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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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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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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속으로(15부)


BY 로렐라이 2003-10-30

  15부

 

  아침 햇살이 창문너머로 넘실거린다.

  이미 앙상하게 말라버린 나뭇가지들... 내 마음도 저렇게 허허벌판을 만들어 놓고 있는 듯 하다. 새벽녘에 내린 서리로 온 대지가 하얗게 덮여 있었다.

  따르릉...

  아직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점화벨이 온 방안을 울린다.

  "여보세요..."

  "정은이?"

  "아..."

  이 민주였다. 희비가 엇갈리는 그런 상황들이 계속해서 전개되고 있다.

  그래... 아직 결말이 나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10년이란 세월을 쉽게 놓아버리지도, 무시해 버리지도 못하고 있다.

  "정은아, 오늘 오후에 좀 만나자. 할말도 있고..."

  거절할 마땅한 이유도 없었고... 아니, 이 민주 앞에서 나는 너무나 연약한 존재가 되어버리고 만다. 안된다고 말할 수도 있었겠지만... 안 우석은 내가 그렇게 해주길 바라겠지만...그러나 쉽게, 결코 쉽게 치부해 버릴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

 

  언제나 처럼 이 민주는 나보다 약속장소에 일찍 나와 있었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그는 손을 들어 자신의 위치를 피력했고 나는 안보이는 끊에 이끌려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어서와"

  이미 그는 차한잔을 시켜놓고 있었다.

  "약간 일찍 왔어. 생각할 것도 많고 해서... 주문해라."

  "코코아... 주세요"

  이 민주의 모습은 여유로와 보였다. 대단히 태연스러워 보인다. 아무런 근심도 없어보이는 얼굴이다. 물론 속마음은 그렇지 않겠지만...

  "그래, 잘 지냈고?"

  "네. 오빠도 보기 좋으시네요."

  우리는 처음 대면한 사람들모냥 어색한 인사치레로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눈치임에 틀림없지만 선뜻 얘기를 끄집어 내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 우석이랑은..."

  결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아직도 내 주위를 서성댄다.

  "......"

  "너에게  양해조차 구하지않고 내 독단적으로 우석일 만나 얘기했다. 이대로 너에게만 무거운 짐을 지도록 내버려 둔다는게... 아무래도 우리 세사람 모두에게 빠른 결단이 필요할 것 같았어."

  더이상 긴 얘기는 필요치 않았다. 그래, 더이상...

  이 민주에게도, 안 우석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더이상의 시간은 용납되어 질 수 없는 것이다.

  비록 또 다른 후회를 불러올 지라도 우리는 마지막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것이 타의에 의해서든 자의에 의해서든... 

  이 민주와 헤어져 돌아오는 동안 나는 여러번 이 민주를 만났고 또 안 우석을 만났다. 그러나 둘중 어느 누구 하나를 택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부질없는 짓인가만 깨달을 뿐이다...

 

                                  *************************************

 

 우유빛 찻잔에 담겨진 갈색 빛깔의 코코아 한잔이 나의 시린 가슴을 달래준다. 다른 테이블엔 여러 찻잔들이 옹기종기 모여살고 있지만 유독 내 테이블은 큰걸까... 달랑 한잔의 찻잔이 왜이리 처량한 지...

  문에 달린 자그마한 종들이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10년 전에도 그러했듯이 새하얀 피부를 가진 내 또래의 여자가 들어왔다.

  "은주맞지... 오랜 만이야."

  "그래, 오랜만이다. 많이 변했다. 그지?"

  그래... 10여년의 갭을 누가 메꿀수 있겠는가...

  "차 미리 시켰구나. 여기요! 쥬스 한잔 주세요."

  비록 초등학교 동창임에도 불구하고 반가워 할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사실... 그냥 모른체 하고 있으려 했어. 하지만 그냥 보고 있을 수 만은 없더라.

  오늘 너 만나는 거 민주 오빠는 몰라.

  우리 ... 여자끼리 허심탄회하게 얘기해 보자. 솔직히 일이 이렇게 꼬일줄 누가 감히 생각이나 했겠니.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거 어떻게든 빨리 결정지어야 주위 모든 사람들이 제자릴 찾지 않겠니?

  사실 오빠가 10여년을 한결같이 그리워한 여자가 너였다는 거, 처음엔 몰랐어. 그저 일찍 첫사랑을 경험했나보다 했지...

  내가 오빠의 오매불망 상대를 안 건, 그러니까... 오빠가 대학에 들어가던 해였을 꺼야.

  어느날 외출했다가 들어왔는데 글쎄 오빠가 내 방에서 내 국민학교 졸업앨범을 보고 있더라구. 그래 내가 들어갔더니 허겁지겁 당황해 하며 나가더라. 그날은 그렇게 그냥 넘어갔는데... 그 일이 있은 후 몇일 있다가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오게 됐어.그래서 짐 정리 하는 도중에 앨범을 챙기다 우연히 초등학교 졸업앨범을 보게 됬는데 글쎄 어느페이지가 하두 봐서인지 쉽게 펴지더라. 바로 6학년 8반 사진들이였어. 물론 난 10반이였으니까 이상하다 싶어 살펴보니 글쎄... 니 이름의 사진이 오려져 있는게 아니겠니. 그제서야 오빠가 그토록 좋아하고 잊지못하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 짐작하게 됬고 나중에 알고 보니 니  그 졸업사진이 오빠 지갑에 들어 있더라..."

  유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은주의 말들은 우습지만 날 기쁘게, 흐믓하게 했다.

  10년전, 그토록 보고 싶고 만나고 싶어했던 사람...

  단지 같은 하늘아래 산다는 것만으로도 가슴벅차했던 나날들...

  비록 지금은 많은 부분이 색바래져 있지만 그러나 결코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사그라들지 않을 영원한 그리움의 대상... 바로 그도 나와 같았던 것이다...

  "난... 그래. 네가 우리 오빠를 선택하든 우석오빠를 선택하든 그건 중요치 않아. 하지만 이거 하나만은 알아주길 바래. 두사람의 감정 모두가 소중하다는 거야. 물론 니가 우리오빠를 덜 가슴아프게 해주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만... 그러나 그게 내 맘대로 되는것도 아니고...

  나도 연애, 이별 다 해봐서 너역시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아. 물론 너의 경우와는 좀 다르지만...

  어쨋든 네 미지근한 행동때문에 두사람 모두 괴로와하고 있다는건 알지? 물론 내가 널 힐란할 자격이 있는 지는 모르겠다만... 근데 옆에서 지켜보자니 딱해서 말이야.

  ......

  근데... 내 이기적인 생각은 솔직히 그래. 부디 야속하다 생각지 말고 들어줘. 난 니가 두사람 모두를 놓아줬음 해."

  생각지 못했던 얘기였다. 오히려 오빠를 괴롭게 만들고 있다고 욕이라도 퍼부을 줄 알았는데... 차라리 그런 편이 더 나을 듯 싶다...

  "좀 의외였니? 내 말? ... 힘들겠지만 그래주길 바래.

  솔직히 너 아직 우리 오빠 잊지못하고 있는게 분명해. 물론 우석오빠를 만난 후 변화가 있었겠지. 하지만 그게 그리 쉽게 되지 않았을거야. 하지만... 우리 좀더 냉정해져 보자.  만약말이야... 만약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오빠가 백수로 그저 어영부영 살고 있었다면... 아무런 배경도 학벌도 갖추지 못한 그저 별볼일 없는 사람으로 전락해 있다면.. 그래도 우리오빠와 우석오빠 사이에서 누굴 선택할 지 고민하고 있겠니? "

  "은주야... 너... 어떻게 그런식으로 말할 수 있니...아무리... 아무리 지금 내 입장이 비겁해보인다 해도 그렇지 그런식으로 날..."

  "그래? 하지만 냉정해질 필요가 있어. 그래. 넌 그런애가 아닐꺼야. 그래... 아니라고 하자. 하지만... 하지만 말야. 사람 일은 알수 없는거야. 내 이 가상이 가상으로만 끝날 스토리라고 누가 호언장담할 수 있겠니? 그래, 아닐 수도 있겠지...

  그럼, 이대로 언제까지 두남자를 질질 끌고다닐 셈이야?"

  "은주야, 나도 괴로와. 나도... 나도 두사람 못지않게 너무 힘들어. 왜 내 입장은 전혀 고려해 주지 않는거니, 응? ... 제발..."

  "미안해. 정은아... 결코 널 비난하러 온건 아닌데...

  하지만 정은아. 그래, 동창으로서, 옛친구로서 충고할께. 악의없이 들어줘.

  난 니가 어느쪽을 택하든 그건 나에게 별 문제가 안돼. 하지만, 그래. 먼저 우리오빠를 선택했다고 하자. 그럼 우석오빠는 안만나게 될거라고 생각하니? 우석오빠 엄마가 우리엄마 언니라구. 그런데 어떻게 교제가 없겠니? 그렇다고 맏며느리가 친척과의 교제를 개인적인 이유로 해서 기피할 수, 아니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불가능한 얘기야. 결국 매끄럽지 못한 관계가 지속될꺼구. 물론 젊은 우리들끼리만 알고 덮을 수 있는 문제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미 우석오빠 엄마도 널 아시잖아. 불가능해. 이제와서 너로 인해 우리 가정에 불화가 생기는 건 그 어느 누구도 원하는게 아니야.

  그럼 네가 우석오빠를 선택했다고 하자. 첫사랑의 남자를, 그것도 아직 깨끗이 잊지 못한 그런 남자를 코앞에 두고 다른 남자와 살수 있을 거 같니? 물론 우석오빠에 대한 네 감정도 인정한다만 10여년간이나 쌓인 그 감정들을 단지 몇개월만에 쌓인 감정들이 뭉게버릴 수 있다고 자신해? 응? 우석오빠역시 니 갈등하는 모습들을 지켜봐야 하는데... 자기 마누라가 자기팔을 베고서 첫사랑을 기억하고 산다면...

  부디 두사람 모두 자유롭게 해주렴. 이런 말, 네게는 모질고 독한 말로 들리겠지만... 그렇지만 더 좋은 방법은 없어. 부디 두사람 모두 널 잊고 살 수 있게 해줘. 부탁이야."

  은주의 말들... 그래. 결코 틀린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그러나 쉽게 동의하고 싶지 않다. 난 그녀 앞에서 벌거숭이가 되어버린 기분이다. 이 비참함...

 

                                     ***********************************

 

 이미 찻잔의 차는 온기를 잃은 지 오래이고 그 향조차도 놓쳐버린지 오래다. 남은 건  싸늘한 거무스름한 몇모금의 물뿐...

  그래. 은주의 말이 옳아. 이젠 서서히 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10년전 이 민주를 향한 심정이 지금 많이 색바래져 있듯이 앞으로 시간이 흐르면 흐를 수록 더더욱 지워져 갈 것이다.

  그래...  아직은 이 민주라는 남자가 내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지만... 서서히 잔잔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안 우석.

  결코 이 민주라는 이의 대타는 아니였다.

  나의 스물두해를 따스하게 해주었던 사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현재의 삶에 있어 소중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러나...

  아직... 내 마음은 어리석게도 이 민주에 대한 아쉬움을 남겨두고 있는 것이다.

  안 우석... 그역시 보내주어야 한다.

  나는 결코 안 우석을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고 믿고 싶다. 다만, 내 마음에 두사람의 자리가 공존할 수 없기에...

  오히려... 어쩌면 안 우석을 사랑하기에 자유롭게 해 주려는 지도 모른다.

  아니...

  난 아직 누군가를 사랑할 만한 자격을 갖추지 못한 걸까...

   

                                  ******************************

 

  파아란 하늘이 손에 잡힐 듯하다.

  간간히 스쳐 지나가는 행인들의 모습속에 잠시 나의 모습을 비추어 본다.

  어느 책에선가 본듯한 글귀가 불현듯 떠오른다.

   '사랑이란... 만남에서 얻어지고 헤어지면서 끝나는 것, 고로 사랑의 가감승제는 답이 언제나 제로...끝나버린 사랑은, 그래서 후회할 필요가 없는거라구...'

  너무나 삭막함을 느끼게 했던 글귀였다. 그렇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쉽게 처리해 버릴 수 있을까...                                  

  오늘 나는 결심을 해야 한다. 아니, 이미 결정한 이 결심을 두 사람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아직 약속시간이 되려면 40분은 더 흘러야 한다.

  40분이 지나고 나면 나는 자유로와 질 것이다.

  비록 섣불리 내려진, 그래서 앞으로의 나의 삶속에서 오늘의 나의 행동을 두고두고 후회한다 할 지라도...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