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난다는 말도 아니고
그렇다고 성질난다는 말도 아닌 '노엽다'란 말이 요즘 들어 마음을 자꾸 헤집고 든다.
가족들의 무심한 말에도
철지난 옷 정리에도
풀풀 날리우는 먼지에도
마음이 자꾸만 노여워진다.
집에 올 시간을 훌쩍 넘기고도 아이가 오지 않는 그 조바심 나는 시간을 헤아리며
무섬증 나는 세상을 향해 괜히 노여움이 들어가며
현관을 들어서는 아이에게 바짝 마른 입안에서 무심코 내뱉는 말이란 것이
내마음과는 정반대가 되어질때
정말 그 말이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은데
자꾸만 훌쩍이게 된다.
앞에서 바라보는 아이도 그 풀에 붉게 눈을 만들어 가고
차마 입밖으로는 드러내 놓고 하지 않았지만
'아,나이가 들어 가는구나'
갑자기 그날따라 추어탕이 왜 그렇게 먹고 싶었는지
혼자서 자리를 앉아서 먹기에는 자신도 없고
마땅히 떠오르는 이도 없기에
남편에게 전화를 하니 기다려라란 그 한마디에
훌쩍 뜀박질을 하는 시계만 쳐다보다가
허기진 모양새를 하고 있으려니
미안함을 담은 눈빛으로 남편은 그제야 들어서고
배가 고픈 서러움에 앞서
말로 표현 못할 그 무엇에 식은밥을 쓱쓱 비벼 먹으며
눈물반인 밥을 먹던 며칠 전
뒤에서 쩔쩔매던 남편의 눈을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그 날 저녁
그랬었다.
'내가 이렇게 나이가 드는 구나'
엄마가 그랬었지
"니도 내 나이 돼 봐라, 별기 다 노여울기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싱싱하게 소리칠것 같은 그 나이가
엄마가 족집게처럼 맞힌 그 나이가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노엽다'란 느낌이 들다니.
유모차에 세발 자전거에 젊은 새댁들이 엘레베이터를 꽉 채운 저녁 무렵
무심코 쓰레기 봉투를 들고 들어서다 보면
그들의 신선함과 생동감에 슬그머니 두 손을 뒤로 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저녁 찬거리 이야기부터
엊저녁 아이의 울음소리 등등
그네들은 참 이쁘기도 하지.
한여름의 땡볕도 마다하지 않고
먼거리의 슈퍼도 유모차 밀며 그렇게 다녔었는데
아이 크림도 마사지 크림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그 시절........
낡은 영사기의 줄쳐진 화면처럼 이제는 주인공도 희미해지고
자꾸만 좁아져 가는 마음 씀씀이에
마음의 생채기만 더 하여지고
가야할 결혼식도 찾아 보아야할 영안실이 하나 둘 늘어가는 그 언젠가의 그 날이 되고 보니
그리운 것은 그저 가슴에서 우는 소리를 내고
눈으로 보여 지는 것은 금방이라도 부서져 버릴 것만 같은 신기루로만 여겨진다.
"얼라도 아니면서 사춘기이가?"
엊저녁 남편의 툭박한 그 한마디가 쪼금은 슬프다는 것을 그 아자씨는 알기나 한지..당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