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563

시사회 실패기


BY 빨강머리앤 2004-10-22

우연히 아컴에서 시사회가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행운이 내게도 올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문을 두드렸다. 행운의 여신은 나로부터 한발짝 떨어져 있지 않을까 싶게 어디든 뽑히는 일이 거의 없는 나였기에 별반 기대를 않고 신청글을 올렸다.

사실은 되어도 걱정일 터였다. 이곳에서 서울까지 가는 거리도 문제였지만 저녁시간이라 아이들이 걸리기도 했다.또 하루 쉬어야 하는 직장일도 그렇고 남편한테 허락(?)을 받아야 하는 일도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일 어디 흔하게 오던가 싶은 마음에 문을 두드렸는데 의외로 쉽게 시사회 당첨이 확정이 되어 있었다.

시사회가 있을 전날까지 아무 소식이 없길래 역시나 실망을 하고 있다가 그날 밤에서야 내가 시사회 응모에 뽑힌걸 보았다. 갑작스러워 기쁜 마음보다는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걱정이 생겼다. 함께 갈 사람을 꼽아 보았다. 다들 아줌마들인데 평일저녁에 쉽사리 시간을 낼 친구가 누굴까?

우선은 남편한테 허락을 받아 내야 했다. 쉽게 허락하는 일이 자존심이라도 상하는 일인지 남편은 아이들 핑계부터 댔다.'얘들 저녁은 어쩔려고?' ...... '얘들 저녁이야 내가 미리 준비해놓고 가면 되지, 뭐가 걱정이야?' 

같이 갈 친구도 걱정이었다. 저녁시간을 낼만한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 정말 그런 조건에 합당할 구리에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그 친구의 둘째가 아직 어려서 걱정인 점을 뒤로 하고 영화보러 가자고 대뜸 말을 건넸다. 자신도 가고 싶은데 남편이 출장중이란다. 그렇다고 아이들 데려갈수도 없고 도저히 불가능 하겠다는데 어쩔수가 없었다.

출발지가 같으면 좋겠다 싶어 내가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그 친구는 정말로 보고 싶은데 교회에서 성가대 연습하는 날이라 빠지면 안된다고 한다. 그래 갑작스럽게 떼쓰듯 가자고 한 내가 잘못이다 싶고 정말 아줌마로서의 우린 얼마나 저녁시간에 일들이 많은가 새삼스럽게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나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말이지. 그래도 아이들 저녁 미리 챙기고 남편허락 받고 직장일까지 하루 쉬고 이렇게 가는 거란 말이지. 아줌마라고 저녁시간에 한번 '화려한 외출'하란법 없더냐고.. 오랫만에 서울로 극장나들이 한번 하는 일이 이다지도 어렵더냐고 나는 그만 그정도에서 중도 하차를 하고 싶었다.

낼모레면 한자 급수 시험보는 아이들하고 퍼질러 앉아 한자공부나 할까 하는 생각까지 끼어들 정도에서 서울에 있는 친구가 생각이 났다. 그 친구라면 내가 부탁하는 일에 뭐든 오케이 할 친구였지만 그 친구의 바쁜 사정을 알고 있는 나는 일부러 전화하는 일을 자제 하고 있었다. 친정엄마랑 살다가 얼마전에 친정엄마가 지방에 있는 언니네로 이사를 가고 이래 저래 엄마가 떠난 자리에서 혼자 감당해야 하는 외로움과 삶의 무게가 아직은 무거울 친구였다. 그래도 늘 씩씩한 지라 오전에는 탁구를 배우러 다니고 오후에는 요가를 배우고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영화 시사회가 있는데 오랫만에 우리 얼굴도 보고 영화도 보자고 했다. 친구는 너무도 쉽게 그러자고 하고 만날 약속을 정했다. 친구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자 그때부터 비로소 설렘이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내 얼마만의 극장나들이냐. 그것도 압구정동 한복판의 개봉관에서 당당히 영화를 감상하는 일이 생시냐, 꿈이냐... 그리고 ' 비포 선 셋'은 또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영화더냐.  비포선라이즈 이후 줄리델피와 에단호크가 다시 만나기 까지 9년을 나 또한 기다리지 않았더냐. 그 영화를 본다는 말이지. 실제로  영화의 두 주인공 제시와 셀린느라도 만날것 같은 설렘으로 가슴이 다 콩닥 거렸다.

우리집에서 극장까지의 시간을 계산을 해보았다.넉넉잡고 두시간이면 될거야 싶으면서도 서둘러 아이들 단도리를 해놓고 일찍 길을 나섰다.저녁참에 거리에 나서 보는게 또 얼마만인지,  그 시간에 거리를 활보해 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 못 느낄 자유로움으로 한껏 가슴이 부풀어 오르고 영화에 대한 즐거운 상상은 높은줄 모르고 오르는 가을하늘같이 높아만 가는데... 그런데 버스는 왜 이리도 안오는 거지? 불길한 예감이 그때부터 들기 시작한다. 그 불길한 예감이란 길이 예상외로 막혀 배차 간격이 길어져 제시간에 차가 못 닿는 상황을 말하는 거다.

그런 상황이 실제로 벌어질려는 건지 십여분에 한대씩 배차가 되었던 서울가는 좌석버스가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걱정이 되는 한편으로 차가 늦게 오는 대신 서울엔 빨리 닿겠지 하는 생각으로 마음한켠에 불쑥 솟아나는 불안심리를 애써 누르는데 삼십분을 기다려도 차가 오지 않는다. 마침내 사십분이 지나 오는 차를 급히 타면서 쓸데 없는줄 알면서도 운전자에게 다가가 물어 보았다.'서울까지 몇분이면 도착합니까?'. '한시간이면 충분할 겁니다'

아저씨의 명쾌한 답변에 머릿속으로 시간을 계산하니 서두르면 시간안에 영화를 볼수 있을것 같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 동네를 빠져나와 국도변에 접어들어 보니 차들이 온통 도로를 점령해 있다. 도로를 점령한 차들은 거북이 마라톤 대회라도 참석한듯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그때 부터는 불안이 짜증으로 돌변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퇴근시간이라지만 평일인데 그것도 서울 한복판도 아닌데 어인 교통체증??

애가 탈것 같은 불안감으론 해결 될 일도 아니요, 운전사 아저씨 한테 '이 정체가 도대체 언제 끝납니까?' 라고 묻는 것 또한 부질 없는 질문일 테지만 현명치 못한 나는 안절 부절을 못하고 있다가 아저씨 한테 다시 질문을 던졌다. '도대체 왜 이리 길이 막힌답니까?'하고.

내가 사는 도시를 빠져나가는 관문앞에 오는데까지 한시간이 걸렸다. 벌써 서울에 도착해 있어야 할 시간에 내가 사는 곳에서 맴돌고 있는 상황이었고 영화 시작 오십분 전에서 시계는 똑딱 거리며 잘도 가고 있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짧은 물음에 스스로 답변을 던져야 했다. 그대로 간다고 해도 영화는 못 볼 것이 뻔한 시각이었다. 그러니 이젠 영화보다는 오랫만에 극장나들이를 약속했던 친구와의 약속파기를 내 입으로 말해야 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핸드폰이 없어 불편한 일이 비로소 있구나 싶은 상황, 무작정 차에서 내려 그 동네 아파트 단지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리 둘러봐도 공중전화가 없다. 수퍼에 물어보니 이층으로 올라가 피시방안에 공중전화가 있을 거라고 가르쳐 준다.

친구는 집에서 나와 버스에서 내려 지하철을 타려고 하는 찰라였다. 내가 영화보러 가자고 했을때 순순히 그러마 했던 친구는 또 '할수 없지 뭐' 하며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한다. 오히려 내가 더 미안해 져 말이 길어지는데 친구는 외려 나를 걱정한다. '너 되돌아 가는 길이 너무 복잡하지나 말았으면 좋겠다'고...

돌아오는 길도 만만치 않았지만 그것은 이제 꼭 맞추어 가야할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기에 한결 마음이 편했지만 혼자서 다시 집으로 돌아갈 친구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한동안 가시지 않았다. 서울가서 영화를 보고 있어야할 내가 불쑥 나타나자 남편도 아이들도 깜짝 놀라는 표정이다. 오며 가며 길에 투자한 시간이 아까워 씩씩 거리고 있다가 집에서 마주하는 어리둥절한 식구들의 재밌는 표정에서 그만 웃음이 나왔다.

영화는 못 보았지만 친구도 못 만났지만 그리고 혹 아컴식구중 누구라도 만날수 있지 않을까 싶은 기대도 접어야 했지만 그래도 내 쉴곳,  내 가족이 있는 집은 나의 그런 마음을 일시에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다가 영화란에 저도 모르게 눈이 박힌다. '비포 선 셋'의 두 주인공이 반가운 해후를 하는듯 포옹을 하고 있다. 영화의 두 주인공을 보고 영화평을 읽고 있자니 다시금 '시사회 실패기'가 아프게 떠오른다. 아, 이제와 어쩌자고!!