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세상일이란건 이런건가보다.
요즘의 내 생활이
파란 가을 하늘에 한조각 구름마냥 둥실 둥실 떠다니듯 순탄하기만 했는데
그 행복을 누리면서도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생각했는데
역시나 해답마냥 이런 상황이 되었다.
토요일 남편 생일이랑 친구 생일이랑 하루 차이라
두집 일박이일 가을 여행을 계획하고
콘도도 예약하고 나들이 준비를 차근차근하고 있던차
친정엄마한테 콘도 카드도 받을겸해서 엄마를 만나 맛있는 점심을 먹고
이것 저것 친정가서 챙길것이 있어 친정까지 내친 걸음을 했다.
추석때 보고 한달만에 만난 엄마 얼굴이 환해보여서 마음이 너무 좋았다.
울엄마 위암 수술하시고 4년째.
초기에 발견하셔서 위 완전절제를 하시고 몇년 적응기간 동안 고생도 하셨는데
이젠 얼굴이 좋아지시니 맘이 놓였다.
엄마와 기분 좋은 오후를 보내고 집에 오려고 마을버스를 기다리는데
시험보고 일찍 집에 와있던 큰녀석이 전화를 했다.
"엄마 응암동 할머니 오셨어요."
시어머님이 집에 오신거다.
당신께서는 아들 생일 챙기신다고 고기랑 미역이랑 과일 사가지고 오셨나보다.
아침에 분명 안오신다고 전화까지 하시고서는 갑자기 행차를 하시니
맘이 급해 택시를 타고 쏜살같이 집에 도착했다.
집에 와보니 어머니 얼굴에 못마땅함이 가득하다.
그도 그럴것이 우리집 꼴이 꼴이 아니니까...
오래된 옛날집.
그것도 주인없는 안채가 무너져가는 형편이다보니
게으른 며느리 잘됐다 싶어 청소도 대강하고 살고
거기다 큰아이가 어쩌다 뛰어들어가면서 신발을 뒤집어 벗어놓고 들어갔었는지
신발 뒤집어 벗으면 집안이 되는일이 없다며 뭘 가르쳤냐고 역정을 내신다.
공부만 시키면 다냐고 갑자기 소리 높여 말씀하시는데
그냥 죄송하다고 잘 가르치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나도 내 아이들 가르치면서 잘못된것은 바로잡고 나무랄것은 나무라며 키우는데
어머니의 역정은 계속 이어졌다.
며느리가 집에 있어야 하는데 밖에 있었다는 것도 못마땅하셨고
집안 풍경도 못마땅하셨고
당신 손주가 한 사소한 일 한가지도 그냥 넘어가지 않으셨다.
'우리 어머니 이런분이 아니셨는데 왜 이러실까' 하는 생각으로 그냥 편하게
"어머니 친정 엄마가 아범 생일이라고 다녀가라고 해서 다녀왔어요."했는데
내가 가져온 쇼핑백엔 남편 선물이 아닌 엄마가 준 구두며 옷이 담겨진것이 못마땅 하셨을까?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화나신 어머니를 달래려고 애써 이 얘기 저 얘기를 한다.
"아범 열심히 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아이들 다들 착하고 잘 크지요?"
"저 이제 다시 출근 할꺼에요."
조금 풀리신듯해서 맘이 놓였다.
가시는 어머님께 이쁜 호박 두개를 따다 쇼핑백에 넣어드리고 어머니를 배웅했다.
그날따라 동네는 수도 공사를 해서 김치 담으려고 배추 넉단을 사놓고도 손놓고 있을수 밖에 없었다.
남편은 어머니 계실때 전화를 해서는 상갓집 갈꺼니까 준비를 해달라고 했다.
상가가 먼곳이라 친구들이랑 모여서 간다고 집에서 몇시간을 있었는데
남편 가고 얼마 안있어 드디어 내 가슴에 멍드는 일이 생겼다.
전화벨이 울렸다.
술에 취하신 어머니 목소리.
다짜고짜 소리를 지르시고 아까 하시던 말씀을 또 하신다.
그게 그렇게도 맘에 걸리셨던 일일까?
내가 못마땅하시다고 하시는 목소리에 내 온몸은 덜덜 떨려온다.
"네 어머니 잘못했어요. 안그럴께요."
수없이 대답을 했다.
그래도 다시 원점이다.
어머니 다시 시작하신다.
거의 한시간이 흘렀다.
서러운 눈물이 한없이 흘러나온다.
이젠 왜 우냐고 소리를 지르신다.
울린 사람이 왜 우냐고 하는데 무슨말을 해야할까?
말끝에 하시는 말씀. 아범한텐 얘기하지 마라....
잠시 잠잠하더니 전화가 끊어졌다.
다시 오는 전화를 받을 자신이 없어서 전화선을 뺐다. 핸드폰도 껐다.
한시간뒤 다시 전화를 연결했다.
전화가 왔다.
시댁이다.
어머니 우리집 가신다고 나가셨다고 혹시 오시거든 그냥 참으라고 하신다.
그럼 어쩌겠는가. 참아야지. 또 참아야지.
잠시후 "어멈아" 하고 부르시는 소리가 들린다.
아무일도 없던것처럼은 안됐지만 그래도 "어머니 어떻게 오셨어요."
"전화를 안 받아서 니가 도망가서 안 받나하고 놀래서 왔다. 너 봤으니까 이제 갈란다."
'어머니 그럴것을 왜 그러셨어요.' 입안에서 뱅뱅 돈다.
주무시고 가시라고 했지만 그래도 가신다고 하셔서 택시를 불러서 보내드렸다.
그리고는 멍한 정신이 되어 이게 꿈이였나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마무리 될줄 알았다.
남편은 상갓집에서 밤을 새는지 새벽녁 한통화 오고 소식이 없었다.
어머니 부탁대로 남편에겐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다.
아침에 일찌감치 일어나 배추를 씻었다.
전화가 왔다.
어머니셨다.
"아범 국은 끓여줬니?"
'날 못 믿으시는건가? 아마도 당신 아들 목소리 한번 듣고 싶어서 하신게지' 하면서도
그 노파심마저 싫었다.
그리고는 아직 안왔다는 소리에 어제일 섭섭하게 생각지 말라며
다시 또 그 이야기들을 시작하신다.
정말 아침까지 이어지니 나도 참아내기가 힘들어졌다.
그래도 끝까지 잘 참고 전화를 끊었다.
아이들 학교 보내고 배추속을 넣는데 친정 엄마께서 전화를 하셨다.
사위 안부를 물으시고는 조심스레 무슨일 있냐고 물으신다.
시어머님이 엄마한테 전화를 하신거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내가 뭘 어쨌다고 우리 엄마까지 걱정하시게 하는건지 전화기를 붙잡고 엉엉 울었다.
그러지 말아야 했는데.... 엄마까지 속상하게 한것이 너무 맘 아팠다.
무슨 큰일이 있었던것도 아니고 잘못된것도 없는데 도대체 왜 그러시는지 알수가 없었다.
'정말 당신 아들이 날 호강이라도 시키면 우리 어머니 나에게 어떻게 하실까'
상상조차도 두렵다.
함께 떠나기로 계획된 여행이 아니었다면 결코 떠나지 않았을것이다.
내 속에 화를 가득담고 정작 토해내야 할 사람에게 표시조차 내지 않고 있으려니
가슴속이 불이난다. 머리속이 텅비어 아무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다.
친구가 나를 달랜다.
동해바다가서 속상한거 다 던져버리고 오자고...
여행을 가면서 나땜에 다른 사람(친구 내외) 걱정 시키고 싶지 않아
되도록 내색 안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친구네와는 첨하는 여행이었고 기분 좋은 여행으로 남겨주고 싶었으니까...
물론 남편에게도 .... (어머니 부탁 때문이었으니까...더 큰 화를 만들고 싶지 않았으니까...)
아이들은 밤바다에서 폭죽 놀이도 하고 맛있는 회로 여행의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남편들을 재우고 친구와 바다 바람 맞으며 밤산책을 했다.
매일 보는 사이인데도 우리의 대화는 끝이 나지 않았다.
그래도 억지로 잠을 청하기로 했다.
아침이다.
한방울씩 빗방울이 뿌린다.
집에 있었다면 이 비가 아무 지장도 없을터였겠지만
이미 예고된 비였어도 반갑지 않았다.
강릉에선 초당두부를 먹어야한다고 아침은 전통있다는 식당을 찾아 맛있게 먹었다.
전통만큼이나 가격도 만만치 않았지만 그래도 잘 먹은것으로 기분좋게 생각했다.
어디라고 딱 정하지 않고 해안 도로를 따라 쭉 갔다.
작은 포구에 들려 불가사리를 잡아서 친구네 아이들을 주니
초등학생인 두녀석 신기해하며 좋아한다.
하늘에 별대신 바다에 별을 잡아온거란 남편말에 다들 한바탕 웃었다.
가다 길이 막히면 한산한 곳을 찾아 차를 달리니 어느새 인제로 왔다.
인제 가면 언제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 그 말이 실감나도록 첩첩 산중에 부대들이 있었다.
산은 온통 울긋 불긋 단풍이 든것이 가을 한가운데 와있슴을 실감케한다.
고냉지 배추밭은 파란것이 식탁에 올리면 좋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중간 중간 휴게소에 들려 아이들 간식을 챙겨주고는
우린 마지막 코스로 춘천 닭갈비를 먹자며 춘천을 향했다.
식도락가인 친구네는 이번에도 전통있는곳을 찾아가자해서 한곳을 물색해서 들어갔다.
맛있고 푸짐한 식사로 배를 채우며 우리는 여행길 마무리에 들어갔다.
비가 와서 직접 눈으로 느끼기 보다는 차창밖으로 보며 지나친것이 아쉬었지만
아이들은 그래도 온가족 나들이가 나쁘지 않았던것 같다.
아마도 맛있는거 많이 먹었던 여행으로 기억할것 같다.
집에 돌아오는길 내내 잠이 들어왔는데
집에 오자마자 바로 꿈나라로 가버렸다.
차만 타고 왔는데도 그것도 고생이었는지 많이 피곤하다.
가만히 앉아서 온 나도 그럴진데 정작 운전했던 사람들은 거뜬하단다.
친구말대로 근심 걱정을 다 버리고 왔어야 했는데
미련한 내맘은 그러지 못하고 있다.
전화벨이 울리면 깜짝 깜짝 경기를 한다.
다시 또 그런 상황을 맞는다면 잘 참아낼 자신이 없다.
남이라면 안 보고 살면 그만이지만 그럴수도 없는 상황이란것이 날 한없이 슬프게 한다.
어떤님의 답글에 우리 시어머니는 친정 엄마보다 더 좋다고 했었는데
그러던 분의 또 다른 모습에 난 지금 절망했다.
'어머니, 예전의 어머니 모습으로 돌아가 주세요.
그저 바라봐 주시던 그때의 어머니로 돌아가 주시면 안되나요....'
오직 이 말만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