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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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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가는 소리


BY 다정 2004-06-29

짜증난다는 말도 아니고

그렇다고 성질난다는 말도 아닌 '노엽다'란 말이 요즘 들어 마음을 자꾸 헤집고 든다.

가족들의 무심한 말에도

철지난 옷 정리에도

풀풀 날리우는 먼지에도

마음이 자꾸만 노여워진다.

 

집에 올 시간을 훌쩍 넘기고도 아이가 오지 않는 그 조바심 나는 시간을 헤아리며

무섬증 나는 세상을 향해 괜히 노여움이 들어가며

현관을 들어서는 아이에게 바짝 마른 입안에서 무심코 내뱉는 말이란 것이

내마음과는 정반대가 되어질때

정말 그 말이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은데

자꾸만 훌쩍이게 된다.

앞에서 바라보는 아이도 그 풀에 붉게 눈을 만들어 가고

차마 입밖으로는 드러내 놓고 하지 않았지만

'아,나이가 들어 가는구나'

 

갑자기 그날따라 추어탕이 왜 그렇게 먹고 싶었는지

혼자서 자리를 앉아서 먹기에는 자신도 없고

마땅히 떠오르는 이도 없기에

남편에게 전화를 하니 기다려라란 그 한마디에

훌쩍 뜀박질을 하는 시계만 쳐다보다가

허기진 모양새를 하고 있으려니

미안함을 담은 눈빛으로 남편은 그제야 들어서고

배가 고픈 서러움에 앞서

말로 표현 못할 그 무엇에 식은밥을 쓱쓱 비벼 먹으며

눈물반인 밥을 먹던 며칠 전

뒤에서  쩔쩔매던 남편의 눈을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그 날 저녁

그랬었다.

'내가 이렇게 나이가 드는 구나'

 

엄마가 그랬었지

"니도 내 나이 돼 봐라, 별기 다 노여울기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싱싱하게 소리칠것 같은 그 나이가

엄마가 족집게처럼 맞힌 그 나이가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노엽다'란 느낌이 들다니.

 

유모차에 세발 자전거에 젊은 새댁들이 엘레베이터를 꽉 채운 저녁 무렵

무심코 쓰레기 봉투를 들고 들어서다 보면

그들의 신선함과 생동감에 슬그머니 두 손을 뒤로 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저녁 찬거리 이야기부터

엊저녁 아이의 울음소리 등등

그네들은 참 이쁘기도 하지.

한여름의 땡볕도 마다하지 않고

먼거리의 슈퍼도 유모차 밀며 그렇게 다녔었는데

아이 크림도 마사지 크림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그 시절........

 

낡은 영사기의 줄쳐진 화면처럼 이제는 주인공도 희미해지고

자꾸만 좁아져 가는 마음 씀씀이에

마음의 생채기만 더 하여지고

가야할 결혼식도 찾아 보아야할 영안실이 하나 둘 늘어가는 그 언젠가의 그 날이 되고 보니

그리운 것은 그저 가슴에서 우는 소리를 내고

눈으로 보여 지는 것은 금방이라도 부서져 버릴 것만 같은 신기루로만 여겨진다.

 

"얼라도 아니면서 사춘기이가?"

엊저녁 남편의 툭박한 그 한마디가 쪼금은 슬프다는 것을 그 아자씨는 알기나 한지..당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