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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산부 배려석에 임산부 여부를 감지하는 센서 설치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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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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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견례1


BY 수련 2006-01-11

12월 23일
아들이 내려왔다. 결혼하고 지금까지 동지에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팥죽을 끓였는데 올해는, 아니지 작년에는 끓이지 못했다. 집을 떠나 객지(?)생활을 하니 어수선하기도 하고 이웃집에서 가져온 팥죽 한 그릇으로 그 날을 넘겨버렸다. 애들이 내려오면 단팥죽이라도 끓여줄 참으로 찹쌀을 빻아 놓았는데 딸이 이틀 뒤에 온다는 바람에 맥이 풀려 손을 놓고 말았다. 우리 집 남자들은 여자 일을 도와주면 남자의 체면을 구긴다고 생각하는 조선시대 남자들이라 혼자 차지할 '새알 빚기'가 싫어 찹쌀가루를 꺼냈다가 도로 냉동실에 넣어버렸다.

저녁에 남편과 아들, 나하고 셋이서 횟집을 갔다. 아들놈이 회가 먹고싶단다. 회를 좋아하는 우리 가족들과는 달리 아들놈은 어릴 때부터 어류보다 육류음식을 좋아해서 휴일마다 시장에서 횟감을 사와 회를 떠놓으면, 그 옆에 불 판을 놓고 아들놈 혼자 돼지고기 삼겹살을 구워먹기도 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딸은 횟집아들에게 시집가고, 아들은 정육점 딸한테 장가가라고 했을 정도로 아이 둘이 식성이 정 반대였다. 그랬던 아들놈은 대학을 서울로 가고 일년쯤 지나고 부터 집에 내려오면 회가 제일 먹고싶었다며 걸신들린 아이처럼 입이 미어지도록 회를 상추에 싸서 먹었었다. 즐기지는 않아도 몇 점이라도 싱싱한 회를 먹던 기억이 되살아나는지.. 서울에서는 싱싱하지도 않을뿐더러 회가 비싸서 먹을 엄두도 못 낸다는 것이 아들놈의 핑계지만 휴일마다 먹었던 청정지역인 남쪽바다의 회 맛을 어찌 그립지 않으리오. 정신 없이 먹어대는 아들을 보니 나는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 자식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고 했던가. 고슴도치도 제 자식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는데 아무리 봐도 아들놈이 잘 났다. 저 아들놈이 성인이 되어 드디어 부모 곁을 떠나 배필을 만나 한 집안의 가장이 되는 나이가 되었구나. 다음 날 상견례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나는...

24일
남편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여보 전세가 너무 비싼데 저쪽더러 좀 보태라고 하면 안될까?"
"뭐? 절대 그런 소리하지마. 스스로 말하면 모를까 우리 쪽에서 먼저 말하지 말거래이"
피. 자존심은 있어 가지고..
약속시간이 다가오면서 괜히 마음이 안절부절하다. 미장원에 갔더니 웬 손님들이 많은지 30분은 기다리라고 한다. 조금있으니 앳띤 아가씨가 다가오더니 어떤 머리모양을 할건지 묻길래 알아서 멋지게 해보라고 했다.. 드라이기를 들고 한참을 머리를 만지더니 거울을 보란다,. 월간지를 보느라 거울을 안 보았더니 ...어머나 머리가 중간중간 치솟아있다. 펑크스타일인가? 내 나이가 몇인데.. 이 아가씨는 내가 어디 파티에 간다고 생각했나??
"옴마야. 머리가 왜이래요? 아들 상견례 하러 갈건데 점잖아 보여야지. 이건 아녀"
"어머. 그런 처음부터 그렇게 말씀을 안 하시고. 그런데 연세가 어떻게 되는데 벌써.."
"벌써고 뭐고 삐죽한 이 머리 좀 다시 집어넣고 얌전하게 좀 해봐요."
저쪽에서 주인이 이 아가씨에게 인상을 쓴다. 얼굴이 벌개져서 어쩔 줄 몰라하는 폼이 아직 시다인가보다. 내가 너무 심했나. 나도 딸이 있는데...
"아, 됐어요. 다시 보니 예쁘네요. "
8 천원을 얼른 건네고 서둘러 집으로 왔다.

소파에 누운 남편이 내 머리를 보고 놀린다.
"어이 그기 무슨 헤어스타일이고. 당신이 선보러 가나? 새가 집을 지었나?"
눈을 흘기고 거울을 다시 보니 진짜 웃긴다. 무슨 연속극인지 거기 나오는 박정수 헤어스타일과 비슷하긴 한데 나한테는 영 안 어울린다. 욕실에 들어가 물을 축여 머리를 빗고 드라이기로 다시 손질을 했다. 조금 나아 보인다.
'내 손이 보배지. 아이고 돈 아까워라.'
옷장을 열어서 뒤적거려도 입을 만한 옷이 마땅치가 않다. 그놈의 살빼기전쟁을 나름대로 하는데도 도무지 살이 빠지지 않는다. 점점 맞는 옷이 없어 원피스 쪽은 아예 쳐다보지도 못하겠다. 지난번에 서울역에서 기차시간을 기다리면서 역내에 있는 백화점에서 균일가(한 벌 8만원인데 꼭 횡재한 기분이었다.) 투피스를 샀는데 그때는 꼭 맞았지만 지금은?? 그래도 정장을 입어야 하는데. 에구머니나 너무 꼭 낀다. 단추를 채우니 단추 사이사이마다 삐죽이 벌어진다. 단추 중간마다 안쪽으로 작은 핀으로 꽂으니 좀 낫다.
'밥을 조금만 먹어야겠다. 호텔 한정식이라 밥값도 비싸 본전을 빼야하는데 ..그래도 오늘만큼은 식탐을 거두어야지, 안 그러면 숨도 제대로 못 쉬지'

아무리화장으로 변신해봤자 그 얼굴이 변하랴마는 안사돈(지금부터 이렇게 지칭함)보다는 젊어보이고 싶은 시엄니의 심술궂은 심사에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기다리다 지친 남편의 재촉에 아들놈까지 거든다. 빈 말인줄 뻔히 아는데 이놈이 하는 말,
"우리 옴마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쁩니다요. 늦으니 어서 가요"
소매를 잡아 끄는 바람에 거울에 미련을 남기고 돌아섰다.
"아. 잠깐만 기다려 한 가지 빠졌네... "
결혼 20주년 기념으로 남편에게 받은 8mm 비드 진주목걸이를 걸고 다시 거울을 보니 남편 말대로 아들 상견례가 아니라 내가 선보러 가는 것 같다. 예쁘다.하하하
(참고로 패물을 신혼때 도둑을 맞아 하나도 없다.)
'미래의 안 사돈보다 내가 더 젊어 보이겠지. 흠 흠.. ' 엉덩이를 삐죽거리며 남편 앞에서 한 바퀴 돌았더니 찰싹! 내 엉덩이를 한 대 때리며 착각은 자유라며 문을 나선다.
"에이..도대체 무슨 화장을 그리 오래 하노, 아무리 찍어발라도 호박꽃이 양귀비가 되지도 않구먼. 어디 미인대회 나가나? 배는 쑥 나와가지고..."

남편의 악담에도 아랑곳않고 엘리베이터의 안 거울속의 나는 만족한 웃음을 날리며 배에 힘을 잔뜩주어 밀어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