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동서의 얼굴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숫기가 적은 동서를 아버님 방에 안내하고 나는
차를 준비했다.
설날이 열흘정도 남았는데 미리 인사를 왔나 보다.
이번 설날에는 방역지침도 있지만 동서가 참석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미리 찾아오니 반갑고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이번에 조카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서 잘됐다는 축하인사를 건네며
여러가지 이야기 하던 중
동서는 본인의 마음을 조심스레 펼쳤다.
솔직히 명절에 와도 자기가 할 게 없어서, 어색했다고.
막내동서가 너무 잘하니까 자기가 할 게 없다는 말이 와 닿았다.
그랬다.
막내동서는 야무진 성격에 음식도 잘하고
설거지를 해도 깔끔하게 잘해서 더이상 손이 가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그게 둘째에게는 스트레스였나 보다.
친한 언니가 들려준 이야기 중에서
언니가 맏이인데 아랫동서들이 반찬을 다들 잘하니까 늘 시어머님께 비교대상이 되어 마음의 상처가 되어 명절이 되면 두려웠단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고 미리 연습하고 했던 세월이 몇 년인지 얼마 전 부터야 당당하게 인정받고 모두들 언니의 반찬이 맛있다는 말을 듣고 해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며 이젠 나물에
대해서는 언니를 좇아올 사람이 없단다.ㅎ
아!그럴 수 있겠구나.
나는 둘째의 말에 공감해주며 이제 나이도 있으니
편한 마음으로 살자고 도닥거렸다.
사람은 자기가 잘하고 싶은 것엔 관심이 많지만
동서같이 요리에 관심이 없고 주방 일에도 별관심이
없는 사람은 그시간이 힘들게다.
동서는 공부엔 관심이 많아 뒤늦게 대학원을 가서 아직도
학생들의 과외선생이다.
그러니까 우리집에 와서도 서방님이 늘 동서대신 앞장서서 도와주고
손빠른 막내에게 밀리다 보니 언제부터 자기는 시댁에 와도 물 위에
기름처럼 조화가 안되니 오고 싶지 않았겠지.
그래서 그렇게 서둘러 갔었구나
오늘처럼 그 어느것에도 구애 받지 않고 여유있게 이야기를
나누니 더 소중한 시간 같아 좋다.
동서는 따뜻해지는 계절에 또 오겠단다.
그래~
동서의 웃는 얼굴과 더불러 속마음을 알게되니 짠한마음에
도닥거려주니 서로가 좀더 가까워진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