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기가 멈췄다.
이것 저것 아무리 눌러봐도 먹통이다.
참으로 오랜세월 우리와 함께 한 선풍기다.
우리를 위해 그동안 수고한 선풍기와 헤어질 시간이 되었나 보다.
어쩔 수 없이 선풍기를 주문해야만 하는데 남편과
나의 의견이 달랐다.
난 좀 가격이 있어도 디자인과 성능을 보는 편인데 남편은 경제적 가격과 성능을 본다.
내가 양보해서 남편이 원하는 선풍기를 주문하라고 했다.
다음 날 출근하는 남편이 선풍기가 배달되면 한 번 조립을 해 보란다.
오잉? 내가? 할 수 있으려나...
우리집 부자는 둘 다 공돌이라 난 기계를 만질 일도 없었고
당연히 모든 기계와 관련된 제품은 그들의 몫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남편이 툭하고 던진 미션에 나또한
못 할거도 없다는 식으로 선풍기를 기다렸다.
기다리던 선풍기는 다음 날에 큰박스에 고이 배달되어 현관 앞에 안착되었다.
선풍기 조립을 위해 아들방의 선풍기를 일단 틀고
박스 안에 있는 해체된 선풍기를 조심스레 꺼냈다.
간단한 설명서를 눈으로 휘리릭 읽으며 자신감 넘치게 선풍기를 만지는데 어라 처음부터 내뜻대로 안 되는게 불길한 예감이 돈다.
선풍기 받침에 몸체를 꽂았는데 기우뚱 거린다.
이러면 안되는데...
다시 설명서를 읽고 그제서야 지지대를 연결시켜주는 동그라미 제품이 빠졌다는것을 알게 되었다.
지지대에 맞추고 선풍기 뒤판과 날개 앞판을
연결했는데 뭔가 석연치 않다.
다시한번 설명서를 찬찬히 보는데 글씨가 너무 작고 눈이 아파 일단 휴식모드를 취하고
다시 보니 선명한 칼라의 설명서가 뒤에 숨어 있을 줄이야.
눈이 시원해졌다.
역시 잘보이니 하나하나 퍼즐 맞추듯 잘 맞취졌다.
리모콘의 건전지까지 확인하고 선풍기 전기선을 콘센트에 꽂고 스위치를 눌러보니 바람이 시원하게 무음으로 잘돌아 간다.
와우~~ 해냈다.
올림픽선수가 메달을 거머쥔 것 처럼 기뻤다.
어설픈 성격이라 못 할줄 알았는데 시도해보니
되네.
고 정주영 회장의 말이 생각난다.
해 봤냐구?
역시 뭐든 해 보고 못 한다는 소리를 하는게 맞다.
기분이 좋아졌다.
괜시리 뿌듯한 마음에
수고한 나를 위해 시원한 음료를 냉장고에서 꺼냈다.
마가렛!
오늘 한 건 제대로 했어~~
퇴근한 남편이 선풍기를 보더니 기특하다는 눈빛으로 날 쳐다보며 수고했단다.
해 보니까 별거 아니던데..
그런데...
자기야!
여기 나사 하나가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