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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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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속으로(9부)


BY 로렐라이 2003-09-21

  9부

 

  내가 국민학교 6학년이 되던 해였으니까, 12살이 되던 해(7살 입학), 4월 부활절 날이었다.

  벌써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비록 이제는 빛이 많이 바랬지만... 그러나 눈을 감으면 언제라도 그를 만날 수 있다.

  아...

  나는 항상 동네 주변의 아이들을 인솔해 교회를 갔다. 그중 유독 김 현희라는 5학년짜리 여자아이가 날 잘 따랐고, 평상시와 다름없이 예배후 우리는 예배당문을 나섰다.

  한 손엔 성경책을, 다른 한손엔 부활절을 기념해 받은 계란을 쥐고서 그렇게 우리는 예배당을 나서고 있었다.

  그날도 햇살은 눈부시게 화려했다. 도저히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그런데 그때 바로 현희가 내게 말을 걸어 왔다.

  "언니. 내가 누구 소개 시켜줄까?"

  "무슨 소리야?"

  "저기, 저 오빠말야."

  현희는 어느새 내 곁을 스쳐 벤치쪽으로 가고 있었다.

  10년이 지난 지금의 그 교회는 그 자리에 새로 증축되어져 마당도 벤치도 다 사라져 버렸지만 10년전 그 당시 그곳 풍경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예배당문을 열고 나오면 서너계단을 내려오게 되고, 그럼 앞마당같은 그다지 썩 크지않은 마당이 놓여 있었다. 그 마당을 ㄱ자 식으로 뺑둘러 벤치와 햇빛을 가릴수 있는 천막이 둘러 처져 있었고, 다시 그 마당을 서너계단을 통해 내려오면 큰 마당과 또다른 예배관, 그리고 작지만 주차장이 있었다.

  현희는 어디로 간 걸까? 현희의 뒤를 쫒아간 나의 눈길에 누군가의 눈길이 마주쳤다. 그는 내가 예배당을 나온 그때부터 줄곧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것 같다.

  그를 본 순간, 나는 천사를 연상했다. 혹 천사가 내려와 나를 향해 미소짓고 있는 건 아닌지...

  그는 나를 향해 환한웃음을 띄고 있었다. 하얀색 계통의 옷을 입은, 그리고 얼굴도 하얀 미소년이였다. 바로 그의 곁에 현희가 서서 내게 손짓을 했다. 이리 오라고...

  나는 부끄러운 듯, 그리고 무언가에 홀린듯 그의 곁으로 다가갔고 그렇게 해서 우리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우리는 일주일에 두번 정도씩 만났다. 한번은 주일에, 또 한번은 토요일에.

  그는 나보다 5살 위인 고1이였다. 그래서 나만큼 자유로운 시간은 아니였지만 그래도 우린 약속이라도 한듯 일주일에 두번씩 꼭 만났다. 집으로 찾아와 날 불러냈기 때문에 내가 이 민주를 잘 따른다는 것도, 이 민주가 나무랄데 없는, 그래서 나와 만나는데 아무 염려할 필요가 없는 그런 사람으로 우리 가족들에겐 통했다.

  그 당시 그에 대한 내 감정은 존경심, 그 자체였다.

  그의 깨끗한 신앙심을 따르고 싶었다. 한번도 성낼줄 모르는 온화하고 침착한 그의 모습을 닮고 싶었다. 그의 모범적인 학교생활도 닮고 싶었다. 그의 모든 점들이 내겐 존경의 대상이었고, 정말이지 그는 내게 있어 하나님, 그 이상이었다.

  우린 둘다 얌전(?)했다. 요즘 말로 하면 까지지않은, 정말이지 때하나 뭍지않은 순백의 소년 소녀였다. 우리는 일주일에 두번씩 8개월가량을 사귀었지만 손한번 잡아보지 못했다. 아니, 감히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서로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했다. 항상 만나면 그와 나는 두보가량의 거리를 두고서 아무말 없이 우리가 살고있는 집 주변과 교회주변을 걷는 것으로 만족했다. 항상 그래왔다.

  그래서인가... 더 쉽게 잊을 수 없는지도 모른다.

  요즘 사람들은 소설 '별', 그리고 '소나기'에 나오는 소년과 소녀를 희귀종 비슷하게 바라본다. 그만큼 성이 개방되었으니까. 하지만 이 민주와 나와의 관계는 너무나 순백했다.

  날이 지날수록, 계절이 바뀔수록 우리의 관계는 더욱더 깊어졌다. 그러는 동안 나는 이상한 기분을 체험해야 했다.

  나에겐 오빠가 둘이나 있다. 큰오빠랑은 나이차이가 7살이나 나니 싸워본 기억이 거의 없다. 오히려 부모님보다 더 무서워하지 않았나 싶다. 작은오빠랑은 2살터울로 정말이지 쉴새없이 싸우고 또 싸웠다. 미운정 고운정이 무색하리 만치... 그래서일까? 내 친오빠들보다 오빠라고 부르는 이 민주라는 사람에게서 더 친근한 정을 느꼈다. 혹, 오빠들이 이런 내 감정을 안다면 서운해 하겠지만 사실이 그랬다. 이민주를 만나면 편안했고 안정감이 있었다. 그러나 내 친오빠들과는 하루하루 싸울것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왜 서로에게서 느끼는 감정들이 이토록 다른 걸까?

  그 당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문제거리였던 것 같다.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난 그 당시 그러한 나의 감정을 존경심으로만 생각했고 그렇게 믿었다.

  겨울이 되어 우리동네에는 호떡을 파는 포장마차가 즐비하게 들어섰다. 정말이지 포장마차들의 간격이 손을 뻗으면 닿을 듯이 그렇게 즐비하게 서있었다.

  그는 항상 나와 시간을 보내고 나서 집으로 돌려 보낼 즈음엔 어김없이 포장마차로 가 세면봉투에 한아름의 호떡을 넣어 내게 안겨 주는 것이었다. 내가 싫다해도 그는 굳이 그렇게 했다. 그래서 헤어지고 돌아오면 언니와 엄마에게 그 호떡을 떠맡기다시피 했다. 그때부터 자주 먹게 되어선지 언니와 엄마는 지금도 겨울이 되면 호떡을 즐겨 드신다.

  아... 그러나 안타깝게도 운명의 여신은 날 비켜가지 않았다. 아니, 날 노린게 아닐까...

  크리스마스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무언가 이민주에게 선물을 하고 싶었다. 내 마음을 가득 담은 그런 선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당시 유행하던 학알 접기를 시작했다. 이젠 얼마나접어 주었는 지 기억나진 않지만 어쨋든 나혼자는 도저히 무리여서 언니와 오빠들이 합동작전으로 학알을 접어주었다.

  그런데 문제가 ...터졌다.

  크리스마스 전에 큰오빠의 생일이 있었건만 생일선물은 고사하고 생일인지도 잊고 있었다.

  그당시 내 머릿속에는 어떻게 하면 빨리, 많이, 그리고 이쁘게 접을 수 있을까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큰오빠의 생일이 닥친것이다. 나는 오빠에게 미안하다는 말한마디로 떼워야 햇고 물론 오빠는 괜찮다고 말했다. 그러나 ... 그때 엄마의 눈초리는 예사롭지 않았다.

  그렇게 오빠의 생일이 지나고 크리스 마스가 이틀인가 삼일이 지난, 이미 눈이 새벽에 내려 아침햇살에 의해 녹기시작한 그 아침, 이 민주는 나를 만나러 왔다.

  그때...

  엄마가 나를 불러 세웠다.

  " 정은아. 오늘은 선물만 주고 곧장 들어와라. 알았지? 선물만 주고 와. 응?"

  평상시 엄마답지 않게 엄마는 내게 그렇게 당부하셨고, 나는 그말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고 건성으로 대답한 후 나왔다.

  우리는 여느때처럼 집주변과 교회주변을 말없이 그렇게 두세보가량떨어져 걸었다. 그당시 그는 부평으로 이사를 갔기 때문에 우리는 부평까지 다녀왔다. 그러다보니 하루해가 다 지나간 것이다.

  그때,

  바로 그날,

  그는 나와 전화번호를 주고받아 외웠고 그리곤 나를  다시 집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그의 돌아서는 뒷모습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눈에 선하다. 웬지 무언가 빠져나가 버린 듯한 허전함을 풍기는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쓸쓸함을 느껴야 했고 그래서 그의 모습이 내 시야를 벗어나자마자 나는 그의 모습을 찾기위해 뛰어갔다. 그의 뒷모습은 어두워져가는 하늘과 분주한 행인들의 모습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