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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편 - 라면 먹는 강아지를 본적이 있는가?(2)


BY 김연 2003-09-24

7 편 - 라면 먹는 강아지를 본적이 있는가?(2)

주인남자의 입이 베시시 벌어져서 누우런 이가 다 보이기를 한시간 남짓 하더니

드디어 맘을 잡고 손님을 맞이하기로 작정을 한건지 고객 명단으로 다시 화면을 넘겨

한참을 심각한 얼굴로 들여다 본다.

고객명단에 나온 손님 이름을 가지고 이름풀이라도 하는건지 한참이나 들여다 보더니

고개를 갸우뚱하구서 다시 담배 하나를 가지고 문밖에 나가 쭈그리고 앉아서 지나가는

여인네 감상하기를 즐긴다.

아마 원하는 상대하고 이야기를 끝낸 모양인듯 하다.

뭘까. 저 오묘한 표정은?

주인남자의 얼굴에 내가 지금까지 별로 본 기억이 없는 오묘한 표정이 떠오른다.

암튼 재밌는 일이 일어나긴 하겠구나 짐작만 할뿐이다.

지금까지 개로서는 짧지 않은 세월을 살아오면서 인간들을 보면서 생각한 것들이  딱딱

들어 맞을 때가 종종있다는 사실은 아마도 인간으로서는 썩 기분 좋을 일은 아니지만...

 

오후들어서 남자는 유난히 가게안을 방황하며 서성대는가 싶더니 거울을 보고 머리를 빗고

옷 매무새를 한번 점검한 뒤 나를 안에다 가두어 놓고 가게문을 밖에서 걸어잠그고 예의 그 메모지 <사정상 잠깐 문을 닫습니다.> 를 붙여놓고서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는 몇번 나도 데려가 달라고 짖어 봤지만 곧 소용없음을 알고서 잠잠히 주인남자가 사라지는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발걸음도 가벼운게 주인남자에게 나쁜일은 아닌것 같지만

영 느낌이 좋지는 않다. 어째 불안한 것이다.

개가 무슨 건방지게 느낌 운운 하느냐고 따지신다면 할말이 없지만 간혹 오래살다보면

나같이 영리하고 특별한 재능을 가진 개를 만나는 일도 있을 것이니 기다려 보시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그런 특별한 개를 만나더라도 재능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인간만이

알아 볼 수 있을테지만 ...

 

남자는 한시간도 못되서 돌아와 문을 다시 열었는데 그 때의 표정이란 내가 보아온 것중

백미라, 음.. 얼굴이 허옇게 되기도 하고 목언저리까지 벌겋게 되기도 하고 연신 줄담배를

피우다가 손님이 좀 나가서 피우라 핀잔을 주자 그제서야 엉거주춤 엉덩이를 일으켜 문 밖으로 나가서 멍해져서는 담배가 손가락에서 다 타는지도 모르고 정신을 빼고 있었다.

도대체 뭔일을 하고 왔길래 저렇게 바보가 되어서 돌아왔누..?

악마하고 영혼을 파는 거래라도 하고 왔나?

그 댓가로 평생 이쁘고 섹시한 여자하고 살게해준다고 했나? 히히히

흠...흠.. 농담할 때가 아니다.

정말 심각한 표정이다. 미우니 고우니, 잘났니 못났니 해도 내 주인임에 틀림없는데 저 남자가 저렇괴 괴로운 표정으로 코털을 뽑고 있으니 내속도 편할리가 만무하다.

 

 

....여느때와는 조금 다른 이집분이기에 나는 영 적응이 안되고 있다.

저녁 무렵이면 비디오샾에는 시간제 아르바이트 대학생이 나오는데 이 녀석은 말도 별로

없고 별로 친절하지는 않지만 썩 버릇이 없지도 않아서 아슬아슬하게 목이 달아나는 것을

피해 다달이 정해진 액수의 월급을 용케 받아가고 있다.

주인남자는 이녀석을 마음에 썩 내켜 하지는 않지만 수다스럽지 않아서 어디가서 자신에

대한 공연한 말을 꺼내지 않으리란 믿음 하나로 아직까지 월급을 기꺼이 지불하고 있고

또 주인의 아내는 성실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점수를 아주 후하게 쳐주고 있는 것이다.

한 사람에 대한 평가가 이렇게 다를 수가 있단 말인가?

나.. 나는 이 녀석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다.

재미도 없을 뿐더러, 개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그야말로 나에대해 먼저 무관심으로

대응해온게 녀석이라서 내가 굳이 흥미를 일으키려 노력할 하등의 이유가 없던 것이다.

암튼... 녀석이 가게로 출근해서 안녕하세요, 하고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난후 주인남자는

나를 껴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것부터가 전에 없었던 일이다.

주인남자는 보통 문닫을 시간까지 가게에 남아서 그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챗팅을 하는데

오늘은 그 황금시간을 반납하고 집으로 들어온것이다.

집에 들어오자 목젖을 자극하는 고소한 기름내가 진동을 했다.

이런 냄새가 나면 본능적으로 주인에게 과잉애교를 부리며 말을 잘 들어야 함을 안다.

그래야 콩고물이라도 얻어 먹을 수 있음을 오랜 시간 인간의 집에 살면서 터득한 것이다.

 

" 어서와~ 배고프지? 손씻고 와 밥 먹자"

주인여자는 어느새 퇴근을 해서 이런 음식을 차려놓은걸까?

난 머리를 굴려본다. 모르겠다. 조퇴를 했나?

거실에 차려진 상에는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 화려한 음식이 가득하다.

아. ..아무렴 어떤가. 나에게는 행복한 날이 될것이 틀림없는 것을..

남자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시키는대로 손을 씻고 상 앞에 앉고 어색하게 둘은 수저를 들고

약속이나 한듯이 찌게를 한수저 떠서 입으로 가져간다.

" 꽃게야. 시원하지?"

" 응, 맛있네"

남자는 대꾸를 하고 맛있다하던 꽃게찌게가 아닌 김치를 한점 집는다.

한동안 둘은 말 없이 의무감에 시달리듯 젓가락을 사용해서 반찬을 집어 먹고 숟가락을 사용해서 밥을 떠 먹었다.

주인남자는 가끔 나에게도 고기 반찬을 한점씩 집어 주는걸 잊지 않았다.

여자는 내게 결코 자기들 반찬을 집어 주는일이 없다. 그저 사료만 줄뿐..

하지만 나도 인간의 반찬을 더 좋아하는걸 주인 여자도 알기는 한다. 사료가 맛이 영 없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갖은걸 다 넣고 맛을 내는 인간의 찬만 하리오.

내가 먹는 사료가 걸인의 찬이라면 인간의 밥상은 왕후의 만찬이라해도 과언이 아닐진대..

 

거실에는 티비 소리만 윙윙 커졌다.

여자가 치마 소리를 사라락 내면서 일어서더니 소주를 한병 가지고 남자에게 권했다.

꼴록꼴록~~ 소주가 병에서 나와 조그만 잔으로 들어간다.

이제 바야흐로 뭔가 일이 벌어질 타임이라는 걸 알리는 소주인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인간들은 무슨 심각한 말을 해야 할 때는 항상 알콜을 이용하는 영민함을

발휘하지 않는가 말이다.

그점에 역시 나는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우리 개들로서는 그저 물어뜯고 싸워서 일을 해결하는 방법 밖에 알지 못하기에... 이런 평화스런 방법을 구사하는 인간을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여자가 언제 꺼냈는지 누런 서류봉투 하나를 상으로 올려 놓는다.

" ...이혼 서류야.. 더이상 이대로는 의미가 없단거 우리 잘 알고 잖아. 내가 먼저 용기를 낸것 뿐이야. 내가 안하면 언젠가 당신이 할 말이고.. 내가 용기가 더 있다구 해야하나? "

"...."

" ..바람같은건.. 아무래도 좋아. 처음엔 나도 미칠 것 같았지. 하지만 몇번 겪고 나니까 이름뿐인 부부로 사는데 익숙해져 가드라.. 당신은 당신의 바람을 즐기고 나는 모른척 사는거..

하지만 재민이가 있잖아.. 재민이 한테 이렇게 사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어,

가끔 만나는 아빠라도 존경할 만한 아빠를 만들어 주고 싶어. 평생 아빠에게 존경심을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사람으로 커가게 내버려둘 수 없었어."

" 여보...그게..그게.."

남자는 입을 떼서 우물우물 했지만 여보라는 말 이외에는 제대로 된 단어를 구사하지 못했다. 평소에는 말을 청산유수로 잘 하면서 , 늘 마누라에게 유치원 애들 가르치듯 훈계를 입에 달고 살면서 오늘은 영 역할이 바뀐것이다.

 

" 내가 서류는 다 썼으니까 당신은 도장만 찍으면 되구, 그리고 이집은 팔려고 내놨더니 너무 가격을 후려치는 바람에 그냥 내가 당신한테 반액을 주고 사는걸로 했어.

이집이 2억 5천이 좀 넘어가는데 거기 대출이 아직 5천 남았잖아. 그거는 우리둘이 다 책임이 있으니까 내가 당신한테 결국 1억만 주면 되는건데, 당신이 나 위자료도 줘야하고 또 재민이 키우는데 돈도 자기가 줘야 하니까 1억에서 나 위자료로 딱 5천만 받는걸로 치자구.

소송하면 그거보다는 더 받겠지만 이마당에 내가 욕심을 내서 뭐하겠어. 재민이 양육비는 일단 3천만 내가 받을께.  애 키우는데 대학까지 보내려면 그거 보다는 훨씬 더들겠지만 .. 뭐 당신도 살아야하고.

우선 먹고자고 할 방이나 알아봐..

참... 가게주인이 전화했드라. 가게 세 올려달라고 ..아님 빼달라니까 그건 당신이 알아서 해..

다 된건가? 휴... 나도..이혼같은거 내가 하게 될줄은 몰랐어...

하지만 이젠 더 이상 살 수 없지 않겠어?  챗인가 뭔가 그거 하는것도 알고 있었지만 그냥 뒀어.. 하지만 내동생한테 들켜서 걸린걸 이제 더 살면 우리가 뭐가 되겠어..

그냥 핑계김에 서로 갈 길을 가는게 좋아... 당신도 이의 없지?"

남자는 아무소리 못하고 눈을 티비 화면에 맞추고 있는데 티비를 보는건지 어쩌는건지 ..

아까부터 티비는 광고방송이 나오고 있는데 평소의 남자 행동으로 보건데...광고만 나오면 잽싸게 리모콘을 이용해서 다른 채널로 돌린다... 이건 정상은 아니다.

 

 거의 손을 대지  못한  화려하게 차려진 만찬의 저녁이 차곡차곡 그릇에 담겨 냉장고로 들어가고  남자는 거푸 소주잔만 비우고 여자는 상을  매우 침착한 태도로 깨끗이 치우고 나서 샤워를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이쯤 되면 나는 헷갈린다.

보아하니 남자는 곧 이  집에서 나가야 할 처지인 것이다.

이집 남자가 나를  좋아하는 이유가 자기 마누라는 자기맘을 몰라준다는 것, 즉 개인 나보다도 자기 비위를 맞출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었는데 나는 이집 남자가 여자보다 맘에 들어서

비위를 맞추고 아양을 떤것은 아니다. 누가 이집의 강자인가를 나 나름대로 파악하고 헤게모니가 누구에게 있는가를 따졌을 뿐이다.- 개 주제에 헤게모니란 단어를 쓰는게 비위에 안맞을 분들도 있겠지만, 나는 좀 특별한 개라는 것을 다시 한번 고려해 주시길 바란다.-

 

그런데 이게 뭔가... 남자를 따른 댓가가 이것이란 말인가.

이제 여자에게 꼬리치며 나를 이뻐해달라고 비굴하게 행동하며 살아야 한단 말인가?

남자는 내쫓더라도 나만은 여기에 살게 해달라고 해야 한단 말인가.

 

아무렴 어떤가.

저 남자도 속으로는 어떻게든 빌어서 이집에서 붙어 살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 만나기로한 챗팅상대가 처제일 줄은 꿈에도 모르고 룰루거리며 발걸음도 가볍게 나갔다가  작정을 하고 나온 처제에게 아무말도 못하고 돌아오면서 이런 결과가 오리라 예상도 못한 남자가 바보 아닌가 말이다.

마누라가 이혼에 관해 그동안 얼마나 심각하게 고민하는지 알려하지도 않은 댓가를 돈으로

치룰수 있다면 다행이 아닌가. 그나마 인정많은 마누라 덕에 돈 2000만원은 건지지 않았나.

결혼 생활 몇년만에 2000만원 건졌으니 다행이라 해야하나..?

 

밤이 새벽으로 옅어질 무렵 남자는 살며시 주방으로 가서 냄비에 불을 켜고 부시럭부식럭 소리를 최대한으로 죽이며 라면을 끓였다. 그리고 주방 식탁에 앉아서 김치도 없는 라면을 후후 불면서 먹고 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나의 앞날을 보는것 같아서 괴롭기 짝이 없다.

앞으로 저 남자와.. 라면을 나누어 먹으며 살아야 할까..

 

인간을 잘 못본 댓가가 이렇게 클 줄이야..

늙으막에 라면 먹는 개라고 어쩌면 티비에 나오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느니 내일 아침에는 여자에게 꼬리를 한번 흔들어 보는 용기를 내어도 좋겠다.

이왕 이렇게 된일.. 더 나빠질일이 없으니 개 답게 꼬리를 한번 흔들어 보자.

저 남자... 라면 먹는 저남자..

흔들 꼬리가 없어서 불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