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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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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말 (言)


BY 수련 2008-04-16

                                   말(言)을 잃어버리고.


                                         


- 어느 한순간에 -

 

 우리 뇌는 다른 장기에 비해 혈관 질환이 잘 생긴다. 여러 가지 뇌질환이 많지만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남편에게 예기치 않게 찾아온 뇌졸중이다. 뇌에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고 있는 혈관이 망가지면 뇌의 일부가 손상 되는데 이러한 뇌혈관 질환을 ‘뇌졸중’이라한다.

뇌의 혈관에 문제가 생겨 막히거나 터지면 그 혈관으로부터 산소를 공급받는 뇌의 일부가 손상된다. 뇌혈관이 터져 뇌가 손상하면 ‘뇌출혈’이라 하고, 혈관이 막혀 생기는 뇌손상을 ‘뇌경색’이라 한다. 불행하게도 뇌경색은 남편이 잠자리에 든 시간에 일어났고 아침에 이상한 증상을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6시간이 지나버렸다. 경색이 나타난 후 6시간 전에 병원에 도착하여 막힌 혈관을 뚫어주면 손상된 뇌세포를 어느 정도는 소생시킬 수 있지만 이미 10시간이 지나버렸다. 무리해서라도 수술을 시도하려 했으나 뇌세포의 소생가능성이 희박하였고, 막힌 혈관이 워낙 가늘어 위험부담이 뒤따랐다. 자칫 더 큰 장애가 올 수 있다기에 약물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뇌가 중요한지는 알았지만 정작 뇌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나는 남편의 발병으로 인해 뇌에 관한 지식이 담긴 여러 책자를 뒤적여 뇌의 상세한 사진을 들여다보고, 그 역할들을 하나하나 짚어보면서 우리 뇌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새삼스러이 알게 되었다.

뇌 안에 복잡하게 연결되어있는 약1000억 개의 신경세포는 우리의 삶과 직결되는 모든 기본적인 동작들을 조절하고 지시하고 명령하여, 우리는 뇌의 명령에 따라 모든 행동이 이루어지게 된다. 사고, 판단, 감정, 언어, 모든 몸의 움직임 등의 활동을 관리하며, 눈동자를 굴리고, 숨쉬고, 심지어 땀을 흘리고, 맥박이 뛰는 무의식중인 행위도 모두 뇌의 명령 하에 이루어지는 것이니 뇌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침이 아니다.

 뇌는 크게 대뇌, 소뇌, 뇌간으로 나뉘어져있는데 대뇌에는 언어중추가 있어 말하고, 이해하고, 쓰고, 읽는 기능을 수행케 하면서 전체적인 공간을 인식하는 기능을 한다. 소뇌는 대뇌의 아래쪽에 있으면서 우리 몸의 균형을 잡거나 미세한 운동을 조절하는 기능을 하고, 뇌간은 대뇌의 바닥 가운데부터 시작하여 아래로 내려가는 구조물로서 척수와 연결되는데 대뇌처럼 고등 기능을 담당하지는 않지만 눈동자의 움직임, 심장박동, 호흡 등 생명을 유지하는데 직접 관계하는 반사 중추들이 모여 있는 중요한 구조물이다. 뇌간에 손상이 오면 평생 누어서만 지내는 식물인간이 되거나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배우고 익힌 언어에 대한 기억은 대뇌의 신경회로를 이루어 간직되어있는데 남편은 대뇌의 가운데 부분을 지나가는 중뇌동맥의 왼쪽이 막힌 것이다. 산소공급이 중단되면서 언어를 관장하는 좌뇌의 중추신경세포가 사멸되는 바람에 실어증이 되었다. 

 말을 할 수도, 들을 수도, 글을 읽고 쓰는 기능, 즉 브로카 실어증이 되어 인간이 지닐 수 있는 모든 지적인 능력을 상실한 것이다. 한글만 잊어버린 것이 아니다. 고등학교시절에 학교를 오가며 영어사전을 거의 달달 외우다 시피 했다는 영어단어를 하나도 기억해내지 못하고, 업무상 많은 한문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이름조차도 알아보지 못했다. 중 고등학교 시절, 이웃에 살던 후배들이 학년이 바뀔 때마다 남편의 수학공책을 얻으려고 문 앞을 맴돌았다던 이야기도 먼 전설처럼 숫자 1~ 10 까지도 헤아리지 못하니 실로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어 ,어, 소리만 낼 뿐이었다. 결국 돌 지난 아이에게 말을 가르치듯이, 또 글을 가르치듯이 제로(0)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현실이 그저 암담하기만 했었다.

 언어뿐만이 아니라 기구를 사용하는 모든 기능 또한 다 잊어버려 리모컨을 조작하는 방법,

비데를 사용하는 법, 운전, 가위질, 심지어 형광등 켜는 방법도 몰라 일일이 하나하나 가르치다 보면 억장이 다 무너졌다. 유아들이 사용하는 단어카드를 사서  “사과, 배, 자동차, 사자...”그림과 글자를 매치시키면서 수십 번을 반복학습을 해야만 겨우 기억을 하다가도 며칠이 지나 다시 물으면 또 잊어버리는 것이다.

 평생을 공직에 몸을 담아 행정업무를 보던 남편이 하루아침에 언어에 관한 모든 것을 잃었을 때의 그 참담한 심정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육체노동을 하던 직업이었으면 잠간 휴식을 취하고 다시 직장으로 돌아갈 수 있지만, 펜대를 잡고 책상머리에서 일했던 남편은 인지와 판단력, 모든 지적인 능력을 상실하였으니 휴직 할 수밖에 없었다. 신경과 담당의사는 직장 복귀는 어려울 거라면서 냉정하게 퇴직을 권했지만 휴직계를 냈다. 30년 동안 몸담았던 직장의 퇴직만큼은 본인의 의사로, 당신이 직접 퇴직서를 쓰게 하고 싶었다. 아니 어쩌면 곧, 다시 옛날의 정상적인 남편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어리석은 기대감을 가지고 핑계로 퇴직을 미루었는지도 모른다.

  남편에게 무시로 찾아드는 좌절감은 때와 장소에 아랑 곳 없이 꺼억꺼억 삐져나오는 울음이 종내에는 통곡으로 변해버려 난감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결혼 후 남편이 저토록 험하게 운 적이 있었던가. 속절없는 통곡을 달래지도 못하고 안타깝게 지켜보며 속울음을 억지로 삼키면서 켁켁거렸던 아픈 시간들. 남편이 너무 가여워 명치끝이 아리다 못해 다 녹아내리는 세월의 질곡은 벌써 16개월째 접어들었다. 어두운 긴 시간의 터널을 지나오면서 항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신을 한없이 원망하면서도 절절하고 간절한 심정으로  매달리기도 했다.


 -시간과의 싸움 -

 

 뇌 신경세포가 죽으면 다시는 살아나지 못한다. 언어를 담당하는 A세포가 죽으면 그 주위에 있는 다른 B세포가 그 자리에 가서 역할을 대신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언어가 돌아올 때까지 많은 시간이 지나야 되며, 절대 조급한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주위의 여러 지인들의 충고를 새겨듣고 조급증을 자꾸 자꾸 누른다. 생활의 환경도 바꿀 겸 아이들이 사는 분당으로 임시 거처를 옮기고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통원치료를 다니고 있다.

중뇌동맥의 오른쪽이 막혔으면 한쪽 팔다리에 마비가 와서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겠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운동신경 쪽은 살짝 비껴가서 걷고 움직이는 데는 아무 이상이 없다.

단지 오른쪽 손가락 끝에 마비가 약간 있어서 병원에서 언어치료와 함께 작업치료실에서 손가락 소근육 치료를 한다. 작은 핀을 옮기기, 젓가락으로 콩 줍기. 카드 뒤집기. 등...

작업치료실에는 주로 뇌졸중으로 인한 편마비로 반신불수가 되어 오른쪽이나 왼쪽 수족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분들이 치료를 받는데 의외로 젊은 사람들이 많아 놀라웠다. 요즘은 뇌출혈 보다 뇌경색이 많아 대다수의 보험회사들이 보험대상 질병에서 뇌경색은 제외시킨걸 보면 나이에 상관없이 현대인에게 얼마나 많이 발생하는 병인지 알 수 있다.

대학병원의 작업치료실에서 남편도 나도 많은 위로를 받는다. 휠체어에서 일어서기만 할 수 있다면. 화장실만이라도 내 스스로 갈 수 있다면. 수저를 오른 손으로 잡을 수만 있다면...........

바람머리를 한 젊은 청년이 약간 더듬거리며 잘 알아듣지 못하는 남편에게 말을 건넨다.

“저 저는요. 아저씨처럼 육신이 성하고 차 차라리 말이 잘 안되었으면 조 좋겠어요”

알아들었나? 멋쩍은 웃음으로 손사래를 치는 남편. 속말을 내가 대신했다.

“무슨 말을.. 걷는 것이 좀 불편해도 말을 잘 했으면 좋으련만.”

그들의 부러움(?)에 도리어 위안을 얻게 되니 참 아이러니하다. 

의사인 조카의 말이 생각난다. “숙모! 조금만 더 밑으로 내려가 뇌간에 경색이 왔으면 삼촌은 아마 식물인간이 되었을 거예요. 그나마 신체에 마비가 없이 언어장애만 온 것이 얼마나 큰 다행인지 몰라요”

과연 ‘다행’일까.  ‘다행’과 ‘불행’의 낱말을 오가며 혼란스러워 했던 지난시간들을 잊어버리고 싶다. 화장실도 자신의 의지대로 가지 못하고, 수저도 들지 못하는 그 분들을 보면서 두 다리로 걸으며 내 손으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원망만 했던 하느님께 진정으로 감사기도를 드린다.

  고통과 시련을 겪으며 인고의 날들을 보내면서 이제 겨우 가족의 이름을 쓰고, 사물들의 이름을 하나 둘 외운다. 말을 이해하는 기능도 차츰 회복이 되어 70%정도는 알아듣지만 아직 당신이 하고자 하는 말은 두 음절 이상은 못한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노래는 잘한다. 의사 선생님이 대뇌의 오른쪽에는 음악기능이 있는데 거기는 손상을 입지 않았으니 노래를 자주 부르라고 했다. 아프기 전에도 워낙 내성적이라 노래방에 가서도 취기가 없으면 잘 부르지 않는데 맨 정신에 부르려니 얼마나 멋쩍을까. 궁리 끝에 음악치료실에 가서 노래를 부르게 했다. 리듬, 가락은 정확한데 가사는 반은 기억을 하고 반은 얼버무린다. 두 달 정도 지나니 세 곡 정도는 전체가사를 기억해내어 또렷하게 발음으로 노래를 부르는데 듣는 내가 다 놀랠 정도다. 노래를 자주 부르다 보면 어느 날 말문이 탁 터질 수도 있다니 괜한 기대도 해본다. 희망의 순간이 엿보인다.

 

분노- 좌절- 타협- 체념- 위로를 거치면서 生의 소중함을 깨달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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