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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米家)네 이야기


BY 천성자 2006-09-08

 

노랗게 물든 들녘을 바라보며 농부님네들은 흐믓한 듯 연신 싱글벙글이다.

 

드디어 탈곡은 시작되고,동네에선 가을 행사가 이뤄진다.

 

여기저기서 탈곡기 돌아가는 소리...

 

노랗던 나락이 껍질을 벗고 나와 하얀이를 드러내고 있다.

 

사람들마다 들썩이는 어깨춤...얼굴마다 피어나는 웃음꽃.

 

대풍이야~~대풍이라는 어른들의 말씀에 아이들도 덩달아 시끌벅끌하다.

 

동네에서 탈곡기 소리가 거의 멀어져가고 수북히 쌓였던 볏짚들이

소여물로 하나씩 허물어져갈 즈음...

 

어느 집의 쌀 창고에서는

청년 넷에 딸 하나 그리고 부모님.

이렇게 쌀 가족 일곱식구가 옹기종기 모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너희들이 어릴때는 무엇을 이야기해도 알아듣지 못하고 그랬기에 말 하지 않았지만,이젠 너희들이 자라 어른들의 일을 해야할 나이가 되었으니 너희들에게 이야기를 하련다."

 

"우선 너희의 꿈을 들어보기로 하자"

 

"첫째인 미식이부터 이야기하렴"

 

"녜"

"저는 앞으로 쌀 그대로의 쌀밥이 되고 싶습니다. 쌀밥은 하얗고 뽀얀 모습을 그대로 드러낼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물론 다른 친구들과 섞이어 알록달록한 오곡밥이 되기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맛있는 쌀밥을 먹으며 사람들은 좋은 쌀이라고 칭찬을 할 것이며,아버지가 누구누구라며 우리집의 족보도 나오게 되잖아요.그런의미에서 전 우리집의 가문을 빛내고 싶습니다."

 

"그럼 이쁜 둘째 미량이 말해보렴"

"전 할머니 할아버지를 생각해보니 누룽지가 되고 싶습니다.밥을 먹고 난 바닥에 남는 노릇노릇하고 바삭바삭하며 부드러운 누룽지요.요즘은 저를 일부러 만드는 사람들이 많답니다.거기에 또 나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숭늉을 만들어 먹을 수 있기에 누룽지가 되고 싶습니다."

 

"음...그래?그 다음 셋째 미형이는?"

"전 떡국이 되고 싶습니다.밥도 좋고 누룽지도 좋지만 색다른 것이 되고 싶습니다.

떡국은 밥은 아니지만 음식이 될 수 있고 반찬과 간식이 될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합니다."

 

"오~~그렇기도 하지..그럼 넷째 미래는"

"전 떡이 되고 싶습니다.미형이 형님과 비슷하긴 하지만 전 하나의 것으로만 태어나고 싶거든요.추운 겨울 날 뭔가 먹고싶을때에 떡이 되어 그런 사람들에게 포만감을 주고 싶습니다.

떡은 또한 가짓수가 많아서 떡에 따라 형형색색으로 변할 수 있어서 제 성격과 아주 잘맞습니다."

 

"그럼 우리집 재롱둥이 다섯째 미미는?"

"전 죽이 되고 싶습니다.아파서 밥이나 떡,누룽지를 못드시는 환자들을 위해 내 몸이 으스러져 최대한 부드럽게 되는 죽이 되겠습니다.죽은 죽는것이 아니라 죽은 사람을 살리는 음식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니까요."

 

"그래 그래..역시 우리집 아이들은 다들 꿈이 있어 좋군.안그렇소?여보?"

옆에 앉아 있던 어머니도 즐거워 내내 흐믓한 표정을 짓고 있다.

 

"너희들이 내가 생각한만큼 보다 더 곱고 바르고 나름으로 멋지게 자라준것에 참으로 고맙단다. 허나 꿈이란건 무조건 꾼다고 이뤄지는건 아니란다.되고자 하는것을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함은 두말할 나위없으며,새로운 마음으로 늘 새롭게 바라는 시각을 가져야한단다.그저 남들이 하니까 따라가거나 남들이 하는 말에 솔깃해서 딸려가는건 희망이 아니라 놀이란다."

 

"첫째 미식아?네 이야기 잘 들었다"

"네 뜻이 참 고맙구나 가문을 빛낸다는 네 말에 내 가슴이 뜨거워졌단다.그러나 네가 가고자 하는 길이 있다면 그쪽도 생각해보렴 네가 너무 가문에 짓눌려서 네가 하고싶은것을 잃고 살지 않길 바란단다.네 마음은 내가 헤아리고도 남는단다.허나 네가 그렇게 생각하여도 네가 되고 싶다면 그리하도록 해라"

 

"둘째 미량이"

"네 고운 맘을 내가 익히 알지만 네 말을 듣고보니 참 이뿌구나.그 고운 맘 그대로간직하며 살도록 하고 누룽지로서의 삶이 좀은 고달플것이다.내가 무엇이 되고자 한다면 고통쯤은 각오를 해야한단다.고통 없이 즐거움만 있으리라는 안일한 생각을 갖고 있다가 고통을 맞이한다면 힘겹게 될 것이다.부디 고통을 이겨낼 줄 아는 딸이 되길 바란다."

 

"셋째 미형이"

"그래 너는 떡국이 되고 싶다고?"

"떡국은 하나의 음식이란다.그렇지만 단조로운 음식은 되지 말아라.혹여 단조롭기 때문에 잘못하면 허름해 보일수도 있으니 허름하지 않은 떡국이 되거라"

 

 

"넷째 미래 듣거라."

"그래 네 이야기 들으면서 다양한 생각을 갖고 있구나 싶어 좋구나.그런데 말이다 다양한것은 잘못하면 혼란스러울 수 있단다.네게는 감각이 필요하겠구나 미적감각..맛,색,모양,네겐 그 많은것이 필요하단다.감각을 잘 키워서 인정받는 떡이 되렴"

 

"다섯째 우리 막둥이"

"막내이기에 오히려 더 염려 되었건만 내가 생각지 못한것을 생각했구나.다시 태어날때도 고통은 따른단다. 태어날때의 기쁨만 생각지말고 태어나기 위해 감내해야함도 함께 생각하기 바란다.

 

"내 사랑하는 너희들과 이렇게 마주앉아 이야기 할 수 있다는게 참 고맙구 대견하구나."

"이제 새벽이 오면 너희들이 가고자 하는 곳으로 떠나거라"

"떠나는 길에 울지도 말며 가는길에 어려움이 있다해도 겁내거나 소란스럽게 하지마라"

"부디 우리집안의 이름을 걸고 부끄러움 없이 살길 바란다."

"새벽길을 떠나려면 고단할테니 일찍 잠자리에 들도록 해라."

 

방으로 아이들이 돌아간 후 어머니의 눈에선 눈물이 그렁인다.

아버지라고 그렇지 않겠나?아버지의 깊은 눈물은 가슴속에 잠재우고 있을뿐이지.

"여보 수고했소.아이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느라고"
"우리도 새벽이면 떠나야할테니 눈좀 붙입시다."

 

쌀이 가득한 창고에 정적이 감돈다.

잠든 아이들의 숨소리는 깊은 밤을 마셔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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