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중국 음식이 먹고 싶어서 쨤을 내어 아파트 단지안에 있는 중국집엘 갔다.
점심때가 훨씬 지나서 인지 식당안은 한가했는데 한쪽 구석에 안면있는 동네 할머님이
손녀랑 앉아 계시는게 눈에 띄었다.
"할머니, 식사하러 오셨어요?"
인사를 드리며 옆 식탁에 앉았다.
"아이구, 새댁도 점심 드시게?"
어릴적에 앓은 천연두 흉터가 온 얼굴을 덮고 계셨지만 항상 반색을 하며 던지는 웃음은 정겨웠다.
"영아도 왔구나?"
올해 초등학교 일학년인 영아는 부모님이 맞벌이를 해서 하교후에는 할머님이 돌보고 계신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 녀석이 내 인사도 안받고 계속 징징거리고 있었다.
"왜 그러니? 영아야....우리 영아 화 났구나?..그치"
아이는 아부섞인 내 물음에 대답도 않고 할머니는 자꾸 징징거리는 아이를 달래고 있었다.
"내가 잘못했다..영아야..그러니까 울지말고.... 이따가 할머니가 맛있는거 사줄께..."
할머니는 사뭇 애원을 하고 계셨다.
"싫어 할머니껀 안먹어...더러워...."
순간 난 머리끝에 고압의 전류가 흐르는것 같았다.
할머니는 민망해서 내 눈치를 보시더니 마지못해 해명을 하셨다.
"글쎄.. 이 녀석이 내가 먹던 컵으로 물을 주었더니 더럽다고........."
말끝을 흐리시는 눈빛이 흔들리고 계셨다.
아이는 계속해서 '더럽다'는 소리로 칭얼거렸다.
난 화가 났다.
이렇게 맹랑한 녀석이 있나.......
아이는 엄마가 미처 손질 해 주지 못한 탓인지 긴 머리가 마구 헝클린채로 얼굴을 반은 덮고 있었다.
난 기어 오르는 불덩이를 삭히며 아이에게 다가가서 헝클어진 머리를 가지런히 모아 쥐고
손가락으로 대충 빗어 넘기며 디스코머리로 땋아 주었다.
그리곤,,,,
"영아야. 왜 할머니가 더럽니?"
아이는 날 빤히 쳐다 보면서 기가막힌 말을 뱉는다.
"할머니는 더럽단말야.....내가 먹던 밥도 막 먹고, 손으로 그냥 내코도 막 풀어주고...
그리고 내가 오줌싸면 손으로 막 만지고......."
난 할말이 없었다.
그게 손주사랑이라는 거창한 피켓을 들이댄들 이 아이가 이해할 단계는 아닌것 같다.
아이는 보이는대로 해석하고 그 느낌대로 행동하는 단편적인 인격을 가진 철부지다.
할머니의 그 깊은 속을 헤아리기엔 이르다고 두둔할려니까 왜 그렇게 속이 상하는지...
아이의 칭얼거림은 자장면이 나올때까지 계속 되었고 할머니는 몇수저 드시다가 그냥 남기시는것 같았다.
그 속이 어찌 편할리 있을까.
나도 덩달이 입맛이 달아나 버렸다.
식당문을 할머니와 같이 나서면서 혼자서 앞서가는 아이의 손을 나꿔채다시피 했다.
아이는 내가 머리를 땋아준 빽으로 순순히 내손에 잡혀왔다.
"영아야........영아는 영아가 오줌싼거 영아손으로 만질수 있니?"
"안 만져요....더러워......"
아이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네 오줌인데 머가 더러워?"
"오줌인데 그럼 안 더러워요?"
"그럼 니가 오줌싼거 그냥 입고 있으면 어떨것 같애?"
"차겁고 냄새나요..더럽고요........"
""그럼.....어떻게 해야하는데?..누가 그옷 벗겨주니?"
"할머니가요........그래서 할머니는 더러워요"
"할머니가 벗겨주시고 새옷 갈아 입혀 주시지?,,,니가 추울까봐?"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아이를 빤히 쳐다봤다.
"그러면 할머니가 고맙지 왜 더럽니?......"
아이는 그래도 내 뜻을 이해 못하는지 끝내 할머니손 뿌리치고 혼자서 휘적 휘적 갔다.
어디서 뭐가 잘못 되었을까....
아이뒤를 따라가시는 할머니의 발걸음이 무척 무거워 보였고
아이에게 훈계하려다 미수에 그치고 만 내 심사도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다.
'이 맹랑한 녀석아,
네가 할머니의 그 사랑을 이해하고 사죄할때면 이미 이 세상에 안계실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