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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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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큰 엄마


BY 蓮堂 2004-12-21

네 살 박이 조카 녀석이 지난여름에 다니던 유아원을 두어 달 쉰 적이 있었다.


천방지축인 이 녀석은 세 살 위인 제 형을 따라서 곧잘 다녔는데 감기로 며칠 쉬더니 유아원 다닌 기억을 아예 잊어 버렸는지 멀리서 유아원 차가 보여도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할 뿐 이었다.


평소에는 그 차와 비슷한 노란색 차 만 보여도 탈려고 발버둥치던 녀석이었는데......


그뿐만 아니고 살뜰이 안아주던 보조교사를 봐도 개 머루보듯 하는 양이 아이는 역시 아이였다.


하루종일 제 어미 품을 벗어나지 않고 집에서만 빈둥거리는 건달(?)노릇만 했다.


그래서 내가 붙혀 준 이름이 '백수'였다.


처음엔 백수라고 부르니까 그게 무슨 뜻인 줄 모르는 건 당연하지만 제 이름이 아니건 분명하므로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나 백수 아냐!!.......씨....."


이젠 제법 우리말에 들러붙는 토씨까지도 완벽하게 꿰어 맞추어서 대화할 정도로 발음이 또랑또랑했다.


아마 이름을 잘못 불러준 데 대한 반발이겠지만 제 어미 마저 백수라고 부르니까 모든 게 큰 엄마 탓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나만 보면 미리 백수 아니라고 바리케이트 치고 나오는걸 보면 그 별명에 불만이 꽤 많았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니까 별명이 본명이 되어 버렸다.


본명을 부르면 듣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별명을 부르면 잽싸게 대답하는 건 물론이고 반발하지도 않았고 거부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참으로 재미있고 내 스스로도 그 별명이 기발하다고 여겼는데.......


세상 일이 참 묘했다.


그 녀석은 이제 백수를 면하고 다시 유아원으로 돌아갔는데 하던 일을 접어버린 내가 백수가 되어 버린 거였다.


아무 생각 없이 그 조카녀석의 이름을 부르며 볼 살을 쥐고 흔들었다.


물론 이젠 본명을 불러주었다.


그런데......


"큰 엄마... 백수 큰 엄마.........나 쵸코파이 사줘."


아무렇지도 않게 손 벌리며 날 빤히 쳐다보는데 그 녀석은 그게 해로운 소리라는 건 알고 있는 듯 말을 뱉아 놓고 잽싸게 달아났다. .


멋지게 한방 먹었다.


옆에서 제 어미가 배를 잡고 웃는다


모자(母子)의 합동 작전에 내가 보기좋게 완패를 당한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