을 거쳐간 웬 만한 소품은 집안 구석구석에 보기 좋게 자리잡고 있었다.
 이불, 방석, 각종 가전제품의 덮개와 심지어는 잠옷바지까지.....
 커텐 빼놓고는 거의 내 솜씨를 드러내는데 부족하지 않았다. 만들기 어렵다는 피아노 덮게를 마무리지었을 때의 그 뿌듯함은 잊혀지지 않는다.
 딸아이는 엄마의 솜씨를 친구들에게 자랑했다. 친구들이 부러워했을 때 딸아이의 표정은 의기양양했었다. 아이들은 엄마의 모습에다가 더 큰 동그라미를 그리고 또 그려주었었다.
 수선 집에 맡길려고 모아 두었던 옷들을 꿰메고 붙히고 손질했다. 이빨이 빠져나간 지프와 길어서 땅에 끌리는 바짓단, 옷 수거함에 쑤셔 넣었다가 도로 찾아온 블라우스 등등..
 몇 년을 손놓고 잊고 있었기에 많이 서툴 줄 알았는데 다행이 아직도 녹슬지 않은 기억력이 신통했다. 실꿰는 순서와 바늘땀 조절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손에 익숙해져 있었다
 운전학원에 다니고 있는 딸이 어느새 들어와 등뒤에서  지켜 보는 것도 모르고 열심히 패달을 밟고 있었다. 딸애의 잠옷 반바지에 하얀 레이스를 달고 있었다.
 바지 길이가 짧아서 딸애가 안 입고 버려 두었던 걸 레이스를 달고 나니까 한결 길어진 것 같다
 "엄마..."
 딸아이는 추위에 얼어 있던 빨간 볼을 움직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엄마....이제 우리 엄마 같네요...."
 딸아이의 이 한마디에 가슴이 감전된 듯 찌르르 떨렸다. 내 본분을 잊고 살았다는 간접적인 불평이 아이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전 요.....엄마가 이제 이런 거 못 하실 줄 알았어요..."
 레이스 달린 잠옷을 쳐들고 아주 만족스러운 듯 빤히 쳐다본다.

 하루종일 방안에만 틀어박혀 있는 나를 쳐다보는 딸아이의 표정은 항상 걱정스러움으로 가득하다. 뭔가 꿈틀거림이 있을 줄 알았던 엄마가 왜 저렇게 늘어져 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었다. 딸아이는 엄마가 아직도 우먼파워(Woman Power)인줄 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난 무소불위의 씩씩하고 능력 있는 엄마였다.- 아이들 눈에는 -
 못하는 게 없었고 안 해 주는 게 없었던 그런 엄마로 기억이 되었나 보다.
 그래서 지금도 아이들은 엄마가 하고 싶어하는 일을 무리 없이 해 낼 줄 알고 턱없는 것을 요구할 때가 있었다. 방송통신대학을 가라는 둥, 공인중계사 자격증을 따라는 둥,............
 심지어는 퀴즈프로에 나가 보라는 기상천외한 발상도 거침없이 쏟아놓는다.
 (퀴즈프로를 보고 몇 문제 맞추었다고.... 퀴즈의 달인이라도 될 줄 알고...)
 나이를 들먹거리면 어떤 예순 살의 성공담을 들려주면서 아직도 늦지 않았다고 부추기기도 했다.
 풀기 꺾인 자신감을 꼿꼿하게 일으켜 세워주려는 아이들이 고맙지만  실지로 난 나의 능력이 형편없음을 안다. 어쩌다 운 좋아서 커트라인을 넘기는 일이 있으면 아이들은 그게 능력의 결과인줄 안다. 내가 속인 게 아니고 스스로들에게 속고 사는 그 우매함이 나를 면목 없게 만들었다.
 나의 등단소식은 아이들에게 또 다른 감동을 주었는가 하면, 어쩌다 운이 좋았다는 변명의 여지를 줄 수 없도록 착각하게 만들었다.
 아이들은 엄마가 운보다는 능력이 있다고 믿었고, 난 능력보다는 운이 좋았다는 겸손의 미덕을 은근슬쩍 내 비치었다.
 결실의 과정을 보는 관점이 턱없이 달랐지만 굳이 아니라고 손 사레 칠만큼 솔직한 엄마는 아니었다.
 어리디 어린 내 아이가 수준이상의 상식을 가지고 있으면 '천재'라고 착각하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조그마한 손재주를 가진 엄마를 아이들은 'wonder woman'으로 착각한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감은 점점 떨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언제까지나 아이들이 생각하는 젊은 엄마는 아니라는 걸 아이들은 쉬이 수긍하려 들지 않는다.
 아이들이 언제까지나 품안의 자식인줄 착각하는 부모의 그 생각과 맞물려 있다고 하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 하다는 공허한 그 울림을 우리 스스로에게 던지는 화두로 삼았을 때
 솔직하고 막힘 없이 해명할 수 있는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 의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